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강력한 재정지출 구조조정을 할 것임을 예고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격적 재정지출 확대로 급속히 악화한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해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서는 ‘재정 정상화’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현 정부가 예산을 펑펑 늘리다가 ‘허리띠 졸라매기’ 책임은 차기 정부에 떠넘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제서야 확장재정 접겠다는 정부
정부는 29일 국무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을 상정해 의결했다. 기획재정부는 지침에 “재정지출 재구조화 등 전면적인 재정 혁신을 하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립한다”고 명시했다.

문재인 정부의 상징이던 ‘적극적 재정운용’ ‘포용적 선도국가 전환’ ‘디지털 뉴딜’ 등은 모두 폐기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강조해온 재정 구조조정에 맞춰 기재부가 각 부처에 고강도 예산 절감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기재부는 이번 예산 편성 지침 작성 과정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실무 협의를 거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 편성 때 2025년 도입할 예정인 재정준칙에 준하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준칙의 핵심은 2025년부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60% 이내로 통제하는 것이다. 내년 예산 편성 때부터는 국채 발행 등을 최소화해 국가채무 비율 관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재량지출 10% 이상 줄여 10兆 감축…'한국판 뉴딜' 폐기될 듯

정부가 2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3년 예산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에는 4대 재정혁신 방안이 담겼다.

정부는 우선 재정지출 재구조화를 통해 전략적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해 투자를 재조정하고 의무지출과 관련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하기로 했다. 집행 부진 사업과 보조·출연사업 등은 전면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와 경직성 경비 등 감축이 어려운 예산을 제외하고 재량 지출의 10~50%를 절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한 지출 감축 규모는 10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기획재정부가 강력한 재정지출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급속도로 늘어난 국가채무가 국가신용도 하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2022년도 1차 추가경정예산안 기준 국가채무는 1075조7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0.1%다. 문재인 정부 집권 첫해인 2017년 국가채무 비율 36.0% 대비 14.1%포인트 늘었다. 국가채무는 향후 3년간 매년 100조원 이상 늘어 2025년께 1415조9000억원, GDP 대비 58.5%까지 늘어난다는 게 정부의 추산이다. 매년 100조원 이상 적자가 쌓이는 등 국가재정이 구조적 위기에 빠질 위험이 커졌다.

차기 정부의 지출 구조조정 선순위 사업으로는 올해 33조7000억원 규모로 편성된 ‘한국판 뉴딜’ 사업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들이 거론된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의지로 올해 6500억원 규모가 반영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도 삭감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번에 기재부가 발표한 예산안 편성 지침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상징인 한국판 뉴딜이 빠졌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 때 급속도로 늘어난 재정지출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던 기재부가 새 정부가 들어서자 뒤늦게 재정 정상화에 나선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재정지킴이 역할을 했어야 할 기재부가 지난 5년 내내 문재인 정부에서 끌려다니다가 국가채무가 한계 수준에 임박해서야 재정 정상화를 이야기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가 지정학적 위기와 경제 회복 등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지난 정부에서 크게 벌어진 재정 적자 ‘악어의 입(처럼 갈수록 커지는 적자폭)’을 닫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