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건조한 대형 LNG운반선의 모습.  /한국조선해양 제공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대형 LNG운반선의 모습. /한국조선해양 제공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유럽연합(EU)·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 간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한국 조선업체들도 그 여파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양 세력의 갈등이 주력 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시황을 좌우할 글로벌 에너지 수급 판도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LNG는 EU와 러시아 간 힘싸움의 소재다. 러시아는 전 세계 천연가스 생산의 16.5%를 차지하는 주요 생산국이다. 하지만 해상 수출 시장에서의 비중은 8.4%로 상대적으로 작다. 생산량 상당 부분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 등 인접 지역으로 연결된다.

EU는 천연가스 수요의 40% 가량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반대로 러시아 역시 천연가스 수출의 절반 가량을 유럽에 수출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도입이 차질을 빚으면 유럽은 대규모 전력난에 봉착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 역시 최대 고객을 잃게 된다.

이번 우크라이나 갈등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조선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업계는 EU가 사건의 결과와 관계 없이 천연가스 등 에너지 도입선 다변화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나친 에너지 의존이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이어졌다는 판단에서다.
우크라이나發 LNG 발주붐 올까…한국 조선업계 '촉각'
실제 지난 8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EU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 준비할 예정"이라며 "에너지 수입국 다변화 등 대책을 모색해 소비자 가격 부담을 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비중을 줄이고, 미국, 중동, 북아프리카 등 다른 LNG산지에서의 해상 공급량을 확대할 것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조선업계는 이 같은 EU의 탈(脫)러시아 행보가 주력 선종인 LNG선과 한동안 침체를 겪었던 해상플랜트 발주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이는 실제 선주들의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조선·해운 전문지 트레이드윈드에 따르면 2027년까지 총 150척 가량을 LNG선 발주 계획을 갖고 있는 카타르 국영 에너지업체 카타르에너지는 최근 올해 발주 계획을 16척에서 20척으로 높였다.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미국 엑손모빌 등도 각각 14척, 8척의 LNG선 발주를 준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노후 LNG선의 교체 주기 도래, LNG 수요 증가로 긍정적인 시황이 이어지던 상황"이라며 "최대 선박 발주국 EU의 도입선 다변화가 해상 물동량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지난해 LNG선 발주의 89%를 싹쓸이한 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빅3가 이들 물량의 80% 이상을 가져올 것이라 보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LNG선 시장에서 한국 조선소의 경쟁자는 중국 후둥중화 정도 밖에 없다"며 "EU가 도입선을 다변화할 경우 정체됐던 글로벌 가스전 사업에도 속도가 붙으며 플랜트 발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수 년간 러시아가 동부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으로 국영 즈베즈다 조선소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수주 확보를 위해 여기에 참여한 빅3의 러시아 사업 비중이 커진 것은 리스크 요인이다. 삼성증권 분석에 따르면 현재 빅3의 수주 잔고 가운데 러시아에서 수주한 LNG선은 7척에 달한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7억달러 규모의 셔틀탱커 기자재를 러시아로부터 수주했다.

하지만 이는 1월말 기준 빅3의 LNG선 수주잔고 150척에 비해선 극히 작은 비중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아직 대러시아 제재 수준이나 방향이 정해지지 않아 미래를 예단하긴 어렵다"면서도 "단기적인 리스크는 커질 수 있으나, 최대 발주국인 EU의 방향 전환을 불러올 사이클 개선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