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재고 부족으로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겨울 한파가 닥치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원유 생산을 늘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OPEC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OPEC은 왜 원유 증산을 머뭇거리는 걸까. 원유 수요는 경제 상황에 따라 빠르게 반응하지만, 원유 생산은 더디다. 따라서 OPEC이 원유 생산을 늘리려면 향후에도 원유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OPEC은 앞으로 원유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신재생에너지 사용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OPEC에 부담 요인이다.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노르웨이에선 신차 중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64%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과 유럽에 비해 전기차 보급이 늦은 미국도 2025년에는 전기차 비중이 1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각국이 탄소 배출량 감소를 위해 보조금 지원, 세금 감면 등 정책 지원을 펼치고 있다. 에너지 기술이 발전하면서 신재생에너지 단가 역시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올겨울 원유 가격이 과연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까. OPEC이 원유 증산에 나서지 않고, 라니냐(동태평양 적도 부근 바다의 저수온 현상)로 북반구 한파가 길어진다면 원유 가격이 일시적으로 급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 이상에서 장기간 유지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유가가 상승할수록 천연가스나 원자력발전 같은 저탄소 에너지와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치솟는 유가…마지막에 웃는 건 신재생에너지
신재생에너지는 전력 생산 못지않게 전력 저장도 매우 중요하다. 지형과 기후, 날씨 등 자연 조건에 따라 전력 생산량 변동이 크기 때문이다. 배터리를 이용해 전력에 여유가 있을 때 전기를 충전한 뒤 전력 수요가 많을 때 꺼내 쓸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여유 전력으로 수소를 만들어 보관하는 수소전지, 신재생에너지 가동률이 낮은 경우 부족분을 메우는 데 쓰이는 소형 모듈형 원전 등이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여러 신재생에너지 분야 중 성장 잠재력이 가장 큰 산업으로 배터리 분야를 꼽았다. 고유가에 따른 최대 승자는 결국 신재생에너지가 될 것이다.

이승희 국민은행 WM투자전략부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