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결산을 앞둔 은행들이 지난해 4분기 대손충당금을 얼마나 쌓을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잠재부실 위험에 대비하라며 “더 쌓아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배당이 줄어 주주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둔 가운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만기 연장 조치가 종료될지 여부도 은행들이 고심하는 대목이다.
"충당금 더 쌓아라" 당국 압박에 은행 딜레마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감독원은 주요 은행들이 제출한 지난해 4분기 대손충당금 적립 계획에 대해 ‘적립 규모를 상향하라’고 요청했고, 일부 은행은 계획을 다시 제출했다. 금융당국은 오미크론 확산세가 심상치 않고, 금리 폭등으로 자산 가격이 조정 국면에 접어드는 등 시장 불안 요인이 적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이날 금융플랫폼과의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최근 시장 리스크에 비해 충당금 규모는 작년보다 줄어든 모습”이라며 “(충당금을 늘려) 위험이 현실화했을 때의 흡수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손충당금은 떼일 우려가 있는 대출자산에 대한 예상 손해액을 이익에서 미리 빼두는 것을 말한다. 충당금을 충분히 쌓아두면 향후 부실이 현실화하더라도 재무제표상의 충격 없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은행들은 코로나19가 촉발한 2020년 이후 충당금 적립액을 크게 늘렸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은행의 충당금 적립잔액은 2019년 말 4조8078억원에서 지난 3분기 말 5조713억원 규모로 불었다. 하지만 이 기간 손실 위험이 높은 ‘고정이하’ 여신(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은 4조1555억원에서 3조1461억원으로 감소했다.

은행들이 고심하는 건 이 대목이다. 이 기간 쌓은 충당금은 충분(대손충당적립률 115%→161%)하다고 여겨지는 반면 연체율(4대 은행 단순평균 0.26%→0.17%)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은행의 재무담당 임원은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은행들은 30억원 이상 대출에 대해 일일이 자산 평가를 통해 충당금을 쌓고 있다”며 “충당금을 더 늘리려면 정상 여신을 고정이하로 분류해야 하고 대출을 회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몇몇 은행은 금감원에 ‘코로나19 대비’ 명목으로 쌓았던 특별 충당금을 10%가량 늘리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이 충당금 확충을 주문하는 이유는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115조원) 및 원금·이자 상환 유예(12조1000억원) 조치를 3월 말로 원칙적으로 종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 비율이 떨어진 건 대출 만기 연장에 대한 착시 효과일 뿐 향후 자영업자 대출이 부실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서영수 키움증권 이사는 “자영업자 대출 대부분이 만기 원리금 상환 방식이지만 은행들은 실제 상환 능력을 감안해 충당금을 쌓지 않았다”며 “한 대형 은행은 이런 충당금을 2000억원가량 쌓았는데, 면밀히 대출을 평가했다면 두 배 이상의 충당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만기 연장 조치가 만료되더라도 은행의 코로나 대출 대부분이 보증서 및 담보부로 제공돼 건전성에는 직접적 연관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금융당국의 지적대로 주요 은행들은 시장이 충분히 위험하다고 보고 충당금을 대폭 쌓아왔으며, 결코 대비가 부족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은행보다 다중 채무자가 많은 2금융 대출의 리스크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감원은 이날 19개 신용카드사 및 캐피털사의 임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충당금 적립액을 늘리는 등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박진우/빈난새/이인혁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