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배정된 탄소 무상할당량이 얼마나 줄어들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상황입니다.”(A기업 관계자)

철강 자동차 정유 등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내 제조업체들이 지난달 26일부터 시행된 탄소중립기본법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제계는 탄소중립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감축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다. 감축 여건이 한국보다 좋은 유럽연합(EU)조차 연평균 탄소감축률이 1.98%인 상황에서 정부 목표는 4.17%로 두 배가 넘는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목표 설정 자체가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할당량 대폭 축소 불가피

韓 탄소감축 목표, 유럽의 2배…"기업들 年 2.5조 추가 부담해야"
4일 경제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탄소중립기본법 시행에 맞춰 각 기업의 배출권 할당량 조정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2025년까지 각 기업에 확정된 할당량을 대폭 줄이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탄소배출량 감축을 목표로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다. 탄소 감축 의무가 있는 기업에 할당량을 준 뒤 기업들이 과부족분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연평균 탄소 배출량이 개별 업체 기준으로 12만5000t, 사업장 기준으로 2500t이 넘는 650여 개 기업이 적용을 받는다. 할당량 대비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은 한국거래소에서 배출권을 구매할 수 있다. 탄소배출권 가격은 시장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이날 KAU21(2021년 배출권)은 t당 2만2050원에 거래됐다.

정부는 2015년부터 2년 단위로 1차(2015~2017년), 2차(2018~2020년) 계획 기간을 설정했다. 작년부터 시행된 3차 계획은 2025년까지 유지된다. 문제는 이 3차 계획에 탄소중립기본법이 일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르면 한국은 탄소 배출량이 정점에 달했던 2018년 배출한 7억2760만t의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4억3660만t으로 40% 줄여야 한다. 2030년까지 8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매년 4.17% 감축해야 하는 시나리오다.

재무부담 커지는 기업들

당초 정부는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5억5020만t으로, 2018년 대비 24.4% 줄이겠다는 전제로 3차 계획을 수립했다. 탄소중립기본법 시행에 따라 1억1360만t의 탄소배출량을 추가로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들이 현 추세의 탄소배출을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이날 탄소배출권 가격(2만2050원) 기준으로 추산하면 연간 2조5000억원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국내 제조업체들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앞세우며 탄소중립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제는 탄소중립 기술이 현실화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기술 개발 전까지는 탄소배출권을 구입하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작년부터 경기 회복으로 공장 가동률이 대폭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기업들을 딜레마에 빠져들게 하는 이유다. ‘가동률 상승→탄소 배출량 증가→배출권 구매비용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 자동차 등 제조업체들은 벌써부터 탄소배출권 제도 강화에 따른 재무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 포스코는 국내 민간 기업 중 가장 많은 7567만t의 탄소를 배출했다. 이어 현대제철(2862만t) 삼성전자(1253만t) 쌍용C&E(987만t) 에쓰오일(957만t) 등의 순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철강·시멘트·석유화학 3개 업종에서만 탄소 중립 비용으로 2050년까지 최소 400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계 관계자는 “배출권 수요가 급증하면서 t당 가격이 10만원이 넘는 EU 수준에 도달하면 기업들이 부담해야 하는 연간 비용은 수십조원에 육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