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폐업한 상점에 사금융 대출 알선 전단지가 놓여져 있다. 사진=뉴스1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폐업한 상점에 사금융 대출 알선 전단지가 놓여져 있다. 사진=뉴스1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제2금융권에 대한 내년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올해보다 낮은 수준으로 조정한다. 시중은행 대출 문턱을 높인 데 따라 2금융권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내년 제도권 금융사 전체의 대출 문이 더욱 강하게 조여지면서 돈이 필요한 중·저신용자 등 취약계층이 대출 절벽에 내몰리고, 평균 이자율이 연 50%에 달하는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제2금융권에 내년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다음 달 초까지 내년도 관리 목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내년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가이드라인은 앞서 금융당국에서 제시한 수준에 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월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 발표문을 통해 현 6%대인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치를 내년 4~5%대로 하향 조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조치로 올해 대비 내년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조정 폭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되는 업권은 저축은행이다. 올해 증가율 목표치 21.1%를 적용받던 저축은행은 내년 회사별로 10.8∼14.8% 증가율에 맞추라는 가이드라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저 기준만 보자면 올해 증가율 목표치의 반 토막 수준이다.

올해 증가율 목표치가 4.1%였던 상호금융권도 내년 증가율 목표치가 상당 폭 하향 조정될 여지가 있다. 앞서 농협중앙회가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 초과로 대출 중단 사태에 이어, 최근에는 새마을금고·신협이 잇따라 가계대출 중단에 나서면서 가계대출 규제에 따른 여진을 보이고 있다. 새마을금고는 전날부터, 신협은 이날부터 신규 주택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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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와 카드사도 예외는 아니다. 내년에 올해보다 소폭 하향 조정된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가 적용될 전망이다. 올해 보험사의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는 4.1%, 카드사는 6%였다. 다만 올해 총량 관리 목표치를 초과한 각 금융사에는 업권 평균보다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치를 낮게 조정하는 조치가 시행되는 만큼, 사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 금융권에 대한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가 내년 4~5%로 조정되는 만큼, 이에 맞는 수준의 증가율 목표치를 2금융권에 요청한 상태"라며 "특히 저축은행의 경우 기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 자체가 타 권역에 비해 높은 수준인 만큼 내년에 적용될 목표치의 하향 조정 폭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상호금융과 보험사, 카드사 등 제2금융권 전체에 대한 증가율 목표치가 내년 하향 조정될 예정"이라며 "최근 전달한 가이드라인에 올해와 비슷한 수준의 계획을 제출할 것을 요청한 업권도 조정 단계를 거쳐 올해보다는 소폭 하향된 목표치를 적용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이 지난해와 달리 올해 2금융권에 대한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치 설정에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은행권 규제 강화에 따른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서다. 실제로 올해 금융당국이 은행권과 2금융권에 대한 가계대출 규제 간 시차를 두면서 간극이 발생한 바 있다. 올해 10월 기준 비은행권 가계대출 잔액 증가액이 32조4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이는 전년 동기 가계대출 잔액 증가액 4조4000억원의 7배를 뛰어넘는 수치다. 같은 기간 은행권의 증가액은 80조4000억원에서 69조원으로 줄어들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 2금융권에 대한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보다 늦은 시점에 적용되면서 풍선효과, 가계대출 취급 중단 등 부작용이 발생한 게 사실"이라며 "내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원칙에 따른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및 관리 방안 계획을 세우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내년 2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더욱 높아지면 서민이나 저신용자 등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대출 절벽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제 2금융권까지 막히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대출 총량 줄이기에 몰두한 결과로 가계부채 질을 악화시키는 우려도 이 때문이다.

현재 정부에 등록하지 않은 불법 사금융 업체가 차주들로부터 받는 평균 이자율은 연 50%에 이른 상태다.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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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미등록 불법 사금융 업체의 평균 이자율은 연 46.4%로 집계됐다. 이는 법으로 규정된 금리 상한선 연 20%의 두 배를 넘어서는 수치다.

현재 금융시장 환경을 고려하면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에 밀려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금리 상승 가능성까지 우려를 보태고 있다. 이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75%에서 연 1%로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지난해 3월부터 이어진 연 0%대 기준금리 시대가 막을 내렸다. 한은은 내년 1분기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도 시사한 상태다.

금리 상승 시기에 고금리 상품을 보유할 경우 이자 부담은 매우 빠른 속도로 불어나게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 높아질 때 대출을 보유한 전체 가계가 내야 할 이자는 12조원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소득이 줄어든 상태에서 상환 능력이 낮은 중·저신용자에 대한 이자 부담이 늘면, 가계에 미치는 충격은 배로 커질 수밖에 없다. 빚을 청산하지 못한 이들이 파산에 이르는 사태가 잇따라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2금융권을 대상으로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강화할 때 취약계층이 한계 상황에 직면하면서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밀려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더 나아가 서민층이 아예 개인 파산 쪽으로 넘어갈 여지도 크다"며 "이는 국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사회 불안 요소로까지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황 연구위원은 "사회 불안이 증가하는 것은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의 영향으로 불법 사금융 시장, 개인 파산 위험에 놓일 수 있는 취약계층을 구제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크다"고 조언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