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보기술(IT) 산업에서 가장 값비싼 인력 채용 방식인 ‘애크하이어(acquisition+hire)’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인재 일부를 영입하려 회사를 통째로 산다는 뜻으로, 기술 선점 경쟁이 치열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볼 수 있었던 투자 형태다.

상대방에 인재를 내주지 않으려는 회사들의 파격 연봉 인상도 화제다. 시장 선도 경쟁이 격화하면서 비용을 따지지 않는 인재 쟁탈전이 심해지자 나타나는 현상이다. IT업계 전반의 수익성 악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람 때문에 회사 산다…IT업계 '인재 쟁탈전'

○‘가장 값비싼 고용’ 속출

21일 인수합병(M&A) 업계에 따르면 세무 서비스 앱 ‘삼쩜삼’을 운영하는 자비스앤빌런즈는 최근 영상통화 스타트업 스무디를 인수했다. 전문가들은 인력 확보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전형적인 애크하이어 사례로 보고 있다. 조현근 스무디 대표 등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출신들의 기술인력을 영입해 삼쩜삼 사용자환경(UI)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있었던 크래프톤의 띵스플로우 인수 과정도 매출·영업이익 등 재무제표보단 이수지 띵스플로우 대표와 핵심 인력들의 ‘기획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띵스플로우 개발진은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타로나 연예 상담을 제공하는 채팅 서비스 ‘헬로우봇’으로 젊은 층에서 인지도를 쌓았다.

지난 1월 말 완료한 컬리의 플래너리 인수 역시 비즈니스 외형 확대 목적 외에 플래너리 임원진들의 대외·홍보 관리 능력을 높이 산 것이라는 평가를 얻는다. 플래너리 창업자는 언론인 출신으로 현재 컬리의 홍보담당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애크하이어는 서로 더 많은 양질의 인력을 고용하려는 경쟁이 극심할 때 나타나는 가장 값비싼 고용 방식이다. 지난달 중소벤처기업부 발표에 따르면 벤처·스타트업 고용 증가율은 지난해 9.4%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전체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율(3.1%) 대비 3배 이상 높다.

한 벤처업계 전문가는 “한국 스타트업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 돈을 쏟아내서라도 빠르게 궤도에 올라야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시장이 됐다”며 “회사가 안 좋아도 사람 때문에 기업을 인수해야 할 만큼 인재 확보 비용이 비싸졌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탈 막자’ 파격 인상

인재 쟁탈전에 대응해 파격적인 임금 인상을 발표하는 IT업체도 줄을 잇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모든 임직원 연봉의 1000만원 일괄 인상안을 지난 16일 발표했다. 별도로 식대 지원비를 월 30만원씩 인상해 연봉과 복지만 최소 1360만원 올렸다. 카카오그룹은 작년 말 카카오뱅크가 ‘전 직원 연봉 1000만원 이상 인상과 연봉의 30% 규모 스톡옵션 제공’을 약속한 데 이어 최근 핀테크 산업의 임금 인상을 주도하고 있다.

작년 게임업계 임금 인상을 주도했던 크래프톤은 지난 15일 장병규 의장이 별도로 400억원어치 가족 소유 주식을 임직원들에게 무상 증여했다. 웹툰·웹소설 스타트업 리디는 올해 상반기 입사하는 경력직 직원에게 직전 연봉 대비 30% 인상한 급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올해 기술 인력 300여 명 영입을 목표로 내세운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올해 정규직 임직원 대상 ‘모회사 주식 부여’ 보상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유망 핀테크, 스타트업의 경쟁적인 임금 인상은 IT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조짐이다. 이달 창사 이래 처음 세 자릿수 개발자를 공개 채용한다”고 발표한 ‘오늘의집’ 운영사 버킷플레이스는 “업계 최고 수준의 맞춤형 보상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건비 부담 불가피”

작년에 이어 IT 기업들의 인력 확보 전쟁은 전반적인 임금 상승 추세와 맞물려 기업들의 수익성을 압박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상용근로자의 작년 3분기(7~9월) 월평균 임금 증가율(5.0%)은 분기 기준으로 2018년 1분기(7.9%) 이후 가장 높았다.

작년 인건비 인상에 앞장섰던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크래프톤 등 주요 게임업체 대부분은 이미 수익성 악화와 부채비율 상승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8개 주요 게임업체의 작년 실적을 분석한 김승범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연초 연봉 인상 영향으로 인건비 부담은 커진 반면 매출은 대부분 정체 또는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태호/차준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