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섭 지에프아이 대표가 경기 김포 공장에서 이지스 제조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민경진 기자
이상섭 지에프아이 대표가 경기 김포 공장에서 이지스 제조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민경진 기자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전기 화재는 8170건이다. 이 중 전선 피복에서 시작된 불은 4226건으로 전체의 66.6%를 차지했다. 콘센트나 스위치에서 발화한 불도 565건이다. 이렇게 비교적 작은 원인에서 시작된 불도 제때 진압하지 않으면 대형 화재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경기 김포에 있는 지에프아이(GFI)는 화재 초기에 불을 자동으로 끄는 소화제 ‘이지스’ 개발에 성공했다. 이상섭 지에프아이 대표는 “섭씨 100도를 넘는 고온에 반응한 고분자 합성물질이 순간적으로 소화제를 분출해 불을 끈다”며 “6㎠ 크기의 이지스 칩 한 개면 가정용 전기 누전차단기 내부에서 발생한 화재를 빠르게 진압할 정도로 소화 성능이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태양광 ESS로 성능 검증

지에프아이, 작은 소화제 캡슐로 멀티탭·ESS 화재 초기에 진화
이지스는 소화제 알갱이를 기밀성이 우수한 고분자 합성물질이 둘러싸고 있다.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캡슐형 소화제로 미리 정해둔 온도에 반응해 소화제를 내뿜어 불을 끄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일찍이 2019년부터 글로벌 2차전지 제조업체의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장착돼 성능을 검증받았다. 이 대표는 “글로벌 대기업을 통해 태양광 ESS의 화재를 예방하는 부품으로 2년 전부터 장착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지스는 화학 대기업 3M이 생산하는 노벡1230을 원료로 한다. 이 물질은 휘발성이 강해 고압 탱크에 가둔 뒤 스프링클러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주로 사용된다. 이런 노벡1230을 마이크로캡슐에 가둬 상온에서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게 지에프아이가 보유한 핵심 원천기술이다. 소화제를 패드, 와이어, 필름 등 다양한 소재 및 형태에 적용할 수 있어 성장성이 풍부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지에프아이 매출은 2018년 10억원, 2019년 80억원에 이어 2020년 366억원으로 급신장했다. 2018년 1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작년 177억원으로 불어났다. 이 대표는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이 있지만 내년엔 매출 500억원, 영업이익 200억원은 거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지스 적용 멀티탭 출시

지에프아이는 태양광 ESS에 이어 기업과 소비자 간(B2C) 시장에 진출한다. 여러 개의 전자제품을 하나의 콘센트에 연결해 쓸 수 있게 만든 멀티탭에 이지스를 적용한 신제품을 이달 말 선보인다. 이 대표는 “전기 합선으로 인한 화재를 초기에 빠르게 진압할 수 있게 해주는 멀티탭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본격적으로 판매한다”며 “가정·사무용 멀티탭으로 출발해 다양한 가전제품 분야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러시아 변호사 출신이다. 현지에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로펌을 운영하던 중 마이크로캡슐 기술을 적용한 농약, 잉크 등을 접하면서 캡슐형 소화제의 가능성을 엿보고 창업을 준비했다. 러시아 바우만공대 등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에게 기술 자문을 하는 한편 연구원들을 직접 고용해 마이크로캡슐에 소화제를 담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2014년 귀국해 지에프아이를 설립했다. 그는 “내년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원년”이라며 “인류 안전에 기여하는 회사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김포=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