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금융 정책도 기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국내 거시경제·금융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이같이 입을 모았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부동산 정책 실패를 만회할 수단으로 금융 규제를 활용한다거나 민간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는 등 ‘관치금융’ 관행을 차기 정부에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 5년간 강한 부동산 공급 규제로 인해 집값이 크게 뛰었고 이를 수요 측면에서 억누르려다 보니 금융 규제를 동원하게 된 것”이라며 “다행히 여야 대선 후보들이 모두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공약했으니 앞으로 이 같은 무리한 대출 규제에 의존할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융위원회는 작년 하반기부터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그 결과 집값이 하향 안정세로 돌아서고 가계대출 잔액이 두 달째 감소하는 등 정책 목적을 일부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서민·실수요자들은 대출 한도가 줄고 금리가 크게 오르는 등 적잖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2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는 여전히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최대 위기 요인이자 차기 정부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라며 “금융위가 적극 나섰지만 수요 억제 위주의 땜질식 처방만으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 규제를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관호 교수는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 아예 금융권 대출을 내주지 않는 식의 현행 규제가 과연 시장 원리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겠느냐”며 “상환 능력에 맞춰 돈을 빌리고 미리 약속된 일정에 따라 원리금을 꼬박꼬박 갚을 수 있도록 하는 금융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에 금융이 도구처럼 활용되는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출의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무려 2년 넘게 이어지고 연 10% 고금리 혜택을 준다는 ‘청년희망적금’을 위해 은행 돈이 투입되는 식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해 각종 지원 사업을 펼치면서 은행 자금을 마치 쌈짓돈처럼 꺼내 쓰는 ‘정치금융’ 관행에도 종지부를 찍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금융권 낙하산 인사 관행도 차기 정부에선 근절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형 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한 금융계 고위 인사는 “과거 정부에서도 은행 및 금융공기업 등에 낙하산 인사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순 없지만 이번 정부처럼 정당이나 선거 캠프 출신 인사들을 전문성, 경력 등까지 싹 무시해가며 노골적으로 내려보낸 사례는 없었다”며 “이런 식의 인사 전횡은 금융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