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부담보다 투자가 먼저"
기업들 공격적 자금 조달
기업들이 연초부터 역대 최대 규모의 회사채를 찍으며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가중됐지만 전기자동차, 태양광 등 미래 신사업 투자를 늦춰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1월 회사채 발행 7조 '사상 최대'

2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 회사채 발행 금액은 같은 달 기준 최대였던 2019년의 6조3280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7조원 안팎에 달할 전망이다. 올 들어 17개사가 4조9850억원어치를 찍었고, 9개사가 1조4200억원 규모를 발행하겠다고 밝히는 등 이미 6조4050억원어치 이상이 확정됐다.

대기업들이 신사업 투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금 조달 시장을 찾는 사례가 두드러진다. 한화솔루션은 오는 24일 3800억원어치를 발행하기로 했다. 출범 이후 최대 규모로 대부분을 태양광 셀·모듈 생산라인에 투자할 방침이다. 롯데렌탈도 창사 이후 최대인 4100억원을 26일 조달해 전액 전기차 등을 매입하는 데 쓰기로 했다. 작년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 신세계그룹과 올해 신사업 집중 투자 계획을 선포한 롯데그룹도 계열사별로 회사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윤병운 NH투자증권 IB1사업부 대표는 “이자 부담이 커졌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회사채 발행 규모를 키우고 있다”며 “지금 투자 타이밍을 놓치면 신사업에서 주도권을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에프앤자산평가 등에 따르면 회사채(신용등급 AA-, 3년물 기준) 평균 금리는 이날 연 2.65%로 올해 들어 0.24%포인트 올랐다. 지난 17일엔 연 2.70%로 2018년 5월 이후 3년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롯데렌탈 2500억→4100억, 한화솔루션 2300억→3800억
회사채 금리 뛰어도 발행액 더 늘렸다
회사채 발행 기업들은 미래 지속 성장을 위해선 지금 신사업 투자에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글로벌 탈(脫)탄소, 비대면·플랫폼 산업화 흐름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위기감이다.

신사업 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금 조달 규모의 과감한 확대도 잇따르고 있다. 롯데렌탈은 당초 2500억원의 회사채 투자 수요를 모집했으나 수요가 몰리자 조달 규모를 1.6배인 4100억원으로 확대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로부터 구매하는 전기·하이브리드·수소 차량 구매 대수를 늘려 친환경 운송 사업자로 변신을 서두른다는 전략이다. 지난 20일 신동빈 롯데 회장은 사장단 회의를 열고 ‘신사업을 위한 연구개발(R&D) 등 핵심역량 강화를 위한 과감한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화그룹의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이끄는 한화솔루션도 기술 혁신 재원 마련을 위해 회사채 발행 규모를 당초 2300억원에서 3800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충북 음성·진천 공장의 태양광 셀·모듈 생산라인 개조에 자금을 투입해 고효율 제품 생산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 물량의 90% 이상을 점유하는 중국 기업들을 상대로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이끌어 나가려면 고부가가치 첨단 제품 생산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탄소배출 저감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는 현대제철도 오는 25일 55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차원의 부생수소 사업 등 친환경 프로젝트 자금 수요가 꾸준해 앞으로도 대규모 자금 조달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의 통신사업자 SK브로드밴드는 만기 도래 회사채 규모보다 많은 1500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으기로 했다. SK브로드밴드는 케이블망을 광섬유로 전면 대체해 전력 소비를 줄이는 프로젝트에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장기 유동성 자금을 충분히 보유하려는 기업들도 자금 조달 규모를 늘리고 있다. 미래에셋증권과 CJ제일제당 등은 만기 도래 회사채보다 더 많은 5000억원 이상의 회사채를 발행해 기업어음(CP) 등 단기차입금을 줄이는 데 쓰기로 했다.

이태호/이현일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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