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2020년 직원 평균 연봉은 1억2700만원으로 국내 제조기업 1위였다. 경쟁 업체보다 1.5배가량 높은 연봉을 지급하며 취업준비생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 1위에 수시로 이름을 올렸다. 근로자 대표인 사원협의회와 임금 협상도 매년 잡음 없이 마무리됐다.

분위기는 지난해 갑자기 바뀌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 연봉을 올리면서 제조 대기업 직원들도 “더 달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삼성전자도 지난해 3월 임금을 7.5% 인상했다. 2013년 후 최대 규모다. 여기에 지난해 말 특별 격려금 등이 더해지며 작년 직원 평균 연봉은 전년 대비 13.4% 상승한 1억4400만원을 기록했다.

다른 대기업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해 주요 대기업 ‘평균 연봉 1억원 시대’가 열린 배경이다. 경제계에선 ‘적절한 보상’이라는 분석과 ‘과도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억'소리 나는 대기업 연봉 인플레…근로자 평균의 4배 올랐다
1년 새 15% 인상…“역대 최대”
한국경제신문이 22일 시가총액 20위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직원 평균 연봉은 2020년 9870만원에서 2021년 1억1348만원으로, 1년 만에 15.0% 상승했다. 경제계에선 역대 최대 인상률을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개 기업 중 14곳이 직원 평균 연봉을 두 자릿수 인상했다. 삼성전자(13.4%) SK하이닉스(22.9%) 네이버(26.0%) 삼성SDI(32.5%) LG화학(10.8%) 기아(11.0%) 포스코홀딩스(11.2%) 등 업종과 상관없이 대폭 임금을 올렸다.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행사차익까지 더하면 실제 상승폭은 더 커진다. 카카오뱅크의 지난해 스톡옵션 행사차익을 더한 직원 평균 연봉은 1억4400만원으로, 2020년(7800만원) 대비 84.6%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적 연봉 인상 바람
대기업 임금 인상 바람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부터 시작됐다는 분석이 많다. 경제계 관계자는 “2018년 최저임금 16.4% 인상에 따라 하위 직급부터 상위 직급까지 연쇄 인상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마저 일부 직원의 최저임금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게임 등 IT업계가 ‘개발자 확보 전쟁’에 나서면서 임금 인상 열풍은 더 거세졌다. 넷마블, 넥슨, 크래프톤 등이 한 번에 연봉을 1000만원 안팎씩 올린 것이 시작이다. 업계 관계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연봉을 주는 기업으로 이직하는 현상이 강해지면서 경쟁 기업보다 더 많이 인상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물가 상승 등으로 불만이 커진 직원들을 달래기 위한 측면도 있다. 일부 고위 임원만 수십억원 규모의 연봉을 받는 데 대한 비판이 노골화됐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한 기업의 인사담당 임원은 “지난해 여러 기업에서 ‘MZ 노조’가 출범한 데다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를 통해서도 임금을 올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치면서 무시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인상 요구 더 거세
직원들의 연봉 인상 요구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올해는 작년보다 인상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노사협의회는 지난달 사측에 올해 임금 인상률로 역대 최대인 15.72%를 요구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현대차·기아 상위 10% 연구·사무직 책임매니저에게 1인당 50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가 노조 반발에 밀려 모든 직원에게 400만원을 추가 지급한 데 이어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 노조까지 “우리도 똑같이 더 달라”고 나서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연공형 임금 체계에 따른 인건비 상승, 대·중소기업 간 임금 양극화 등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글로벌 최대 자동차 기업인 일본 도요타가 최근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평가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전면 개편한 것처럼 ‘직무·성과형 임금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기도 하다. 경제계 관계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일률적인 연봉 인상보다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서둘러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김일규/도병욱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