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 '실트론 지분 매입' 논란 놓고 법리 공방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이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 출석해 SK실트론(옛 LG실트론) 지분 인수 과정에 대해 소명했다. 이날 최 회장과 공정위는 2017년 SK가 LG로부터 반도체 웨이퍼 기업 LG실트론을 인수할 때 회사 측이 최 회장 개인에게 지분 인수 기회 등 부당 이익을 제공했는지 여부를 놓고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다.

기업 총수가 공정위 전원회의에 직접 출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최 회장이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공정위를 직접 설득하며 관련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란 해석이다.

‘사업기회 제공’ 여부가 핵심 쟁점

최 회장은 SK실트론 사건 전원회의 참석을 위해 이날 오전 공정위 세종청사에 도착했다. “직접 소명하러 온 이유가 뭐냐” “부당 지원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뭔가” 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최 회장은 “수고 많으십니다”라고 짧게 답한 뒤 심판정으로 향했다. 전원회의는 공정위의 최고 의결 절차로 1심 재판에 해당한다. 최 회장은 이날 전원회의가 끝난 오후 늦게까지 자리를 지켰다.
최태원 SK 회장 '실트론 지분 매입' 논란 놓고 법리 공방
앞서 공정위는 지난 8월 최 회장이 SK실트론 지분 29.4%를 사들인 과정이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최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격)를 SK에 발송했다. 이번 사건은 2017년 1월 SK가 당시 LG실트론 경영권(지분 51%·주당 1만8139원)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SK는 같은 해 4월 LG실트론 지분 19.6%를 추가로 사들였다.

공정위는 4개월 뒤인 8월 최 회장이 우리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한 29.4%(주당 1만2871원)의 LG실트론 지분을 개인 자격으로 취득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최 회장이 SK가 최초로 사들인 LG실트론 지분보다 30%가량 저렴하게 지분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SK가 경영권 프리미엄이 빠진 실트론 잔여 지분을 전량 싸게 살 수 있었음에도, 최 회장에게 의도적으로 29.4%의 지분 취득 기회를 넘겼다고 보고 있다. 이후 SK실트론의 기업 가치가 상승하면서 최 회장이 큰 수익을 얻었다는게 공정위의 시각이다.

이 사건을 공정위에 조사 요청한 경제개혁연대는 최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취득 과정이 상법 397조의2와 공정거래법 23조의2에서 금지하는 ‘회사의 사업 기회 및 자산의 유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당시 반도체 업황과 SK하이닉스와의 시너지 등을 고려할 때 SK와 최 회장이 SK실트론의 성공을 확신했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심사보고서에도 최 회장에게 사업 기회 유용 법리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SK “실트론 성공 누가 장담했겠나”

SK는 심사보고서 수령 이후 공정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해 왔다. 우선 정관변경 등 중대사항을 의결할 수 있는 특별결의 요건(3분의 2 이상) 이상의 지분(70.6%)을 확보한 SK가 뒤이어 LG실트론 지분을 더 사들일 이유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지분 매입 과정에서 아낀 돈으로 중국 물류회사 ESR을 사들이는 등 합리적 경영 판단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SK 측은 최 회장이 지분 취득 당시 반도체 기술을 놓고 경쟁하는 중국 등 외국 자본의 지분 인수 가능성을 감안하고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공개입찰에 참여했으며, 적법한 취득 절차를 거쳤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자본이 들어오게 되면 이사회 참여와 기업 정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이를 고려해 (최 회장이) 채권단이 주도한 공개경쟁 입찰에 참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SK의 인수 절차 과정에서 LG실트론의 기업가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정위의 사업 기회 유용 판단은 결과론적 해석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반도체 및 웨이퍼 시장은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큰 대표적인 산업이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전원회의 결과를 토대로 이번 사건의 위법성 판단 및 제재 수위, 검찰 고발 여부를 결정한뒤 이르면 다음주 최종 사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지훈/정의진/남정민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