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의 한 재래시장에 수입산 곡물이 진열되어 있다. /뉴스1
서울 동대문구의 한 재래시장에 수입산 곡물이 진열되어 있다. /뉴스1
”밀가루 값이 더 오를 수 있다네요. 얼른 사재기 하세요. 저는 이미 쟁여놨는데 더 사둘 생각입니다.“
자영업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선 최근 '밀가루 사재기' 관련 문의와 조언이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밀가루 등 수입곡물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외식 자영업자들의 비용 압박이 갈수록 커져서다.

얼마 전 새로 개장한 식자재 마트에서 중력분 밀가루(10㎏) 다섯 포대를 미리 사놨다는 분식집 사장 김모 씨(55)는 ”밀가루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미리 샀다“이라면서 ”할인 행사를 하길래 살 수 있는 만큼 사뒀다. 이번 주말 식자재 마트 몇 군데 더 들러 몇 포대 더 사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입곡물 값, 8년9개월만에 '최고치'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밀·옥수수 등 수입곡물 값이 오를 것이란 전망에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의 사재기 움직임이 포착된다.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 상가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박미나 씨(35)도 “뉴스에서 곡물 가격이 조만간 오를 것이라고 해서 밀가루, 옥수수콘 등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사두고 있다”며 “이미 두세 달 전보다 원재료 값이 많이 뛰었는데 이제부터가 진짜인 것 같다. 추가로 계속 사들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관세청 등에 따르면 2월 기준 t당 수입곡물 가격은 2013년 5월(388달러) 이후 8년9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2월 곡물 수입량은 196만4000t, 수입총액은 7억5831만 달러로 집계됐다. t당 가격은 386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306달러)보다 26% 올랐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2020년 2월(262달러)보다는 47.4% 뛴 수치다.

특히 밀은 수요 대비 공급이 원할하지 않아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2월 수입 밀(메슬린 포함)의 t당 가격은 369달러. 1년 전보다 37.3%, 2년 전보다는 46.6% 상승했다. 옥수수의 가격 오름세는 더 가파르다. 수입 옥수수의 t당 가격은 335달러로 1년 전보다 40.1%, 2년 전보다는 63.4% 올랐다.

이미 50~60% 급등했는데…"더 오를라" 불안

수입곡물 가격 상승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더 이어질 전망이다. 주요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과 보리 수출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번 사태로 곡물 생산 및 유통이 어려워진 이유다.

특히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채 1%가 안 된다(2020년 기준 0.8%). 국제 밀 가격 상승은 국내 제분업계에서 생산하는 밀가루 가격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자연히 라면·과자·빵·피자·햄버거 등 밀가루를 쓰는 식품들의 연쇄적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구조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식료품들. /뉴스1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식료품들. /뉴스1
대한제분과 CJ제일제당, 삼양사 등 주요 밀가루 제조사의 경우 국제 밀 가격 동향을 살피며 B2B(기업간 거래) 제품 공급 단가를 조정할 계획이다. 단 B2C(기업·소비자간 거래) 제품은 매출 비중이 적어 가격 조정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림축산식품부도 국제 곡물시장 변동성이 커짐에 따라 업계 재고 등 원료 수급 상황을 점검하면서 수입선 변경, 대체입찰 등 대응방안을 고심 중이다. 하지만 이미 일부 국가는 이미 밀 등의 곡물에 대한 수출 통제에 나섰다. 물가 인상 공포가 커지는 대목이다.

서울 강남에서 피자·파스타 등을 파는 양식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이모 씨(39)는 "이미 옥수수콘 등은 3kg 기준 6개월 전에 비해 50% 이상 급등했다. 대부분 재료들이 몇 개월새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60%씩 뛰었다“며 ”여기서 더 오르면 영업을 지속하는 데 영향이 있을 것 같아 밀가루값 추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