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집행위원회는 지난 연말 녹색 분류체계인 EU 택소노미 최종 초안을 회원국들에 보냈다. 논란이 됐던 원전과 천연가스도 포함됐다. 그러나 원전을 둘러싼 EU 회원국 간 대립은 여전하다. 전문가 그룹의 자문을 거쳐 유럽의회와 이사회에서 적절한 타협안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한경ESG] 정책 동향
프랑스 남부 크뤼아스에 있는 프랑스 전력공사(EDF)의 원자력 발전소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프랑스 남부 크뤼아스에 있는 프랑스 전력공사(EDF)의 원자력 발전소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30일 파리 근교 빌팡테 전시장에서 세계원자력전시회(World Nuclear Exposition)
가 열렸다. 팬데믹으로 3년 만에 열린 이번 전시회는 세계 최대라는 규모뿐 아니라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논의의 흐름을 가늠하는 자리였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사흘간 열린 이번 전시에는 65개국에서 1만8000명의 전문가들이 방문해 대성황을 이뤘다.

개막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원전이 CO2를 가장 적게 배출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원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를 주도한 프랑스는 이미 2021년 11월 9일 20년 만에 새로운 원전 7기를 건설하겠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발표로 고무된 분위기였다. 이에 부응하듯 개막식에서 주요 인사들은 원전이 지속 가능 투자 지침인 택소노미에 포함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상반된 원전 정책

2020년 11월에 발표한 택소노미 초안에는 원자력발전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원전의 택소노미 포함을 위한 샅바 싸움이 치열해졌다. 프랑스·체코·폴란드 등 11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어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원전이 필수라고 주장하는 반면, 독일·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 등 5개국은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안전성을 언급하며 반대해왔다. 대립이 지속되자 EU 집행위원회는 천연가스와 원자력의 택소노미 포함 여부를 지난해 12월 22일 결정하기로 했으나 12월 30일이 되어서야 최종 초안을 27개 회원국에 발송했다.

원전이 친환경 산업인지에 대해 프랑스와 독일은 크게 다른 정책을 채택해왔다. 원전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프랑스는 석유파동 이후 원전을 주요 에너지 산업으로 육성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태 이후 2015년 제정된 에너지 전환법을 통해 2025년까지 전력공급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50%로 제한한다고 규정하고 2035년까지 원자로 14기를 정지하기로 했다.

프랑스는 2019년 2050년까지 순제로 배출에 도달하는 목표를 법으로 정하고 새로운 국가 저탄소 전략과 10년 에너지 계획을 통해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덕분에 지난 10년 동안 전력발전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2010년 14%에서 2020년 23.4%로 증가했다. 그러나 전력 수요가 2050년 2배로 증가할 것임을 감안할 때 기존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연장과 신규 건설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한마디로 탄소중립을 위해 프랑스는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독일은 1998년 핵에너지의 단계적 폐지를 선언했다. 이는 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다. 특히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면서 체르노빌 사고의 악몽을 기억하는 독일은 5월 말 8개 원자로를 즉시 폐쇄했다. 또 2022년까지 원전 17곳을 단계적으로 모두 폐쇄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탈원전의 중심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가정용 전기료는 kWh당 430원 정도로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비싸며 우리나라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독일의 탈원전 정책은 계획대로 진행 중이었다. 독일 정부에 따르면, 원자력이 독일 전체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탈원전 선언 직전인 2010년 22.2%에서 금년에는 0%가 된다.

EU의 중심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은 원전 정책에 대해 이처럼 상반된 길을 걸어왔다. 최근 기후변화가 핵심 이슈로 등장하면서 프랑스의 경우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이에 대한 지지를 넓혀가고 있다. EU의 11개 국가가 원전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이에 동의하고 있다. 반면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5개 국가는 원전 폐기물의 안전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원전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원전과 천연가스는 ‘황색’ 분류될 것

그런데 최근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올해 11월에 열릴 COP27에서 국가별 탄소감축 시나리오를 다시 제출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다. 탄소배출량이 가장 적은 원전을 제외하고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한가 하는 큰 물음에 직면했다. 원전 폐기 정책을 고수하던 독일도 전력공급원의 25%를 차지하는 풍력발전이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전기 생산에 차질을 빚어 고민하는 상황이다.

독일은 탄소감축 노력의 모범생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전기 생산의 24%를 석탄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석탄발전을 줄이면 전력 생산비가 오르고 연관 산업이 타격을 받기에 2019년 독일은 2038년까지 84개의 석탄 화력발전소를 점진적으로 폐쇄하기로 했다. 그런데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입국인 독일은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천연가스가 정치적 갈등으로 차질을 빚으면서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낼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외신들은 지난해 12월 8일 출범한 올라프 숄츠 내각에 주목한다. 신임 총리는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를 중시해 원전을 둘러싼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지난 연말에 제출한 천연가스 및 원전을 추가하는 EU 택소노미 보완법은 1월 12일까지 지속 가능 금융 전문가 그룹의 자문을 받게 된다.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해 기존의 친환경(green)뿐 아니라 활성화(enabling), 전환(transition)이라는 2개의 범주를 추가했다. 전문가 그룹이 보완법을 채택하면 유럽의회와 이사회는 4개월 동안 문서를 면밀히 검토하고 적절한 타협안을 만들 것이다. 예상되는 EU 택소노미는 지나치게 ‘이분법(binary)’으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친환경 산업은 아니지만 과도기의 '황색(amber)' 범주를 만들고 원전과 천연가스를 포함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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