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소문에 있는 신한은행 디지로그 지점에서 한 소비자가 AI(인공지능) 은행원과 화상으로 상담하고 있다. 소비자는 사람 직원의 도움 없이 통장 발급, 예·적금 가입, 신규 대출 등 80여 개의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신한은행  제공
서울 서소문에 있는 신한은행 디지로그 지점에서 한 소비자가 AI(인공지능) 은행원과 화상으로 상담하고 있다. 소비자는 사람 직원의 도움 없이 통장 발급, 예·적금 가입, 신규 대출 등 80여 개의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신한은행 제공
점포에 들어서면 성인 키만 한 키오스크가 고객을 맞는다. 이 기기에는 시력이 약한 어르신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화면에 주황 초록 파랑 색색별로 업무가 구분돼 있다. 처음엔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던 80대 어르신은 전담 직원의 설명을 듣고 “다음에는 내가 할 수 있겠다”며 웃었다. 부스 형태로 만들어진 화상상담 창구 디지털 데스크에서 혼자 적금에 가입한 60대 고객은 “대기시간이 줄고 비대면으로 가입해야만 적용되는 우대금리도 받아서 좋다”고 했다. 신한은행이 고령층 소비자도 디지털금융 기기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꾸민 ‘시니어 디지털 특화점포’ 모습이다.

무인 점포부터 편의점 은행까지

지점이 없는 인터넷은행과 빅테크의 ‘금융 공습’에 맞서 은행들이 오프라인 점포를 더 강화하고 있다. 방문객이 갈수록 줄어드는 전통 창구가 사라지는 대신 사람 직원과 다름없는 디지털·스마트 기기가 전진 배치됐고 삭막하던 객장은 휴식 공간처럼 바뀌었다. 소비자가 자주 찾는 편의점 슈퍼마켓에 은행을 차리는가 하면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은행 간 ‘공동 점포’도 등장했다.

우리은행은 초소형 자동화 점포인 ‘디지털 익스프레스점’을 최근 서울 우이동·구일지점과 경기 파주 문산점에 신설했다. 이들 지점은 모두 수익성 악화 때문에 작년 말 폐쇄됐다가 지역민의 은행 접근성을 위해 이번에 무인 점포로 재탄생했다. 소비자는 화상상담을 통해 이전처럼 지점 창구 수준의 업무를 볼 수 있다.

은행과 유통 채널을 결합하는 점포 실험도 한창이다. 동네 곳곳에 촘촘하게 들어선 편의점이나 이용 인구가 많은 슈퍼마켓·마트는 새로운 영업구역에 진출하고 싶지만 독립 점포를 내기는 부담스러운 은행들에 최적의 파트너다. 전통 은행을 찾지 않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은행 경험을 유도하는 전진기지 역할도 한다.

지난해 11월 GS25와 강원 정선군에 편의점 점포를 열었던 신한은행은 다음달 업계 처음으로 ‘슈퍼마켓 은행’을 만든다. 서울 광진구 GS더프레시 점포 안에 들어서는 이곳에서는 디지털 데스크를 통해 오후 8시까지 80여 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편의점 점포 이용자의 56%가 다른 은행에서 유입된 고객”이라며 “올해 안에 편의점·슈퍼마켓 혁신점포를 전국 2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민은행도 다음달 서울 고속터미널역 노브랜드 매장 안에 ‘KB디지털뱅크’를 연다.

고령층 소외될까…공동 점포 운영

한 지점에 두 은행이 자리하는 공동 점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점포 운영 비용을 줄이면서 금융 취약계층의 소외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하나·우리은행은 작년에 지점을 없앤 용인 신봉동에 다음달 첫 공동 점포를 낸다. 리딩뱅크를 놓고 다투는 국민·신한은행도 상반기 경북 영주시 등에 공동 점포를 설치할 계획이다.

하나은행과 산업은행은 29일부터 지점은 물론 금융 상품·서비스도 공유하기로 했다. 산업은행의 개인 소비자 61만 명은 612개 하나은행 지점과 서비스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4대 은행 사이에선 전국 점포가 2600여 개에 달하는 우체국을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오히려 오프라인 점포의 영업시간을 늘리는 역발상도 나왔다. 지점이 없는 인터넷은행에 비해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14일부터 국민은행이 전국 72곳에 설치한 ‘9to6 뱅크’가 대표적이다. 오후 6시까지 업무를 볼 수 있어 소비자의 반응이 뜨겁다.

빈난새/박진우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