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마크스 "오늘과 내일은 완전히 다른 세상... 새 질서에 맞게 투자하라"[메모 전문 독점공개]

하워드 마크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사진)은 “인플레이션이나 금리 변동 같은 ‘작은’ 거시적 변화보다 오랫동안 우리 삶에 파급력을 미칠 ‘커다란’ 거시적 변화에 주목하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오크트리 고객들에게 보낸 ‘메모’를 통해서다.

그는 “지금의 선두 기업이 5~10년 뒤에도 그대로일 것이라 생각하는 건 오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60년대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를 언급했다. 당시 미국 기관투자가들이 선호하는 이른바 ‘멋진 종목’들을 일컫는 말이다. IBM, 필립모리스, 제너럴일렉트릭, 코카콜라 등이 포함된 니프티 피프티는 시장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는 수익률을 거뒀지만 70년대 들어 거품이 꺼졌다. 지금은 이 종목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시기라고 마크스 회장은 강조했다.

마크스 회장은 기술적 진보가 디플레이션을 촉발할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기술이 생산성을 향상시키면 근로 시간이 줄어들어도 GDP를 끌어올릴 수 있지만, 동시에 실업률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디스플레이션이 올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무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팬데믹 전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2020년 이전의 세상이 어떻게 달랐는지 기억하나”라는 질문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마크스 회장은 미굴 부실채권 전문 사모펀드사인 오크트리캐피털의 공동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오크트리캐피털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480억달러(약 168조원)에 달한다. 마크스 회장은 시장이 좋을 때는 관망세를 보이다가 환경이 악화되면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시장역행투자자(contrarian)로 잘 알려져 있다.

마크스 회장의 ‘메모’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필독 콘텐츠 중 하나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이메일 수신함에서 마크스의 메모를 발견하면 가장 먼저 열어본다”며 “그때마다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경제신문은 하워드 마크스 회장 메모의 한글 전문을 독점 게재한다. 아래는 지난달 23일 내놓은 메모 전문.

지난 20개월은 매우 이례적인 시기였으며 그 주된 원인은 팬데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에도 많은 일들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매일매일이 다른 모든 날들과 다름없어 보입니다. 저와 낸시는 집안에 머물면서 이메일과 줌 화상통화를 통해 업무를 처리하거나 손주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주중과 주말이 그다지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외식이나 지인 방문이 거의 없었던 백신 접종 이전에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딱 한 번 1주일간 휴가를 다녀온 것이 전부입니다. 성촉절(Groundhog Day)이 지금의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날그날이 바로 전날과 너무나도 흡사하게 느껴집니다.

지난 12개월 동안 우리 주변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대선을 치렀고 대통령이 바뀌었으며 인종, 불평등,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습니다―그럼에도 아직까지는 가시적인 성과가 거의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백신이 개발되고 승인을 거쳐 일반에 보급됐습니다. 그리하여 코로나19가 한풀 꺾였지만 델타 변이로 인해 재확산이 촉발됐고 앞으로도 그런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새로울 것이 거의 없습니다.

• 2020년 3분기에―미국 역사상 가장 큰 폭의 GDP 성장을 기록하면서―시작된 경제 회복이 지금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 2020년 3월에 랠리를 시작했던 주식 시장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의 인플레이션 우려는 옳았던 것으로 판명됐지만 주된 원인이 무엇인지 (연준 정책 때문인지 아니면 공급망/고용시장 병목 현상 때문인지), 그 영향이 일시적일지 혹은 장기적일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위에 열거된 3가지 상황은 수개월 전부터 존재했으며 현 시점에서도 달라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처럼 투자 환경에 관한 한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변화가 일고 있으며 그것이 이번 메모의 주제입니다. 저의 관심사는 내년도 GDP, 인플레이션, 금리의 변동 같은 ‘작은 거시적’ 변화가 아니라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 삶에 파급력을 미치게 될 ‘커다란 거시적’ 변화입니다. 그 중 상당수는 당장은 실현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변화하는 투자 환경

제가 전에도 서술했던 것처럼 제가 기억하는 50년, 60년, 70년 전의 세상은 무척이나 정적인 시절이었습니다. 세상이 그리 크게 혹은 빠르게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1970년의 집과 차, 읽을거리, 경영 기법, 전반적인 환경은 1950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중파 TV와 라디오가 오락 거리였고 기화기가 장착된 휘발유 차를 몰았으며 대부분 종이 위에 계산을 했을 뿐 아니라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했고 (사본은 먹지를 사용해서 만들었습니다) 편지와 전화로 연락을 주고 받았으며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정보를 얻었습니다. 사칙연산 계산기, PC, 휴대폰, 이메일, 인터넷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가운데 몇몇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등장했습니다. 저는 이런 환경을 갖가지 상황과 사이클이 펼쳐지는 무대의 뒤편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 배경으로―저는 이것을 일종의 무대장치라고 생각합니다―묘사하고자 합니다.

1960년대에 일어난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상당수가 신생 업체였던 급성장 기업을 통한 ‘성장 투자’ 기법의 등장이었습니다. 제가 너무나도 자주 언급하는 ‘니프티 피프티’가 1960년대 말 주식시장을 지배했습니다. 사무용품 제조업체 IBM과 제록스, 거대 사진 기업 코닥과 폴라로이드, 머크와 일라이릴리 같은 제약업체, 휴렛팩커드와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의 기술 기업, 코카콜라와 에이본 같은 선진 마케팅/소비재 업체가 여기에 속했습니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주가수익비율이 80~90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았습니다. 당연히, 투자자들은 앞으로 수십년 동안 현격한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확신하는 기업인 경우에만 (만약에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그러한 수준의 배수를 지불해야 합니다. 당시 투자자들은 확신에 넘쳤습니다. 실제로, 이들 기업에 불리한 상황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며 이 기업들이 붕괴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했습니다. 이는 전후에 미국이 처음으로 새로움을 중대하게 접한 계기였으며―비논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서―투자자들은 혁명적인 새로움으로 무장한 이 기업들을 기꺼이 수용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훗날 더 새롭고 더 나은 기업이 이들을 대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맹신했습니다.

당연히 투자자들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제가 사회에 진출했던 1969년에 ‘미국 최고의 기업들’ 주식을 매수해서 5년 동안 끈질기게 보유했다면 투자한 돈을 거의 다 잃었을 것입니다. 1960년대 말의 배수가 과도하게 높았고 이어진 시장 조정에서 처참한 지경에 직면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 ‘영원한’ 기업들 중 상당수가 변화에 취약한 것으로 판명됐다는 사실이 아마도 더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니프티 피프티 기업들은 신세계에서 최초로 만개한 변화의 중심에 있었으며 상당수가 초창기에 제물로 전락했습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기업의 절반 이상이 도산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됐습니다. 코닥과 폴라로이드는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과 동시에 존재 이유를 상실했습니다. 제록스는 건식 복사기 시장의 상당 부분을 해외의 저가 경쟁업체들에게 빼앗겼습니다. IBM은 분산형 컴퓨팅과 PC가 대형 메인프레임을 잠식하면서 취약성을 노출했습니다. 최근에 방문 영업사원을 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이제는 더 이상 ‘에이본 판매원’이라는 호칭을 접할 수 없습니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심플리시티 패턴은 어떻습니까? 요즘도 자기가 직접 옷을 만드는 사람이 있나요?

그 이후로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거대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1950년대나 1960년대와는 달리 모든 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앞으로는 기업이나 산업이 파괴자가 되든지 파괴를 당하든지 양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 (혹은 둘 모두를 선택하지 않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현 시점에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모든 성장 기업이 5년이나 10년 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믿는 투자자의 예측은 오판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투자자에게 이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의미합니다. ‘안정적’, ‘방어적’, ‘해자’ 같은 표현은 앞으로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습니다. 투자는 과거에 비해 상당한 수준의 기술적 전문성을 요하게 될 것입니다. 내일도 어제와 비슷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는 투자는 훨씬 더 엄격한 검증이 반드시 요구됩니다.



변화하는 기업 경영의 본질

미국 기업들은 갈수록 가상·디지털·정보를 지향하고 있으며 더 이상 농업이나 물리적 상품 생산에만 전념하지 않습니다. 물리적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조차도 정보 상품을 비롯하여 기술 분야의 다른 영역들에 진출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앞으로 어떤 전통 산업이 살아남을지, 어떤 해자가 유지될지, 어떤 신생 기업이 기존 기업을 대체할지, 향후 10년이나 20년 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저는 저의 1월 메모에서 기술로 인해 재계에 도래한 변화를 일부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보 기반 사업의 월등한 수익성
• 낮은 증분원가, 사업 확장의 상대적 용이성, 사업 확장에 따른 수확체감이 아닌 이윤 증가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
• 성장 과정에서 추가 자본과 공장 증설의 필요성 최소화
• 다수의 노무자 혹은 미숙련 근로자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소수에 해당하는 고학력 코딩 인력에 대한 의존도

이러한 요인들은 압도적인 승자를 낳고 뒤쳐진 기업들을 무너뜨릴 잠재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도 심대한 파급력을 미칩니다. 저는 이 중에서도 특히 한 요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나 오크트리는 원칙적으로 기술 분야에는 투자하지 않으므로 앞선 요인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견을 표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관심을 기울이는 요인은 기술과 정보가 우리 삶과 기업 경영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확대됨에 따라 노동의 필요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현실입니다.

100년 전의 미국은 농업 대국이었으며 농업은 고도로 노동집약적인 산업이었습니다. 그러한 배경에서 미국 남부와 중서부를 중심으로 수많은 미숙련 근로자가 농장에 고용됐습니다. 그러던 것이 농기계의 발명과 더불어 농업 부문에서 노동력 수요가 급감했습니다. 트랙터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근로자들은 새롭게 등장한 자동차와 가정용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취업하기 위해 중서부 북쪽으로 이주했습니다. 이처럼 특정한 산업에서 밀려난 근로자는 다른 산업에서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떠오르는 산업과 저무는 산업이 공존했습니다.

다시 시간을 21세기로 돌려보겠습니다. 위에 언급된 근로자들과 그 후손들이 선택했던 산업은 이제는 값싼 노동력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자동화로 무장한 외국산 상품의 수입으로 인해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조업이 쇠퇴하는 상황에서 쇳덩어리를 다루는 산업을 대신해서―정보, 인공지능, 통신, 엔터테인먼트 등의 분야에서―기술 산업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기술 기업은 근로자 수를 비례적으로 늘리지 않으면서도 생산과 매출을 증대할 수 있습니다.

낙관론자들은 (1920년부터 대략 1970년까지 제조업 부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든 새로운 노동력 수요가 늘 생겨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a) 현재 부상하고 있는 기술 기반 산업에서는―이러한 산업은 한마디로 노동집약적이지 않습니다―그러한 징후를 발견할 수 없으며 (b) 기술 산업이 요구하는 근로자는 제조업 부문에서 떠밀린 근로자보다 고학력자인 것이 일반적입니다. 미국 공교육의 질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이 요인은 특히 우려를 자아냅니다. (다만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는 증가할 여지가 있습니다)

더 이상 제조업 부문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근로자들이 어디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정부에게서 해답을 구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가장 대표적인 해법은 전 국민에게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지원금 제도입니다. 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실직자와 그 가족을 지원할 여력이 있을까요? 매일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안정감이나 일에서 얻는 성취감처럼 고용이 제공하는 비금전적인 이점들은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까요? 현관 앞에 자리를 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일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한 예로서 오피오이드 사태가 실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퍼주기식 지원만으로는 정상적인 일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인플레이션/디플레이션

저는 넉 달 전에 올렸던 거시경제에 대한 단상을 필두로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을 주제로 많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다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제가 이 주제에 덧붙일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어떨까요? 최근 몇 년간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고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습니다. 제가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둘은 결코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최근에 캐시 우드가 디플레이션을 주제로 강연하는 동영상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혹시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그녀는 주식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낸 FAANG, 테슬라, 기타 기술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2020년에 상당한 명성을 쌓은 투자자입니다 (2020년에 그녀가 운용하는 7개 ETF 중 5개의 평균 수익률은 141%였습니다). 해당 동영상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상당한 기간 동안 경제에 있어서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 위험이 더 크다고 말해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점철되고 공급망이 사실상 마비된 상황에서 지금 우리는 제가 생각하기에 투자자들이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인플레이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 [1970년대]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떨치던 시기에 저는 대학생이었던 까닭에 그에 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그때로 되돌아갈 일은 없으며 만약 누군가가 그에 대비하고 있다면 실수하는 것일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혁신, 기술적으로 구현된 혁신의 관점에서 본다면―현재 우리는 과거에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기술적으로 구현된 3대 혁신인 전화, 전기, 자동차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화하는 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 5가지 플랫폼, 즉 DNA 시퀀싱, 로보틱스, 에너지 스토리지, 인공지능, 블록체인 기술이 실재하며 이 모두가 디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강도 역시 작지 않습니다.

그녀는 디플레이션 붕괴를 우려하는 인사들로 제프 건들락과 레이 달리오 그리고 저를 인용하고 있으며 스탠 드러큰밀러까지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러한 단정에 대해 제가 유일하게 덧붙일 수 있는 말은 전반적인 결과가 디플레이션이라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진보가 디플레이션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디플레이션 붕괴가] 디플레이션 거품에 의해 균형에 도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이 부분에서 서로 의견을 달리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이 결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믿고 한두 푼의 수익을 좇아 부채를 끌어들이고 주식 수량을 줄이면서 배당에 혈안이 된 단기 주주들의 요구에 영합하는 기업들이 존재한다는 인식에 있어서는 의견이 일치합니다. 이런 기업은 현재 역사상 유례 없는 속도로 전개되고 있는 혁신으로 인해 곧 노후화될 상품과 서비스를 끌어안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채를 갚기 위해서는 가격을 인하하는 동시에 앞길을 가로막는 상품과 서비스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는 우리가 앞으로 접하게 될 전통적인 GDP 실적이 매우 저조할 것이며 성장이 극히 미약해지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회사를 설립했던 2014년에 옥스퍼드대학교는 2035년이 되면 자동화와 인공지능으로 인해 미국 내 전체 일자리의 47%가 소멸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추가 설명이 없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언론이 대서특필했으며 자동화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질문 공세가 쏟아졌습니다. 제시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된 결론을 결국 우리가 제시했습니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을 발판으로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입니다. 그 폭은 당연히 현재까지도 포함하여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클 것입니다. 생산성이 개선되면 더 많은 부가 창출됩니다. 그리고 GDP가 증가할 경우, 추정에 따르면, 2035년이 되면 자동화와 인공지능으로 인해 미국의 GDP가 그래프상에서 선형으로 예측한 28조 달러가 아닌 40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음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캐시 우드가 말하고자 한 바가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잠깐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술은 디플레이션 요인으로 밝혀질 것이며 기술이 생산성에 미치는 긍정적인 파급력은 GDP 성장에 기여할 것입니다. 다만 GDP는 근로 시간에 시간당 생산성을 곱해서 산출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만약 기술이 시간당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킨다면 설사 근로 시간이 감소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GDP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술은 GDP를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실업률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언급되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확실히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술의 디플레이션 효과가 언급되는 경우 역시 많지 않지만 그러한 개념 자체를 무시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노동의 미래

노동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저는 대변혁 (‘심대하거나 주목할 만한 변혁’) 에 수반될 가능성이 있는 몇 가지 변화들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종교적 전통에 따라 오랫동안 근로자들에게 안식일 휴무가 보장되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1900년대 초에 헨리 포드는 자신이 고용한 근로자들에게 토요일과 일요일 휴무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관대함에서만 비롯된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자동차 판매량을 늘리기를 원했던 그는 소비자가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이틀간의 주말이 주어진다면 구매량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의 결정은 중요한 혁신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주말 휴무가 너무나도 보편화된 나머지 그 유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또 한 차례 노동 방식의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규직 취업을 희망했으며 자기 계발 기회를 부여하는 경력을 지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인식이 상당히 옅어졌습니다.

• 컴퓨터로 인해 부정기적으로―한 곳에서 하루나 이틀을 일하고 다른 곳에서 몇 시간을 일하는 식으로―근무하기를 원하는 인력을 채용하기가 쉬워졌으며 우버 기사 같은 긱워크 (gig work·독립형 일자리) 가 점차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 팬데믹으로 인해 재택 근무가 일상화됐으며 주 5일 출근 원칙이 약화됐습니다.
• 지난 한 해 동안 수백만 명이 ‘대량 퇴직’ 행렬에 동참하여 직장을 떠났으며 그 규모는 9월 한 달 동안에만 440만 명에 달했습니다.
• 상당수 구직자가 평생 직장이나 자기 계발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매우 낮은 상태입니다. 공급관리자협회 (ISM) 에서 10월에 발간한 서비스 동향 보고서는 “특히 서비스, 화물차, 창고업 부문을 중심으로 구직자를 물색하고 채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노동력이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중요한 함의를 품고 있습니다. 표준화된 근로 계약이 줄고 있고 근로자들은 안정적인 급여 지급에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며 상당수 근로자는 재택 근무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 노동시장 참여율 (미국 경제활동인구에서 취업자와 구직자가 차지하는 비율) 이 63.4%에서 60.2%로 하락하는 추세가 관찰됐으며 그 이후로도 61.1%로 반등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경제 현상은 물리 법칙에 의해 좌우되지 않으므로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습니다. 이 경우에는 다수의 요인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2000년 무렵부터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일자리 창출률과 확대율이 감소했으며 이로 인해 일부 청년층이 경력이나 장기 고용 같은 기존의 통념들에 대한 관심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비슷한 맥락에서 소득 불평등 확대와 계층간 이동성 악화로 인해 일부 젊은 세대가 반감을 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상당수 인구는 (재난 지원금 및/또는 실업급여 확대로 인해) 일했을 때보다 일하지 않았을 때의 수입이 더 많았던 것이 원인으로 작용하여―적어도 당분간은―일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버틸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지급된 돈이 통장에 쌓였으며 아직까지 완전히 소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주택 소유자는 서류상의 집값 상승에 고무되어 담보대출을 받고 취업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팬데믹 기간 동안의 장기화된 재택 근무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출근하는’ 습관에서 벗어났으며 출근을 당연시하는 인식이 약해졌습니다. 또한, 그러한 경험을 통해 출퇴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인지를 깨닫게 되어 일부는 그러한 현실로 복귀하려는 의지를 상실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호황을 맞은 시장이 일부 근로자들로 하여금 직장을 그만두고 데이트레이딩이나 암호화폐 투자에 뛰어들도록 부추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일부 근로자는 코로나19를 피해서 혹은 단순히 재택 근무가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팬데믹 기간 동안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이제 그 중 일부는 복귀를 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일부 근로자는 재택 근무로 인해 굳이 생활비가 비싼 도심에 위치한 직장 부근에 거주할 필요성이 줄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에 만족감을 느낀 근로자가 그러한 시간을 충분히 보장하는 직장으로의 이직을 결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자녀 곁에 부모가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한 일부 가정은 맞벌이를 통해 지탱되는 높은 생활수준과 성공 가도를 포기하고 외벌이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근로자는 구직을 포기하고 곧바로 은퇴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노동력 부족 사태(예: 화물차 기사)로 인해 노동자의 협상력이 높아졌으며 더 높은 급여를 제시하는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 절박한 상황에 처한 고용주들은 직무 요건을 완화하여 저임금 근로자가 상위 직급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 저임금 보육 교사가 높은 임금을 보장하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복직을 희망하는 근로자가 자녀 보육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일부 근로자는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복직을 미룰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약하면, 상당수 근로자가 팬데믹 기간 동안 일을 전혀 하지 않거나 시간제로 일하거나 집에서 일하거나 업무상 출장을 완전히 배제하는 방식으로 ‘타임아웃’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적지 않은 근로자에게 리셋의 계기가 됐으며 “그러니까 경력이 전부는 아니야. 가족과 삶의 질이 더 중요해. 내 삶의 방향을 새로 설정하고 일의 비중을 줄여야겠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현재 약 740만 명의 미국 국민이 실직 상태이며 1120만 개의 일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모든 이에게 일을 시키고 그 일자리를 채우는 것이 쉬운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직자들은 필요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거나 재택 근무를 허용하지 않는 직장에 취업할 의사가 없거나 정해진 시간표에 얽매이기를 원하지 않거나 약물 테스트 등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급망과 마찬가지로 모든 부품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대부분 팬데믹으로부터 기인한 다수의 변화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 일부는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앞으로 몇 달 내에 자취를 감출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일부는 영원히 남게 될 것이며 5년이나 10년 후에 “2020년 전에는 세상이 어떻게 달랐는지 기억해?”라고 뒤돌아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 전망

미국 정치와 거버넌스가 처한 상황을 표현하는, 중요하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위태로운’입니다. 구글에서 이 단어를 검색하면 ‘위험이나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위험천만한’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극도로 분열된 상태이며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 담론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책임은 부분적으로는(소셜미디어를 포함하는) 언론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안타깝습니다. 몇몇 언론사는 분열에 편승하여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텔레비전이 처음 등장했을 무렵만 하더라도 방송국을 운영하는 경영진은 보도국을 손실을 감수하는 공익사업으로 여겼습니다.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텔레비전 초창기에 주요 방송국들은―월터 크론카이트, 쳇 헌틀리, 데이비드 브링클리 같은 유력한 언론인들의 주도하에―균형 잡힌 객관적 보도를 내보냈으며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일부 언론사는 많은 경우 선동적인 논조로 어느 한 진영의 이익에 영합하면서 이윤을 추구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가 극도로 편파적인 이용자 집단의 요구를 추종하고 콘텐츠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면서 트래픽을 부풀리는 사례들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갈등이 돈이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신문에 긍정적인 1면 머리기사가 실리는 빈도가 얼마나 되나요?).

그로 인한 결과는 매우 유해합니다. 일부 케이블 방송사와 소셜미디어 사이트가 다수의 시사 현안에 대해 어느 일방의 주장만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 국민들이 상반된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대안적 사실’을 갈수록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대립이 심화되고 있으며 의견을 달리하는 진영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견이 혐오로 돌변하는 것은 일순간입니다. 사실에 대한 보편적인 합의가 부재할 경우 반대 의견을 가진 집단의 선의를 쉽게 의심하게 되며 그로 인해 민주주의의 근간이 뒤흔들리게 됩니다.

오늘날 미국인은 자신과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고 비슷한 의견을 표명하며 지지 정당의 목표에 전적으로 찬동하는 후보를 선호하는 집단과 같은 지역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선거구는 총선에서 승리하는 정당이 굳어져 있으므로 실질적인 경쟁은 지배적 정당의 후보 경선에서 벌어지며 당의 강령을 극단적으로 추종하는 후보가 공천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상적으로 경선에 참여하는 소수의 당원들이 선출하는 경선 승자는 거의 매번 총선에서 승리하므로 의회는 양대 정당의 극단주의자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일부 정치인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갈등을 부추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치 후원금 조성이나 언론 노출의 형태로 그러한 갈등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깁니다. 상당수 선거구의 총선에서 경쟁이 유명무실해짐에 따라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동료를 공격하거나 지금까지 금기시돼온 의견을 거리낌없이 내비치거나 극단적인 조치를 지지하는 등 과거에는 용인되지 않았던 행위들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선출직 공직자들은 ‘사랑과 전쟁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식의 신조를 신봉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자신의 지지자들을 책동하고 재선에 성공하며 당의 집권이나 재집권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어떠한 전술이라도 허용된다는 논리입니다.

혹자는 위와 같은 상황이 TV 드라마처럼 지극히 무해한 현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교착 상태를 초래하며 정부의 적극적 의사결정에 결함이 존재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으므로 교착 상태야말로 국민이 정치권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우려를 자아냅니다.

정치 무대에서의 경쟁은 지적/이념적 영역에서 개인적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투표를 통해 확인된 것처럼, 미국은 양분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인구학적 양상도 포함됩니다. 새로울 것 없는 분석일 수도 있지만 갈등의 강도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경향을 지칭하는 ‘클러스터링’ 현상이 확산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타인’을 향한 혐오, 무례, 분노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클러스터링으로 인한 정치적 파급력은 지배적 정당에 실제 유권자 비율과 상이한 의석과 권력을 부여하는 게리맨더링에 의해 더욱 악화될 수 있습니다. (상당수 주에서 선거구 획정은 주 의회가 담당하며 지배적 정당은 주 의회에서 선거구 경계선을 유리하게 설정하는 게리맨더링을 통해 권력 장악을 영속화하고 더 나아가 확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민주주의 (옥스퍼드대학교의 온라인 사전 렉시코에는 ‘전체 인구 혹은 자격을 갖춘 모든 국가 구성원에 의한 정부 체계’ 혹은 ‘단체나 집단의 구성원 다수에 의한 지배’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라고 부르는 체제하에서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다툼이 생기면 ‘다수결’로 해결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체계를 살펴보면 정부 구조가 대의민주주의, 다수결, ‘1인 1표’ 같은 원칙들을 갖가지 방식으로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각 주의 하원 의석수는 인구에 비례하여 배정되는 반면에 상원은 모든 주에 일률적으로 각각 2석이 배정됩니다. 인구가 3,900만 명인 캘리포니아가 상원에서는 인구 578,000명의 와이오밍과 동일한 발언권을 갖습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전체 인구가 5,760만 명 (미국 인구의 17.7%) 에 불과한 26개 소형 주들이 상원에서 52석을 확보하여 상원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 미국의 대통령은 전체 득표수가 가장 많은 후보가 아니라 과반수 선거인단을 획득한 후보로 정해집니다. 선거인단을 구성하는 538명의 선거인은 인구를 기준으로 각 주에 배정되므로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48개 주가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승자독식 원칙에 따라 한 후보에게 몰아주는 방식은 비민주적입니다. 따라서 상대방 후보가 인구가 많은 상위 11개 주의 1억 2,000만 표를 100% 획득하더라도 인구가 적은 나머지 39개 주와 워싱턴DC에서 1표 차로 승리한 후보 (등록 유권자가 모두 투표한다고 가정할 경우 전체 9,390만 표 가운데 4,700만 표를 얻게 됩니다) 는 270개 선거인을 모두 확보하게 되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극단적인 예에서는 고작 4,700만 표 (전체 유권자의 22.0%) 를 획득한 후보가 1억 6,690만 표를 획득한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습니다. (인구가 적은 주들의 투표율이 다른 주들보다 저조한 경우에는 그보다 더 낮은 득표율로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면 과반을 크게 웃도는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들도 많았습니다. 역대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대통령들로 1964년에 61.1%를 획득한 린든 B. 존슨, 1936년에 60.8%를 획득한 프랭클린 D. 루즈벨트, 1972년에 60.7%를 획득한 리처드 닉슨, 1984년에 58.8%를 획득한 로널드 레이건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전 8차례의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들의 득표율은 43.0%와 52.9% 사이에 불과했으며 상대방 후보보다 낮은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 경우도 두 차례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비민주적인 정부 체계가 수 세기 동안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식 민주주의가 전반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과 정당이 (a) 본래 민주주의는 취약하므로 대부분의 시민이 체제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신뢰하는 경우에만 존속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b) 소수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다수결 원칙을 다소 유보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c) 정치적 권력만큼이나 국가의 발전을 중요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정치 지도자들은 불문율을 지켰으며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전통적인 행동 규범을 따랐습니다. 미국 역사를 통틀어 선거가 부정하게 치러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거나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은 이런 생각들이 주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경향이 우려스럽습니다.

이미 상당수 주에서 특정한 정당이 휘두르는 상당한 수준의 영향력은 클러스터링과 게리맨더링으로 인해 더욱 공고해지고 있으며 주 의회의 선거 장악력은 부정 선거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주 장관직과 선거관리위원직은 전통적으로 비당파적인 (그리고 다분히 따분한) 직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임명이나 선출을 통해 선거 관리 업무에 당파적 성향을 지닌 인사를 배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새로운 법률과 정치 규범이 의원과 선거 관리인으로 하여금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 의회가 주 유권자의 전체 투표 결과와는 상관없이 지배적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할 선거인들을 지명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드는 중대한 잠재적 위협이 실재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과거에 제가 ‘노 레이블스(No Labels)’라는 단체에 관여하고 있으며 이 단체가 미국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초당적인 해법을 지지한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노 레이블스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인사들이―그 전까지 거의 대화를 나누는 일도 없었던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까지도 포함하여―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제가 판단하기에 가장 대표적인 예로서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에 서명하여 법률로 제정된 인프라법을 필두로 올 한 해 초당적으로 통과된 몇몇 중요한 법안들에 기여했습니다.

저는 노 레이블스에 활발하게 참여한 6년 동안 그 동안 제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에 눈을 떴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의회가 얼마나 비민주적인지를 알고 있는 국민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 바로는 제1당에서 선출한 대표가 상하원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현안에 있어서 하원의장이나 상원 제1당 원내대표가 무엇이든 원하면 대부분 그대로 이뤄집니다. 반대로 대표가 원하지 않으면 대부분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1인 체제는 (a)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제도에 대한 상당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일 뿐 아니라 (b) 우리가 워싱턴에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을 보내는 이유를 되묻게 만듭니다 (대표 한 사람이 안건을 정하고 나머지 의원들에게 투표를 지시할 수 있다면 상하원 대표가 단독으로 모든 절차를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또한, 여야 의원들이, 짐작하건대 당의 노선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대표의 지시만을 따른다면 정의상 초당적인 의회는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저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건전하려면 초당적인 정부와 초당적인 의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제1당이 다른 당의 동의 없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포함하여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상원에서는 ‘조정’이라는 절차를 통해 고작 51표만으로도 필리버스터를 통한 저항을 묵살하고 일부 조치를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아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한 당이 당론 표결로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 의회가 다른 당 의원들의 표를 유인할 수 있을 정도로 온건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 소수당이 새로 제정된 법과 그러한 입법을 지지한 인사들을 비난하기가 쉬워집니다.
• 소수당이 제1당 지위를 확보했을 때 상황이 역전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삶과 일의 터전인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요구하는 미국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갑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11월 15일에 법률로 제정된 인프라법과 이 법안이 바로 위에서 제가 지적한 현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경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이 법안은 민주당 의원 50명 전원뿐만 아니라 공화당 의원 19명의 찬성표를 얻어 8월 10일에 상원을 통과했습니다 (이 법안의 경우 소수당 원내대표 밋치 맥코넬 의원이 자율 투표를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법안은 하원에서 저항에 봉착했습니다. 이른바 진보적 민주당 의원들이 인프라와 무관한 수조달러 규모의 안전망 프로그램이 포함된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법안을 하원에서 먼저 통과시키지 않을 경우 투표를 거부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를 계기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가무극 무대가 펼쳐졌으며 지난 석 달 동안 이어졌습니다.

상원을 통과한 인프라 법안은 8월 중에 하원을 통과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에 승리를 안기고 싶지 않았으며 일부 진보적 민주당 의원들은 온건파가 자신들에게 찬성표를 던질 때까지 법안을 볼모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당리당략으로 인해 법안이 위태로운 지경에 몰렸습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아마도 민주당 내부의 진보적 의원들을 달래기 위해) 인프라 법안을 즉시 표결에 부치는 대신에 더 나은 재건 법안이 아직 구체화되거나 토론을 거치거나 연방 예산에 미치는 영향이 ‘점수화’되지도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두 법안을 연계했습니다. 그 후로 압력에 직면한 펠로시 하원의장은 9월 27일까지 인프라 법안을 통과시키고 표결에 부치는 것에 서명으로 합의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그리고 그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야말로 치킨 게임이 뒤따랐습니다. 하원의장은 온건파 의원들을 상대로 더 나은 재건 법안에 찬성하겠다는 약속을 요구했지만(민주당이 법안 통과에 필요한 218표를 확보하는 것을 막기에 충분한 숫자인) 일단의 온건파 의원들이 이를 거부하고 인프라 법안 표결을 먼저 요구했습니다. 온건파 의원들의 행동은 최근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하원 지도부에 대한 반란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11월 2일에 민주당은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패했으며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뉴저지에서도 거의 패배할 뻔했습니다. 그러자 ‘승리’가 필요했던 바이든 정부는 단 사흘 만에 법안을 표결에 부쳤으며 진보파 의원 6명을 제외한 민주당 의원 전원과 온건파 공화당 의원 13명이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법안은 결국 찬성 228표, 반대 206표로 가결 처리됐으며, 이는 바로 지난달까지도 하원의장이 반대했던 상황을 극복하고 달성한 성과였습니다.

법안에 찬성하지 않는 의원들이 그들이 말하길 부당한 조항을 찾아내는 일은 쉬웠으며 이번 사태에서 그들은 그와 같이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판단하기에 인프라법의 조항들은 대부분의 선거구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이 법안에 반대한 206명의 의원 중 일부는 자신의 선거구에 돌아갈 잠재적 이익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표현하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답은 ‘정치’입니다. 옥스퍼드 사전은 정치를 ‘권력을 쥐고 있거나 획득하기를 원하는 개인이나 정당 간의 논쟁 또는 충돌’로 부분적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양대 정당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은 예상하건대 중도 성향의 미국 국민을 겨냥한 제3정당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셋 이상의 주요 정당으로 표가 갈릴 경우 어느 한 정당이 확실한 승리를 거머쥐는 데 중대한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재의 미국 정부 구조하에서 소수당 후보가 선출되고 연정이 수립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더 중요한 이유로서 셋 이상의 주요 정당 후보가 대선에서 맞붙을 경우 어느 한 후보가 과반수 선거인단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럴 경우 하원에서 당선을 결정하며 인구에 상관없이 모든 주가 1표씩을 행사합니다. 따라서 8페이지에서 설명한 상원의 문제점이 다시금 대두됩니다. 즉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26개 주가 대통령을 임명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제시한 예들이 이론상의 극단적인 가정인 것은 사실이지만 상상 속의 일만은 아닙니다.

정치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필리버스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용어가 생소한 분들을 위해 부연하면 필리버스터란 상원에서 소수당이 법안을 보류시키고 법안 통과에 단순 과반수인 51표가 아닌 60표가 요구되도록 만들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의사진행 수단입니다. 현재 (50석/50석) 도 그렇지만 집권당 의석수는 60석 미만인 경우가 일반적이므로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에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야가 정책을 놓고 매번 충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에는 정치권이 극도로 정치화된 나머지 제1당의 목적을 좌절시키는 것이 소수당의 유일한 목표인 경우가 많습니다.

공화당이 민주당의 중점추진 목표에 번번히 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인 까닭에 민주당 내부적으로 상원에서 근소한 차이의 과반수를 이용하여 필리버스터를 봉쇄할 것을 요구하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상원의장은 부통령이 맡으므로 현재 민주당 소속인 부통령이 찬성 50표 대 반대 50표로 가부 동수인 경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봉쇄할까요? 과연 그래야 할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훗날 공화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여 더 이상 필리버스터에 얽매이지 않게 됐을 때 민주당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저는 이 논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되풀이하는 일 없이 단지 그에 따른 딜레마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필리버스터에 찬성하는 진영에서는 집권당이 소수당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게끔 만들 수 있으며 극단적인 법률이 제정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반대 진영에서는 소수당이 법안 저지에만 몰두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필리버스터의 존재는 의회의 공전만을 야기할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다만 인프라 법안을 통해 초당적인 협력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됐으며 사소한 법안들은 별다른 주의를 끌지 않고 그러한 방식으로 상당수가 통과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1석차 과반수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능력은 다수의 횡포를 심화시킵니다. 반면에 상원의원 41명이 법안의 통과를 저지할 수 있는 능력은 소수의 횡포를 용인합니다. 어느 쪽이 더 심각한 문제일까요? 당연히, 이와 같은 양자택일의 문제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직면한 당면 과제들 중 하나입니다. (설사 민주당 내 전통주의자들이 필리버스터 봉쇄를 자제한다 하더라도 다음 번에 공화당이 제1당이 됐을 때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세대 불평등

2037년과 2026년이 되면 고령자를 지원하는 복지 프로그램인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가 현재와 같은 수준의 혜택을 보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혜택 축소, 수급 연령 연장, 증세, 그러한 대책의 일부를 구성하는 검증 수단에 대한 논의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지난 18개월 동안 정치권은 코로나19 지원과 인프라 예산으로 9조달러 이상을 승인했지만 이처럼 중대한 사업을 조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여야 어디에서도 함구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짐작하건대 이 사업을 삭감하는 당은 여론조사에서 철퇴를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에 출생한 인구)는 7120만 명으로 2300만 명인 직전 침묵 세대의 3배에 달하며 6500만 명인 다음 X세대보다도 10%가 많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압도적인 유권자 수와 경제력을 발판으로 지난 40년간 지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 그로 인해 베이비붐 세대가 요구하는 분야에서 엄청난 재정 적자를 감수했으며 조정이 필요한 사회복지 제도를 바로잡지 못함에 따라 후대로 모든 부담이 전가됐습니다.

이는 지난 수십년 동안 영속화돼온 세대 불평등의 한 예입니다. 요컨대, 역대 민주당·공화당 정부들은 아마도 상당수 국민이 미처 깨닫지 못한 방식으로 어마어마한 예산을 지출하면서도 지출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세금을 거둬들이지 않고 (그리하여 적자를 발생시키고)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이제는 상당수가 은퇴자 집단을 구성하는 베이비붐 세대에 전반적으로 유리한 정책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국가 채무 추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연도 십억 GDP 대비 %
$
1955 274 64%
1975 533 31
1995 4,794 64
2015 18,151 100
2019 22,719 107
2021 28,400 125


요컨대,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의 몫을 웃도는 자원을 소비해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이로 인해 후대는 자신에게 합당한 몫이 배분되지 않은 지출에 따른 엄청난 채무를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비록 연방 예산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사회보장제도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회보장제도는 적립식이 아닌 부과식으로 근로자에게서 보험료를 거둬 은퇴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용됩니다. 사회보장 보험료는 일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기금에 적립되지 않으며 지급액은 기금 수익이 아닌 현행 보험료에서 충당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은퇴자 1명을 부양하는 근로자의 수가 감소하고 있으며 은퇴자의 수명도 과거에 비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제도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개편이 요구되지만 실행에 옮겨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16년 (그 이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후에는 사회보장 보험료를 인상하고 지급액 (혹은 인상률) 을 감액해야 하며 사회보장제도가 독자적인 연금보험 제도가 아닌 연방 채무로 편입되어 적자를 확대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 세대가 관여한 과도한 지출로 인해 후대가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수많은 예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재단과 대학은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이해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것이 주목적인 기금 지출 관련 규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는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의 중요한 신의성실의 의무에 해당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부분의 부모는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자녀들에게 채무를 전가하는 일이 없습니다. 국가 채무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가 ‘과도한’ 수준인지에 관한 문제처럼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에 정부들이 모든 세대의 이해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세대는 지구의 자원을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거리낌없이 소비하면서 생활방식을 유지해왔으며 그로 인해 미래 세대는 파괴된 환경을 물려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는 세대 불평등을 유발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측면입니다.)

저는 2008년 8월에 내가 우려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메모 결론부에 피트 피터슨의 2004년 저서 <허공에의 질주 (Running on Empty)> 중 한 구절을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20세기 경제계를 경험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부연하면 피트 피터슨은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스티브 슈워츠먼과 공동으로 블랙스톤을 설립한 인물입니다).

…미국의 적폐가 아직은 수습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지만 양대 정당은 갈수록 구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 그들은 적폐를 직시하지 않고 있으며 그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그들은 부인과 분열, 방종의 정쟁에 빠져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바로 여러분 같은 독자들이 좌우 진영의 이론가와 여론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이 나라를 되찾을 때 비로소 타개할 수 있다…

양대 정당은 실증적 분석이나 증거에는 귀를 닫은 채 일체의 진지한 정치 윤리와 괴리된 것으로 보이는 이념적 당론만을 앞세워 불온한 연대를 형성했으며 미래를 상대로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우리의 아이들을 겨냥한 전쟁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말은 어느 당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미국이 봉착한 가장 가공할 위협은 국가 재정의 암적 전이에 대한 정치권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무관심일지도 모른다.

좋은 소식은 이러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든 난관을 극복해왔으며 준수한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나쁜 소식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일이 거의 혹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중앙은행의 역할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이므로 이 주제에 관해서는 길게 논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글의 목적이 현재 전개되고 있는 중대한 변화를 고찰하는 것이므로 이 내용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앙은행의 임무는 인플레이션 수준을 관리하고 경제가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성장하게끔 보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연준이 주식 시장을 상승 궤도에 올려 놓는 임무를 추가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임무는 급격한 금리 인하와 막대한 유동성 투입을 통해 완수됐습니다.

미국 내 단기 금리의 기준이 되는 연방기금금리는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처음으로 0%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장 기간 동안 경제 회복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경제 회복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금리를 인상하지 않았으며 2017~2018년에 마침내 금리를 인상하자 시장이 발작을 일으켰고 연준은 뒤로 물러나면서 오히려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현재 연방기금금리는 다시 0%를 유지하고 있으며 시장은 지난 10년과 비교하여 월등한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연준은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축소’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으며 내년부터 연준이 금리 인상을 시작할 것으로 널리 예상되고 있습니다. 경제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시장이 또 다시 발작을 일으키고 시장 조정이 닥치면 연준이 기조를 바꿔 저금리 체제로 회귀할까요? 낙관론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제는 연준의 임무로 정착된 영속적인 자산 가격 상승을 유지할까요?

제가 보기에 연준이 경제와 시장을 중단 없이 성장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으로 낙관적입니다. 저는 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하는 기능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시장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장기적으로 경제가 최선의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저와 공동으로 오크트리를 설립했던 리처드 메이슨은 2008년에 쓴 글에서 “창조적 파괴 그리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장경제가 결국에 가서는 최선의 해법을 제시하는 변화를 보장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장경제는 투자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래리 굿먼 재정안정센터 소장은 최근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2010년] 이래로 연준의 국채 매입 규모는 전체 정부차입 요구의 60~80%에 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연준의 조치는 10년 이상 민간부문의 가격 발견 기능을 무력화함으로써 수익률을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주식 가격을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2021 회계연도의 경우 연준은 국채를 1조달러 규모로 매입했으며 이로 인해 연준 계정에서 1.6조 달러가 고갈됐다. 이러한 조치는 팬데믹 관련 정부차입액을 거의 전부 충당하는 … 적자 예산에 반영됐다. 월간 추정액을 기준으로 지난 여름에는 실제로 기금 흑자가 발생했다. 고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8월에 미 국채 10년물이 1.17%로 바닥세에 도달한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2021년 11월 18일자 <월스트리트저널>)


자, 생각해봅시다. 미국 정부는 여전히 낮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으며 이는 매수자들이 미국 정부의 신인도를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처럼 신인도를 인정하는 주된 매수자는 누구일까요? 다름아닌 미국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일단의 민주당 내 진보적 의원들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재임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그들이 판단하기에 파월 의장이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처럼 이제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관리하고 성장과 고용을 확대하며 시장을 지원하는 동시에 기후변화에도 대응해야 합니다. 기관 한 곳이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임무의 수는 얼마나 될까요?


중국의 상황

마오쩌둥 시대가 1978년에 종말을 고한 이래로 지난 33년 동안 중국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습니다. 중국은 다른 경제 대국들과는 달리 2020년에도 성장을 지속했습니다. 이런 급성장세가 앞으로도 계속될까요?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에 등극할까요?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이 지대한 중요성을 가질 것입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중국은 실로 무수한 변화를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 농촌에서 도시로
• 농업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 대규모 빈곤층에서 상당한 규모의 중산층으로
• 수출 의존 경제에서 내수 경제로
• 자본투자에 기반한 성장에서 보다 유기적인 성장으로
• 신흥국에서 강대국으로

앞으로 이러한 절차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국은 중앙집권과 자유시장(중국은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이의 균형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중국은 법의 지배를 존중하면서 원하는 정책들을 입안해야 합니다. 아울러 중앙 정부의 긴급 구제에 의존하지 말아야 하며 기업의 도산과 그에 따른 손실 그리고 감히 말하지만 경제의 경기순환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제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물음은 과연 중국이 어떻게 경제와 민간 기업에 대한 중앙의 통제를 유지하는 동시에 경제의 효율을 추구하고 사회주의 이념을 옹호할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이 의문은 제가 중국을 오간 지난 15년 동안 줄곧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중국인들은 공산당에 지대한 존경심을 품고 있으며 당과 당 지도부는 민주주의라는 번거로운 절차에 수반되는 방해물에 구애되지 않고 목표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한편, 민간부문은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하며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시진핑 국가주석은 재계 유명 인사와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사교육처럼 사회적으로 불건전하다고 판단되는 산업에 철퇴를 가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중국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직책에 있는 모든 이가 마오쩌둥 이후의 경제적 기적과 더불어 사적 이익이 할당과 동등 분배를 대체한 역사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저는 ‘시진핑 사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한 중국의 민간 기업이 계속해서 존중받을 것이며 중국의 ‘이원 체제’가 앞으로도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위에 열거된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변화를 동시다발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감당하기 벅찬 과업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중국은 강력한 중앙의 통제와 방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중국이 성공을 거둘지 아니면 실패로 끝날지 예단할 수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물음에 맞닥뜨렸을 때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직감을 믿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중국 경제가 계속해서 다른 나라들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며 충분히 최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간이 지나면 위에 열거된 모든 변화가 실현될 것으로 믿습니다. 다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며 잡음이 뒤따를 것입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상하이 국제금융자문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해왔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중국에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상하이를 세계 금융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만들고자 하는 중국의 의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법의 지배와 모범 규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중국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망하건대 그러한 사실은 중국의 행동과 관련된 최악의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 단위 세상

제가 기억하는 한 2020년은 ‘조’ 단위가 보편적으로 사용된 첫해였습니다. 에버렛 덕슨 전 의원 (공화당, 일리노이) 은 (출처가 확실치는 않지만) “여기도 십억, 저기도 십억, 그러다가 어느새 실재하는 돈이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십억이 푼돈으로 전락했으며 ‘실재하는 돈’이 되려면 조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조라는 숫자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십억에 천을 곱하거나 백만에 백만을 곱한 숫자라는 사실을 선뜻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 단위 척도는 거의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저는 30~40년 전쯤에 백만 달러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당 10달러씩 28시간이 걸리지만 십억 달러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당 10달러씩 38개월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1조 달러는 어떨까요? 초당 10달러씩 3천 년 이상이 걸립니다. 제 말대로 거의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선출직 공직자들은 파급력을 제대로 고민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조 단위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 단위로 지출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요? 저는 얼마 전에 의사당 그림 밑에 “조 다음에는 뭐가 오지?”라는 문구가 들어간 신랄한 만평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 살아 있다면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 *
이처럼 중대한 변화가 전개되는 상황에서는 세상이 비정상적으로 복잡하다고 느끼고 과거의 방식을 그리워하기 쉽습니다. 반면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할 때마다 저는 댈러스 카우보이의 쿼터백이었던 돈 메러디스가 ‘먼데이 나이트 풋볼’ 해설자로 출연해서 한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는 “선수들이 예전 같지가 않아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전에도 그랬던 적은 한 번도 없군요”라고 말했습니다. 현재는 힘들게 느껴지기 마련이며 좋았던 과거를 아련하게 추억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회상하는 것만큼 과거가 수월했던 것은 분명히 아니며 우리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선임 경제학 컨설턴트인 닐 어윈은 2020년 4월 16일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요약한 바 있습니다 (저의 2020년 5월 메모 불확실성에 인용했던 부분을 발췌했습니다).

세계 경제는 거미줄처럼 무한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호연결망이다. 우리는 물품을 구매하는 상점이나 급여를 지급하는 회사 혹은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하는 은행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일련의 직접적인 경제적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두세 단계만 넘어서면 그러한 연결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확실하게 알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앞으로 몇 년 뒤면 [팬데믹과 그에 따른 봉쇄로 인해] 그러한 연결망이 와해되고 수백만 개의 연결 고리가 일순간에 끊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수십년 동안 유지돼온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글로벌 경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여기에 제가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말은 미래를 전망할 때마다 제가 늘 해온 말입니다: 곧 알게 될 것입니다. (We’ll see.)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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