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환경경영 ABC⑧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ESG 월례포럼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이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의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이승재 기자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ESG 월례포럼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이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의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이승재 기자
환경경영을 처음 시작하는 기업이 가끔 접하는 의문이 하나 있다. 환경경영 시스템에 관한 국제표준규격인 ISO 14001을 구축해 유지하면 환경경영을 제대로 이행하는 걸로 봐도 되느냐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꼭 그렇다고 하긴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약 1만5000개 기업이 인증받은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과연 몇 개 기업이 환경경영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25년 전쯤 이 규격이 처음 제정·공표될 때만 해도 환경경영에 대한 경험이나 이론이 일천했고, 관련 전문가도 거의 없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환경문제에 대한 시각은 물론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인식이나 행동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환경경영 국제표준규격의 탄생

환경경영 관련 국제표준규격인 ISO 14000 시리즈 제정 작업은 국제상업회의소(ICC)가 1991년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기업 헌장’을 선포하고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BCSD, WBCSD의 전신)와 공동으로 국제표준화기구(ISO)에 환경경영 국제표준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ISO는 곧바로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와 공동으로 환경경영 국제표준의 필요성을 검토할 환경전략자문그룹(SAGE)을 설치했고, SAGE는 이듬해인 1992년 환경경영에 관한 국제표준 제정을 ISO에 건의했다. 제정 원칙은 첫째 환경경영의 통일된 접근 방법 개발 및 보급, 둘째 환경 성과 개선을 달성하고 측정할 수 있는 조직의 능력 배양, 셋째 환경을 빌미로 한 무역장벽 철폐와 국제교역 추진 등 3가지다. ISO는 1993년 환경경영에 관한 국제표준화 업무를 담당할 기술위원회(TC 207)를 설치해 본격적인 규격 제정 작업에 나섰다.

199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제1차 ISO·TC 207 총회를 시작으로 수차례 회의를 거쳐 1996년 국제 환경경영시스템 규격인 ISO 14001을 제정했으며, 환경심사 규격인 ISO 14010·14011·14012를 잇따라 제정·공표했다. ISO 14000 시리즈는 환경경영 시스템과 환경심사, 환경성과평가, 환경 라벨링, 전과정평가, 환경친화적 제품 설계, 환경 의사소통, 기후변화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중 핵심 규격이라 할 수 있는 ISO 14001에서는 환경경영 시스템을 위한 필수 사항과 환경경영 시스템 구조의 핵심 요소 등을 규정하고 있다.

ISO 14000 시리즈는 크게 조직 중심의 표준과 제품 중심의 표준으로 나눌 수 있다. 조직 중심의 표준은 조직이 환경경영 시스템을 구축·유지·평가할 수 있도록 복합적 지침을 제공한다. 제품 중심의 표준은 제품과 서비스의 모든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환경 마크, 환경성 주장에 관한 표준과 지침을 제공한다. 제품 중심의 표준은 조직이 제품과 서비스의 환경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설계와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도움을 주고, 특정 환경 정보에 대한 이해관계자와의 의견 교환에 필요한 정보를 지원한다.

환경경영 조직 체계에 관한 국제표준규격인 ISO 14001은 기업 활동의 모든 과정에 걸쳐 환경경영 성과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려는 경영활동을 위해 제정되었다. 이 규격에 준한 인증제도는 기업이 구축한 환경경영 시스템이 국제규격이 정한 규정에 맞는지를 제3의 기관에서 심사해 인증하는 제도다. ISO 14001은 기업이 단순히 해당 환경법규나 규제 기준을 준수하고 있는가의 차원을 넘어 환경경영 방침, 추진 계획, 실행 및 운영, 점검 및 시정조치, 경영자 검토 등을 포함하는 환경경영 조직 체계가 환경경영 성과의 지속적 개선을 위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환경경영 성과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개선을 위한 조직 시스템과 전 종업원의 책임을 명시하고,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조직 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ISO 14001 규격에 규정된 환경경영 시스템의 주요 구성 요건은 다음과 같다.

환경경영의 첫 출발점 ‘ISO 14001’


조직 역량 배양이 핵심

이처럼 환경경영 시스템은 환경경영을 위한 원칙과 절차를 제공하며 조직의 학습과 발전을 통해 지속적 환경 개선을 달성하기 위한 경영 시스템이므로, 조직 역량 배양과 조직 문화의 변화는 환경경영 시스템 성공의 핵심 요소다. 환경경영 방침 수립 및 환경 프로그램의 활용 등 환경 개선을 위한 계획을 마련해도 조직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효과적 이행이나 환경경영 성과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린(green) 조직을 만든다는 것은 ‘기업이 환경경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구성하는 것’으로, 결국 친환경 조직을 만드는 일이다. 여기서 조직을 구성한다는 것은 환경경영 담당 조직을 편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조직 구성원에 대한 교육훈련을 통해 조직 전체가 환경경영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까지를 말한다. 조직의 그린화는 결국 조직의 가치와 문화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1996년 처음 제정한 뒤 약 20년이 지난 2015년에 공표한 ISO 14001 개정판에서는 능동적 환경 성과 개선을 강조하고 조직의 전략 계획에 환경경영을 포함하도록 요구하면서 타 경영 시스템과의 통합을 용이하게 하는 등 효율성 제고에 초점을 두었다. 또한 고위경영자 책임 확대, 환경보호 의지와 적극적 노력, 규제 요구 사항을 포함한 이해관계자 요구와 기대 사항 반영, 환경 성과 개선과 라이프사이클 관점에서 조달된 제품 및 서비스 관련 환경문제 해결 등을 강조하고 문서화에 대한 요구 사항을 줄이는 등 그동안의 여건 변화를 반영했다.

기업 환경문제가 관심의 대상으로 대두된 초창기에는 대부분 제조공정에서 야기되는 환경오염 해결이 주된 과제였기에 환경경영 시스템도 이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ESG 경영이 대세로 자리 잡은 오늘의 환경 이슈는 생산공정보다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곧 기존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기업 전체를 변화의 대상으로 놓고 혁신을 추구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ISO 14001에 기반을 둔 환경경영 시스템 구축을 통해 친환경 조직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보다 근원적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환경경영의 요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병욱 전 환경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