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
사진=크래프톤 제공

사진=크래프톤 제공

국내 게임사들이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에 달하는 대형 인수합병(M&A)에 잇따라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이 과정에서 투자은행(IB)들은 소외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미 글로벌 인지도를 쌓은 게임사들은 IB도움 없이도 수십건의 M&A '러브콜'이 쏟아지는 데다, 게임산업의 특수성 탓에 IB역량이 크게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매년 게임사들이 자본시장에 큰 손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파티'에 끼지 못한 IB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1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최근 약 9000억원을 투입해 미국 게임사 '언노운월즈'의 빅딜을 성사시켰다. 조 단위에 육박한 거래였지만 이 과정에서 별도의 IB를 고용하진 않았다. 약 20명 남짓의 전략본부가 딜 전체 과정을 총괄했다.

"몇 게임 해보면 딱 보이죠"…게임사 '빅딜' 소외되는 IB들 [차준호의 썬데이IB]

전략 본부 내에선 올해 7월 크래프톤에 합류한 이용섭 실장(사진)이 '키 맨'으로 전체 거래를 챙겼다. 이 실장은 2007년 캐나다 연금 계획 투자위원회(CPP Investments)을 통해 첫 금융투자업계에 발을 들인 후 2013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핌코 본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6년부터 벤처캐피털(VC)인 아치스톤인베스트먼트(Archstone Investments)에서 파트너로 재직하다가 올해 크래프톤의 투자 책임자로 합류했다. 크래프톤은 전략본부를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의 직속조직으로 둘 정도로 상장(IPO) 이후 M&A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 8월 2조5000억원에 달하는 소셜 카지노인 '스핀 엑스'를 사들인 넷마블도 인수 과정에서 로펌과 회계법인 등을 고용하면서도 IB는 연락하지 않았다. 넷마블 내 재무책임자(CFO)이자 재무전략담당인 도기욱 전무를 비롯한 5명 내외의 소수 인원으로 구성된 M&A팀이 조단위 빅딜을 완주했다. 도 전무는 별도의 IB경력 없이 넷마블 전신인 CJ ENM 게임사업부 출신의 내부 인력이다. 함께 손발을 맞춘 관계자들 사이에선 "외부 금융계 인력 보강도 없이 자체 인력만으로도 어느 기업 못지않게 M&A 업무를 잘한다"는 평가가 나옸다.

카카오게임즈도 올해 히트 게임 중 하나로 꼽히는 '오딘'의 개발사 라이온하트를 이달 4500억원에 인수했지만 역시 IB는 관련돼 있지 않았다. 카카오게임즈는 올 초 1900억원을 들여 '넵튠'을 인수하는 연내 두 건의 대형 거래를 성사시키며 발빠른 행보에 나섰다.

이처럼 게임사발(發) M&A가 쏟아지다보니 소외된 IB들은 일감을 따기 위해 회사를 수시로 찾고 있다. 일반적으로 글로벌IB들이 자문을 맡는 거래 규모가 최소 2000억~3000억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해마다 10여건의 거래들을 눈앞에서 놓치는 것으로 계산된다. 다만 인수 물건 발굴, 기업가치산정, 산업분석 등 주요 업무에서 내부 인력들이 누구보다 더 능숙하기 때문에 별도의 자문사를 둘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게 게임업계의 중론이다.
이미지=카카오게임즈

이미지=카카오게임즈

실제 크래프톤의 언노운월즈 빅딜도 연초 매각측이 크래프톤을 포함한 소수의 글로벌 게임사들에 먼저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국내 게임사들이 최근들어 이같은 '초청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으로 자리잡았다는 얘기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 제휴를 맺거나 알고 지내던 사이에서 알음알음 제안이 오는 상황이 대다수"라며 "IB를 쓸 이유가 별로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M&A시장에서 잘 보이지 않던 대형 게임사들도 최근 인수합병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성장 부재에 신작 부진까지 겹쳐 주주들의 질타를 받은 NC소프트는 최근 M&A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NC소프트가 대형 M&A를 추진한 건 2015년 EA게임즈 인수를 시도한 이후 6년만이다. 넥슨은 아예 2019년 글로벌 IB에서 회사 매각업무를 총괄하던 알렉스 이오실레비치를 사내 투자총괄 임원으로 영입해 M&A를 맡겼다. 이 때문에 한 때 업계에선 회사 매각을 다시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각 게임사들의 관심분야가 동종 게임사 뿐 아니라 대체불가토큰(NFT), 가상화폐 등으로 넓어진 점도 IB들엔 고민거리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설상가상으로 기존 금융사 업무에선 커버하지 못한 영역들에 게임사들이 관심을 쏟다보니 점점 더 IB 무용론이 확산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