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화장품이나 식품 같은 주요 제품 포장재의 두께와 색상, 무게 등의 기준을 강제하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규제를 추진하고 나서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포장재 재활용을 쉽게 하겠다는 취지지만 신제품 출시와 수출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3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환경부 포장재 규제 관련 긴급 간담회에선 업계의 성토가 이어졌다. 그동안 업종별 반대의견을 냈지만 정부가 꿈쩍도 하지 않자 업계가 적극적으로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일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작년 2월 입법예고됐지만 당시 환경부가 자세히 안내하지 않아 업계가 내용을 파악하는 데 오랜 시일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 포장재의 재질과 구조에 대한 정부 기준에 포장재의 두께, 색상, 포장무게비율(포장재 무게가 제품 무게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추가했다. 정부가 하위 법령으로 정하는 두께, 색상 등의 기준을 따라야 하고 이에 대한 평가도 받아 포장재에 표시하도록 했다.

규제 대상은 종이팩 유리병 캔 합성수지 등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재를 만드는 화장품·식품·의약품·문구·완구·의복류·종이제품·전기기기 업체 등이다. 환경부는 규제 대상을 국내 5200여 곳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 충격파는 1·2차 협력사를 포함해 수십만 곳에 미칠 전망이다.

화장품업계는 디자인 핵심 경쟁력인 포장재 규제가 강화되면 수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 화장품 업체 임원은 “중국인이 좋아하는 빨간색 포장의 제품을 주로 수출했는데, 앞으로 정부 기준에 따라 수출용과 내수용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당황스럽기는 식품업계도 마찬가지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 유형만 100개가 넘고 거기에 해당하는 제품 종류만 수십만 개”라며 “식품의 신선도와 품질 등에 최적화된 포장재를 바꾸다가 제품 변질 및 오염 등으로 소비자 안전이 위협받는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완구업계도 “다품종소량생산 체제로 운영됐는데 이제 제품별로 두께, 색상, 무게 검사를 받으려면 그 비용도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환경부의 무리한 추진에 중소벤처기업부도 반대 의견을 내는 등 정부 내 이견도 상당하다. 중기부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전 세계 어디에도 두께 색상 무게 등의 기준으로 포장재를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고 꼬집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