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초신선 혁명' (上)

온라인 플랫폼 유통혁신 성과

쿠팡, 산지에 물류센터 갖춰
중간 유통단계 과감히 없애고
새벽배송으로 신선도 높여
충남 태안 바닷가의 한 허름한 건물. 어민들이 잡아올린 새우, 꽃게가 물차에 실려 들어올 때마다 쿠팡 직원들이 상자째 얼음에 담가 기절시키느라 분주했다. 약 230㎡ 규모인 이곳은 쿠팡의 ‘이동식 산지 물류센터(모바일 플렉스)’. 제대로 된 ‘산지직송’을 구현하기 위해 물류센터를 아예 산지로 이동시킨 신개념 야심작이다. 이동 물류센터 안에는 택배 운송장을 인쇄하는 프린터와 노트북, 소프트웨어까지 구축돼 있다. 이 덕분에 고객 주문량대로 소분된 수산물은 당일 밤 늦어도 다음날 새벽 소비자 집 문 앞에 도착한다. 쿠팡 관계자는 “새벽에 잡은 수산물을 오전에 포장 작업을 마쳐 오후 1시께 콜드체인 차량이 전부 싣고 직배송에 나선다”고 설명했다. 모바일플렉스는 완도 활전복, 신안 생새우, 영암 무화과 등 다양한 신선식품의 유통혁신에 활용되고 있다.
태안 꽃게 잡자마자 식탁으로…고객 입맛 살고, 매출은 '펄떡'

중간유통 없앤 온라인發 초신선혁명
27일 업계에 따르면 신선식품이 고질적인 다단계 유통구조 혁파의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다. 생산자-중도매인-중간유통업자-대형마트(동네마트)-소비자 등 5단계를 거치던 과정을 플랫폼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게 바꾸는 실험이 초신선 분야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온라인 유통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오프라인을 앞선 데는 이런 신선식품의 도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백화점, 대형마트조차 어려움을 겪던 유통채널 혁신이 e커머스 플랫폼의 등장에 일거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쿠팡과 마켓컬리 등 거대 온라인 플랫폼뿐만 아니라 소규모 초신선식품 스타트업도 이 같은 유통혁신에 대거 뛰어들고 있다. 수산물 유통 플랫폼인 얌테이블은 중간 벤더를 없애기 위해 아예 거제도에 본사를 뒀다. 이 업체를 창업한 주상현 대표의 명함은 플라스틱 코팅이 돼 있다. 항상 손이 젖어 있는 어민들을 찾아다니며 직매입 계약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얌테이블은 바다에서 육지로 옮기는 중간 업체마저 없애기 위해 자체 활어운반선까지 보유하고 있다.

경남 통영 출신인 주 대표는 “수산물은 바다에서 건지자마자 ‘화상’을 입는다고 어민들이 표현할 정도로 예민한 생물인데 기존 유통으로는 5~6번 물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떨어지는 신선도를 높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얌테이블은 굴 경매사 자격을 보유한 직원을 채용해 경매에서 낙찰받은 굴을 다음날 아침 새벽배송해주기도 한다.

수산물 플랫폼 파도상자는 매입 과정조차 생략했다. 어민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중개 플랫폼 역할만 하겠다는 취지다. 유병만 파도상자 대표는 “우리는 마진이 아니라 수수료만 받는다”며 “마진은 최대한 어민에게 드리고 소비자에겐 초신선식품을 준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간유통을 없앤 온라인 신선식품은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20년 460억원이던 얌테이블 매출은 지난해 두 배로 증가해 1000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생산자·소비자 직거래가 바꾸는 유통시장
유통구조가 단순화되면서 사라진 중간마진은 산지 생산자와 소비자, 스타트업들에 고루 돌아가고 있다. 중간마진을 없앤 플랫폼들은 농어민에게 후한 매입가격을 쳐주기 시작했다. 쿠팡과 거래하는 비비수산의 매출은 모바일플렉스 도입 전엔 월 2억~3억원대였지만 지금은 월 7억원대로 껑충 뛰었다. 비비수산은 올해 쿠팡을 통한 매출만 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성훈 쿠팡 매니저는 “필요하면 배 위에라도 물류센터를 만들어 생산자에게 이익을 주고 소비자에게 신선한 식품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관심 또한 농어민 직접 지원에서 유통구조 혁신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과거엔 농어민 소득 증대를 위해 생산자를 직접 지원하는 데 무게를 뒀으나 최근에 ‘유통 혁신’으로 바뀌고 있다.

태안=박한신/노유정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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