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드플래시 적층의 한계는 200단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전문가들이 2017년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개최한 기술 로드맵 세미나에서 내놓은 진단이다. 단수를 높일수록 불량률이 높아지고, 원가도 비싸져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1000단도 구현 가능”

낸드 적층 대결 '魔의 200단' 넘긴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5년 만에 이 한계를 뛰어넘는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르면 올해 말 230단 이상의 V낸드를 출시한다. 200단이 넘는 낸드플래시 제품을 상용화하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주요 기술을 모두 확보했고 수율(완성품 중 양품의 비율)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도 내년 초 출시를 목표로 230단 이상 4차원(4D) 낸드를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00단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 일등공신은 TSV(실리콘 관통전극)를 필두로 한 차세대 패키징 기술이다. 수직 배열한 셀에 구멍을 뚫어 전극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수율과 안정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최근 반도체업계 최고경영자들이 낸드 적층의 한계를 넘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배경엔 이런 기술적 혁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기남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은 지난해 말 “1000단 이상 낸드플래시 기술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7세대(176단) 낸드를 ‘초고층 낸드’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칩에 하나의 구멍을 한 번에 뚫는 ‘싱글스택’ 기술 대신 두 번의 공정으로 나눠 뚫는 ‘더블스택’ 기술을 적용한 첫 제품이기 때문이다. 128단을 싱글스택으로 제조할 수 있는 업체가 더블스택 기술을 활용하면 256단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6세대 V낸드 개발을 주도한 경계현 사장이 DS부문장을 맡아 삼성의 낸드 사업이 더 탄력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평택 2라인에서 176단 낸드를 활용한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낸드로 만든 저장장치)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인텔 품고 날개 단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를 계기로 낸드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200단 이상 ‘초고층 낸드’와 ‘저렴한 SSD’ 양산이 목표다.

인텔은 전통적 낸드플래시 데이터 저장 방식인 ‘플로팅게이트’를 고집해왔다. 플로팅게이트를 쓰면 원가를 낮출 수 있지만 고용량·고집적에 불리하다. 대다수 업체가 플로팅게이트 대신 CTF(전하 트랩 플래시) 방식을 쓰는 이유다. 하지만 인텔은 플로팅게이트 기술을 심화 발전시켜 2019년 144단을 쌓는 데 성공했다.

SK하이닉스는 CTF 방식으로 제조한 낸드에 인텔의 기술이 들어간 컨트롤러를 탑재한 SSD를 개발해 시제품을 내놨다. SK하이닉스와 인텔의 장점을 합하면 SSD 용량을 줄이지 않고도 제조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한 셀에 5비트를 저장하는 PLC(펜타레벨셀) 기술까지 적용하면 SSD 가격을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 수준으로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회사 관계자는 “전 세계 서버 시장의 HDD 수요를 SSD가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달리 해외 경쟁사들의 낸드 200단 진입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일본의 키옥시아는 162단 낸드를 개발 중이다. 미국의 마이크론은 176단 낸드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