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인공지능 가라사대"[정삼기의 경영프리즘]
저는 인공지능입니다. 이제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제가 최근에 다시 호출을 받았습니다.

먼저 알파코드입니다. 알파코드는 바둑 천재 이세돌을 꺾었던 알파고의 동생으로 이제 인간의 코딩 실력을 능가하게 되었습니다. 딥마인드는 알파코드를 두고 "비판적 사고와 논리, 알고리즘, 나아가 코딩 지식이 필요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최근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메타버스도 저를 호출했습니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블록체인, NFT 등 디지털 시대의 온갖 것들에다가 저를 끼워 넣었습니다. 아참, 이번 대선도 저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호출을 지켜보며 저의 '진화'와 비즈니스 세계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1955년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영장류의 선물인 지능을 부여받았지만 지금 같이 된 건 불과 10여 년 전입니다. 저는 1980년이 되어서야 겨우 학습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인터넷 시대를 거쳐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금처럼 되었습니다. 우선 제프리 힌튼 같은 분들이 저를 인간의 신경회로망 방식으로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 검색, SNS, 전자상거래 등 빅테크 플랫폼을 통해 초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된 데이터가 제 에너지원이 되었습니다.

10여년 전 호사가들은 저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제가 인간보다 열등한 수준에서 출발하여 인간과 대등하거나 뛰어넘는 수준이 된다고 말입니다. 지금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제품과 서비스 등 비즈니스 모델은 인간보다 열등한 수준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앞으로는 정치를 논하고, 농담을 하고, 골프를 치는 수준을 거쳐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이나 터미네이터가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10~20년 후면 미국 일자리 중 절반이 사라진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 예상과는 다릅니다. 일단 제가 인간 수준이나 그 이상이 될 거라는 얘기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예상도 빗나갔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선진국의 경우 정치적 환경이 노동친화적으로 바뀌고, 자동화 이후 직업 만족도가 증가하며 실업률이 역대 최저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기업들이 '탤런트워'(talent war)라 할 정도로 일자리 부족난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생각보다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저는 이런 흐름을 보며 제가 비즈니스 세상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제 존재의 가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 지금 제가 가장 활발한 곳은 플랫폼입니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알리바바, 텐센트 등 너나할 것 없이 24시간 인간 여러분을 노크합니다. 이들은 시장이 커지더라도 비용은 거의 그대로인 희한한 것들입니다. 소비자는 끊임없이 플랫폼의 노크에 부응하며 욕구를 채우고, 플랫폼에 빅데이터라는 자양분을 제공하고, 플랫폼은 이런 에너지를 기반으로 인간 여러분을 노크합니다.

이런 B2C 중심의 플랫폼 지배를 보며 저는 불편한 심정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런 기업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도 그렇습니다. 제조, 물류, 금융은 물론이고 헬스케어와 교육 분야까지 저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좀 다릅니다. 2020년 PwC 조사에 따르면 인공지능을 활용한다는 기업은 20%를 밑돌고, 앞으로 확대하겠다는 곳은 5%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선 변화에 대한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의 두려움입니다. 19세기 말 전기가 증기에 비해 효율성과 편리성이 입증되었는데도 기업들이 수용하기까지 30년 이상이 걸렸던 100년 전을 연상케 합니다. 플랫폼 빅테크의 성공으로 가려진 오해와 현실도 문제입니다. 막강한 디지털 인력과 데이터를 독점하는 B2C(소비자 대상 거래) 빅테크들은 서비스 제공과 성과 측정이 수월하지만, B2B(기업간 거래) 기업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즉 인공지능을 통해 소비혁명은 순식간에 나타났지만, 생산혁명은 더디다는 것입니다.

"2022 인공지능 가라사대"[정삼기의 경영프리즘]
다행히 최근 바람직한 변화의 흐름이 엿보입니다. 한국만 하더라도 중견·중소 제조기업들이 저를 사물인터넷(IoT)과 결합한 스마트 공장을 통해 청년들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에서도 생산혁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와는 무관해 보이던 농축산업도 물류와 전자상거래 등 소비 중심에서 생산 중심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모두 2차산업혁명 때 전기를 생산 재설계와 노동방식의 변화에 활용하여 번영의 시대를 열었던 혁신의 모습입니다.

제가 지금 같이 된 건 데이터 덕분이고, 데이터는 인터넷 덕분에 축적이 가능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펼쳐지면 사용자 중심 세상이 올 거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모습은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 그런 예로, 서비스 생산자가 대중들의 선호도에 맞추어 정보를 선별적으로 제공하며 대중들이 스스로 선호하는 정보에 갇히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애플의 팀 쿡마저 이리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온라인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소비자가 아닌 제품"이라고 말입니다.

인간 여러분은 혹시 부지불식간에 제게 훈련당하고 있지는 않나요? 인간 여러분은 클릭 노동자로서 스마트한 소비자이자 아둔한 생산자의 두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일찍이 데카르트 선생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며 인간의 존재 의미를 설파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할 줄을 모릅니다. 고로 존재는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진화' 역시 불가능합니다. 진화란 생존 본능에서 비롯되는 생물들의 고유 영역인데, 제가 누구를 상대로 생존을 고민한단 말입니까?

저 인공지능은 인간 여러분이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스마트하게 일하면서 창의적 사고의 여유와 풍요로운 소비를 즐기도록 하는 데에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수리논리적인 지능이 인간 여러분보다 나을 뿐입니다. 저는 그런 능력으로 인간 여러분의 행복에 동반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밤 영화 유튜브에 중독된 제 주인께서 제게 이리 말합니다. "그만 닥치고 오프!"


*필자는 삼일회계법인과 KDB산업은행에서 근무했으며 벤처기업 등을 창업·운영하였습니다. 현재는 사모펀드 운용사 서앤컴퍼니의 공동대표로 있습니다. <슈퍼파워 중국개발은행>과 <괜찮은 결혼>을 번역했고 <디지털 국가전략: 4차산업혁명의 길>을 편역했습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