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전경. /연합뉴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전경. /연합뉴스
경기 성남 판교에 사는 하모 씨(37)는 지난달 A백화점에서 단골 매장을 찾아 600만원어치 가량을 '선결제'했다. 마땅히 살 옷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미리 매장에 달아놓은 것이다. 내년 백화점 우수고객(VIP)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다. 통상 백화점 VIP 프로그램은 전년도 구매 실적을 기준으로 대상 고객을 선정해 1년간 혜택을 제공한다.

하 씨는 "이미 3400만원어치 이상 물건을 구매해 600만원 정도만 채우면 VIP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놓치기 아쉬웠다"며 "명품을 사 금액을 채워볼까 고민해 봤지만 줄을 서고 오픈런 해가며 물건을 살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말을 앞두고 백화점 VIP 고객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미달 금액을 채우기 위해 구매액을 집중적으로 늘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부 고객은 백화점 단골 매장에서 선결제해 금액을 채우거나, 여러 명이 한 사람 카드로 구매를 몰아주는 등 '꼼수'까지 동원하고 있다.

6일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 등에 따르면 국내 백화점의 VIP매출 비중(올해 1분기 기준)은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이 약 32% 달한다. 롯데백화점은 27% 남짓이다. 명품 고객들이 많기로 손꼽히는 갤러리아백화점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상위 10% VIP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할 만큼 절대적이다.

통상 백화점 VIP 회원은 높인 할인율 제공, VIP 라운지 이용, 무료 발레파킹 서비스, 강좌 할인 등 각종 혜택을 누리며 귀빈 대접을 받는다. 이 때문에 연말 백화점 고객센터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문의 중 하나가 "VIP 등급을 유지하려면 얼마를 더 써야 하느냐"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샤넬 매장을 찾은 고객들. /연합뉴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샤넬 매장을 찾은 고객들. /연합뉴스
백화점 VIP 혜택을 5년째 유지하고 있는 주부 유모 씨(45)는 "평소 지인과 차 한 잔 할 때 VIP 라운지를 이용하고 있다. 근처에 볼 일이 있을 때도 VIP 주차 혜택을 활용한다"며 "한 번 VIP가 되어보면 이런 혜택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씨도 내년 VIP 등급 유지를 위해 최근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 보석, 가전 등 각종 물품을 1000만원어치가량 몰아 샀다.

백화점들은 연간 구매금액 기준으로 VIP를 5~6개 등급으로 나눠 관리한다. 롯데백화점의 VIP제도인 MVG의 회원 등급은 5단계로 나뉜다. 최소 1800만원에서 최대 2억원 이상까지 연간 구매액에 따라 회원 등급이 정해진다. 롯데백화점이 전년도 12월부터 당해 연도 11월31일까지 누적 구매 금액을 합산해 MVG 고객을 확정하다 보니 11월에 관련 문의가 쏟아진다.

현대백화점 우수고객은 1월부터 12월까지 쌓은 TCP마일리지라는 백화점 마일리지 적립액에 따라 그 다음해에 선정된다. 5개 등급 중 3번째 등급 이상으로 선정되려면 마일리지 적립율 0.1%인 현대백화점 신용카드로 연간 최소 4000만원어치 구매해야 한다.

신세계백화점 VIP 클럽은 총 6개 등급으로 나뉜다. 연간 구매 금액에 따라 레드, 블랙,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로 분류되고 최상위 999명은 트리니티 등급을 받는다. 등급에 따라 특별 할인(세일리지) 한도가 다르게 생성되고 백화점 입점 브랜드(고가 명품 제외)에서 상시 7~10% 할인받을 수 있다. 기본 3시간 무료 주차도 가능하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 고객들. /연합뉴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 고객들. /연합뉴스
백화점 VIP 회원에 선정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구매 실적을 사고파는 행위도 성행하고 있다.

리셀러들이 현금으로 명품을 구매하고 구매 실적을 사고자 하는 이의 백화점 카드로 포인트를 올려주는 식이다. 구매실적 한 건당 수수료가 7~10% 가량 된다. 1000만원 치의 구매 실적을 올리려면 100만원의 수수료가 드는 셈이다. 포인트를 올려준 후 리셀러들은 남은 명품은 또 웃돈을 받고 판다.

백화점 VIP 등급을 원하는 최모 씨(40)도 전문 리셀러에게 구매 실적을 돈 주고 샀다. 그는 최근 2개월간 2억원어치 이상 사들였지만 구매실적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신세계백화점에서 최상위 VIP 등급인 트리니티 서비스를 노리고 있다. 최 씨는 "800만원치 구매이력을 수수료 9%를 주고 샀지만 부족할 듯해 연말까지 추가 구입할 생각"이라면서 "작년에 트리니티에서 탈락해 아쉬웠다. 올해는 꼭 달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의 경우 연간 1억6000만원 정도 쓴 우수고객도 트리니티 등급에 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