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오른팔’로 유명한 찰리 멍거 부회장이 한국의 코인 투자자들로부터 ‘악플 세례’를 받았다. 지난 4일 암호화폐 가격이 20% 이상 폭락한 가운데 전날 그가 “암호화폐는 없어져야 한다”고 독설을 퍼부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년 전부터 코인을 맹비난해 온 멍거 부회장의 입이 투심(投心)을 흔들었다고 보진 않는다. 가상자산 투자업체 샌드뱅크의 백훈종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조기 종료를 시사했고 코로나19 신종 변이 오미크론이 확산하는 등 ‘위험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점이 근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비트코인 거품 꺼지는 징후”…4만弗 지켜낼까

두 달치 상승분 반납한 비트코인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4일 0시 7029만원으로 거래를 시작해 오후 2시께 5600만원까지 주저앉았다. 하루 변동폭이 20.3%에 달했다. 이후 소폭 반등하긴 했지만 5일 오후까지 5800만~6200만원대에서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 국내 비트코인 가격에는 6%가량의 김치프리미엄(해외 시세 대비 웃돈)이 끼어 있다. 미국 시세는 5만달러 선이 무너져 두 달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블룸버그통신은 “금융시장을 휩쓸고 있는 위험 회피의 또 다른 신호”로 진단했다. Fed가 돈줄을 죄면 암호화폐를 포함한 위험자산 시장에는 악재가 된다. 케이티 스톡턴 페어리드스트래티지스 창업자는 “비트코인과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 고성장 기술주의 약세도 암호화폐에 악재가 됐다”고 밝혔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은 주식시장의 기술주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동조화’ 현상이 강해지는 추세다. 오미크론 공포에다 미국의 11월 고용지표가 예상치를 크게 밑돈 것으로 나타나자 3일 나스닥(-1.92%) S&P500(-0.84%) 다우(-0.17%) 등 뉴욕 증시가 모두 하락했다.

‘빚투’(빚내서 투자)를 낀 파생상품이 폭락장에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도 많다. 스톡턴은 “암호화폐 파생상품으로 인해 가격이 더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차익 실현 또는 위험회피 목적의 비트코인 매물이 쏟아지자 선물시장에서 대규모 청산이 발생, 현물 낙폭을 키웠다는 것이다. 백 COO는 “높은 변동성을 감수하는 암호화폐 투자자에게도 하루 20%를 넘는 하락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라고 했다.

“추가 조정 가능성 주의해야”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은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6만9000달러)를 찍은 지난달 초 3조달러를 넘었으나 이내 2조4000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시총의 40%를 차지하는 ‘대장주’ 비트코인이 무너지자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암호화폐)도 동반 추락했다. 일부 ‘잡코인’은 한때 50% 이상 하락한 뒤 원상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 암호화폐거래소 대표는 “올 들어 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거품이 낀 측면이 있다”며 “단기적으론 매도 폭탄에 따른 큰 폭의 조정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트코인과 비교해 희소성이 떨어지고 기술력 검증도 덜 된 알트코인은 변동성 위험이 훨씬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번 급락장이 거품 붕괴의 시작인지, 저가 매수 기회인지를 놓고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안토니 트렌체프 넥쏘 공동창업자는 “트레이더들의 레버리지 거래 때문에 계단식 매도 주문과 청산이 발생한다”며 “비트코인이 4만달러 지지선을 지켜내지 못하면 3만~3만5000달러로 내려갈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저스틴 디애너선 에코넥스 매니저는 “저점 매수를 준비하기 위해 테더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했다. 테더는 달러에 가치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으로, 다른 암호화폐를 구입하는 데 쓰인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