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기업들의 합작사(조인트벤처·JV) 설립과 기업 분할 사례가 사상 최대치로 집계됐다. 자율주행, 수소경제, 바이오 등 혁신 분야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업 간 합종연횡이 활발한 데다 성장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들이 핵심 사업부 재편에 나섰기 때문이다.
미래사업 '깐부' 찾아라…LG·SK·한화 등 기업 합종연횡 뜨겁다

3분기까지 JV 설립, 이미 지난해 추월

3일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매체인 마켓인사이트가 국내 5대 대형 법무법인과 마켓인사이트 리그테이블 통계를 집계한 결과, 국내 기업의 JV 설립은 올 들어 3분기까지 45건으로 조사됐다. 이는 연간 기준으로 가장 많았던 지난해(41건)를 이미 넘어선 것이다.

특히 올 들어 국내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의 합작사 설립이 눈에 띄게 많았다. JV는 한 곳이 확고히 경영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보니 수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들이 선호하지 않았던 투자 방식이었다. 한 기업 전문 변호사는 “배터리·전기차·수소경제·바이오 등 기업들이 미래 사업으로 삼고 있는 분야가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데다 글로벌 시장 경쟁도 치열해지다 보니 분위기가 급변했다”며 “하루에 3~4건의 JV 문의가 겹쳐 올 때도 있다”고 전했다.

기술력을 갖춘 기업엔 글로벌 ‘대어’급 기업들의 협업 요청도 줄을 잇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가 두 번째 JV 설립을 발표하자 SK이노베이션은 곧장 포드와 손을 잡았다. 삼성SDI도 스텔란티스와 짝을 이뤘다. 태양광 분야의 글로벌 톱티어 그룹인 한화에너지는 프랑스 토탈과 함께 미국에 2조원 규모 JV를 세우기로 했고, 효성중공업도 독일 린데와 손잡고 액화수소사업을 키울 방침이다. CJ ENM, 하이브 등 국내 드라마·엔터테인먼트·게임 등 콘텐츠 기업에도 해외 기업들의 JV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몸값 상승이 JV 선택 유도

유망 산업에 속한 기업들의 몸값이 급상승해 인수 부담이 커진 점도 JV를 택하는 주요 원인이다. LG화학은 일본 도레이와 합작사를 설립해 배터리 분리막 사업에 진출하기로 했다. 단독으로 사업하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인수합병(M&A)을 택하기엔 비용 부담이 커 JV로 전략을 정했다는 설명이다.

SK그룹은 올초 글로벌 진출 전략을 아예 ‘파트너링’으로 정해 JV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머티리얼즈가 그룹14과 손잡고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인 음극재 시장에 진출했고, SKC는 음극재를 생산하는 영국 넥시온과 힘을 합쳤다. SK그룹 관계자는 “테크·바이오 등 유망 산업에선 속도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기업을 인수하게 되면, 인수 후 기업 문화를 이식하고 임직원을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려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종산업의 회사들이 손잡고 새 시장을 선점하기도 한다. 하이브와 두나무가 JV를 설립해 NFT(대체불가능토큰) 시장에 진입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BTS(방탄소년단) 등 하이브의 지식재산권(IP)과 두나무의 암호화폐 기술을 결합하기로 했다. SKC·대상그룹·LX인터내셔널은 생분해성 플라스틱 합작사 에코밴스를 설립했다.

증시 호황 타고 기업 쪼개기도 분주

기업 분할도 지난 3분기까지 26건으로 지난해 전체(24건)를 이미 추월했다. 자본시장이 호황을 보이자 기업들은 성장성이 담긴 알짜 사업부를 독립시켜 증시에 데뷔시키거나 재무적투자자(FI)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성장 재원을 확보했다.

SK텔레콤은 통신(SKT)과 투자(SK스퀘어) 회사로 나누는 분할을 최근 마무리했다. 신설된 SK스퀘어는 대기업 중 처음으로 암호화폐거래소에 투자하는 등 “‘제2의 소프트뱅크’가 되겠다”고 나선 상태다. SK이노베이션도 배터리사업부를 분할해 SK온을 세웠으며, CJ제일제당은 건강사업부를 분할해 독립시켰다. 만도는 사내 차세대 먹거리인 자율주행사업부를 분할했다.

연말에도 기업들의 분할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CJ ENM은 ‘스트리트우먼파이터’ 흥행에 힘입어 예능·제작사업부 분할에 나섰으며, 포스코그룹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기업 분할 절차를 밟기로 했다. 한화솔루션은 첨단소재사업부문 분할을 검토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내년에도 주요 그룹이 사업을 독립시켜 시장에서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