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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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한 사람이 일주일간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 양은 신용카드 한 장이라고 합니다. 지난 70년간 제대로 소각되거나 재활용되지 못한 플라스틱이 자연에 버려져 있다가 해양생물 등에 의해 인류 몸속으로 다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플라스틱 순환경제 구축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해서 투자를 받는다거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다거나 하는 측면을 넘어서 당장 인류의 건강과 맞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플라스틱 순환경제의 축은 크게 △재활용과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나뉩니다. 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하면 폐플라스틱을 원료 상태로 되돌린 뒤 새로운 플라스틱을 만들 수도 있고, 플라스틱에서 기름을 뽑아낼 수도 있습니다. 옥수수, 사탕수수 등으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생분해 플라스틱)은 빠른 시일 내에 알아서 분해됩니다.

플라스틱 '수거'부터 삐그덕

'도시 유전'은 최근 석유화학사들이 열심히 밀고 있는 개념입니다. 도시에서 나온 원료, 즉 플라스틱을 열로 분해해서 기름(열분해유)을 뽑아내고, 이 열분해유를 다시 공정에 투입해 나프타 등의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현재 플라스틱 순환경제의 첫 단추인 '원료 수집' 단계서부터 발목이 잡혀있습니다. 일단 플라스틱을 모아야 여기서 기름을 뽑든 말든 할 텐데, 투명하고 이물질이 없는 플라스틱을 모으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대기업이 폐기물 처리 사업에 진출하자 전국고물상연합회, 한국자원순환단체총연맹 등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폐기물 중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부분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해야 할지 검토하는 대상이 돼 현재 동반성장위원회 심의가 진행 중입니다.

국내 석유화학사의 한 관계자는 "5인 사업장에서 일일이 손으로 분류하는 플라스틱을 수거해서는 대규모로 열분해유 공장을 돌리기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이냐면, 폐플라스틱을 수입해요. 진짜 말 그대로 쓰레기를 수입하고 있어요.
해외에서는 로봇으로 플라스틱을 선별해서 공급하는 와중에, 중소업체에서만 플라스틱을 받아서는 답이 없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열분해유 공장을 해외에 짓는 방법도 진지하게 검토할 겁니다.
-국내 석유화학사 관계자
중소업체의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영세 사업자가 대부분인 업계에 대기업이 진출하면 어떡하느냐"는 겁니다. 폐플라스틱 수거 사업을 대기업 vs 중소기업 프레임으로 몰고 갈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플라스틱 병 뚜껑과 본체 소재를 통일시키거나, 그 위에 필름을 붙이지 않게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어쨌든 결론은 동반성장위원회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재활용 업계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 중인데, 연내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업계에서는 "석유화학 산업의 대전환기라 불리는 이 시점에 하루가 급하다", "그 사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진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환경부·산업부 엇박자에 표류하는 생분해 플라스틱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환경부가 편의점 등에 도입을 장려했던 생분해성 플라스틱 봉투.  /신경훈 기자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환경부가 편의점 등에 도입을 장려했던 생분해성 플라스틱 봉투. /신경훈 기자
생분해 플라스틱 사업도 갈 길이 멉니다. 일반 플라스틱은 자연에서 분해되는 데 500년이 걸리지만 생분해 플라스틱은 1년도 채 걸리지 않아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불립니다.

문제는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간 입장차로 기업들이 사업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에 친환경 인증을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비닐봉투 생산을 장려하고, 폐기물 부담금도 면제해줬지만 1년 만에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국내 여건상 생분해 플라스틱을 묻을 매립지가 부족하고, 이를 따로 분리수거할 시스템이 갖춰져있지 않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반면 산업부는 생분해 플라스틱이 글로벌 트렌드인만큼 관련 사업을 키워줘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최근에는 유럽연합(EU)에 국산 생분해 플라스틱 제조 기술을 유럽 시장에 적용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일본과 더불어 해양 생분해가 가능한 바이오 플라스틱 기술 및 특허를 보유한 나라입니다.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환경부는 생분해 플라스틱을 어망 등에는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비닐봉투, 쇼핑백, 포장재에 두루 쓰이는 생분해 플라스틱을 우리 기업들만 '어망용'으로 생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내수용이 아닌 수출용을 염두에 두고 알아서 생분해 플라스틱을 개발하고, 생산하면 되지만 생분해 플라스틱 원료 가공 업체 등 중소기업들은 갑자기 판로를 잃는 셈입니다.

플라스틱 문제를 기업이 해결해보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한 바이오 플라스틱과 도시 유전이 표류하는 중입니다. 규제를 둘 것이 아니라 생분해 플라스틱 관련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하고, 플라스틱 원료 수집 사이클에 잡음이 없게끔 하루 빨리 정책적 지원을 마련해야 하진 않을까요.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