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12일 오후 서울 도심의 한 중식당에서 카드 결제하는 모습. 사진=뉴스1
사진은 12일 오후 서울 도심의 한 중식당에서 카드 결제하는 모습. 사진=뉴스1
3년 만의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재산정 결과 발표를 앞두고 금융당국과 카드업계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결정으로 지금까지 무려 13차례 카드 수수료율이 인하됐는데, 이번에도 수수료율 인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자영업자 영업난이 계속되면서, 정치권에서는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한 계책으로 수수료율 인하안을 내세우고 있다.

카드사 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올해 수수료율 인하가 결정될 경우, 신용카드 결제를 전면 중단하는 '결제 셧다운' 수준의 강력한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정부의 카드 수수료율 인하 결정으로 신용판매 영역 적자가 이어지면서 카드사 내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어서다. 실제로 카드업계 내 결제 셧다운 조치가 이뤄진다면 지난번 KT 사태처럼 결제 자체가 먹통이 되는 사태가 전국에서 발생할 수 있다.

올해 카드 수수료율 인하 전망…대선 앞두고 자영업자 '표심 잡기'

1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현재 3년 주기의 적격비용 재산정제도에 따라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의 원가를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단계만 마무리하면 당정 협의 등 최종 절차를 조율하는 과정만 남게 된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재산정 결과는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내달 내 발표될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관계기관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적격비용 산출 및 원가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적격비용이 제대로 산정됐는지 검증하는 단계와 적절한 수수료율 인하 폭에 대해 판단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만큼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최대한 연말까지는 수수료율 재산정 결과가 나오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2012년 여신금융전문법 개정에 따라 3년마다 적격비용을 산정하고, 이를 토대로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결정하고 있다. 적격비용이란 카드사의 최근 3년간 자금 조달 비용, 리스크 관리 비용, 마케팅 비용 등 운영 전반에 대한 비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산출한 값이다. 적격비용이 낮게 산정될수록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가능성은 커진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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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서는 올해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가 유력할 것이라 보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자의 영업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치권에서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한 계책으로 수수료율 인하 조치를 밀고 있어서다. 지난 3년간 저금리 기조 영향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줄면서 카드사 전체의 적격비용이 낮게 산정됐을 것이라 예상되는 점도 수수료율 인하 전망에 힘을 싣는 요소다.

카드사들이 코로나19 사태 중에 호실적을 거둔 것도 수수료율 인하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8개 전업카드사의 당기순이익은 2조264억원으로 전년보다 23.1% 늘었다. 올해 3분기 기준 누적 순이익도 2조226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2% 증가했다. 단, 신용판매 수익에 따른 실적 개선이 아닌 마케팅 비용 축소와 사업 다각화에 따른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3년간 조달 금리가 계속 줄어들면서 조달 비용이 감소했기 때문에 적격비용이 낮게 산정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맞다"며 "신용판매 수익에 따른 영향이 아닐지라도 호실적 자체가 수수료율 인하 여부에 간접적인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신용판매 적자에 인력 구조조정까지… 제2의 KT 사태 '긴장감 고조'

카드업계는 더 이상의 수수료율 인하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이 이미 카드사들이 버티기 어려울 정도까지 내려갔다는 게 이유다. 실제로 카드 수수료율은 2007년 이후 13차례에 걸쳐 인하됐다. 지금까지 적격비용 산정 작업을 거쳐 수수료율이 인상된 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 2012년부턴 세계 최초로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는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가 도입됐고, 2018년에는 우대가맹점 적용 범위를 5억원 이하에서 30억원 이하로 대폭 확대했다.

현재 0.8~1.6%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는 가맹점의 비중만 전체의 96%에 달한다. 전체 가맹점 중 92% 이상은 부가가치세 세액공제제도의 혜택으로 카드 수수료 실질 부담이 0%인 상태다. 카드사가 제시하고 있는 최소 수수료율이 1.5%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매출이 발생할수록 카드사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셈이다. 카드업계가 적격비용 재산정제도 도입의 취지가 충분히 달성됐으며 이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상황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 노조원들이 '카드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카드 가맹점수수료 추가 인하 반대 및 적격비용 재산정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사진=뉴스1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 노조원들이 '카드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카드 가맹점수수료 추가 인하 반대 및 적격비용 재산정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사진=뉴스1
카드사의 핵심 수익원인 신용판매에서 적자가 이어지면서 점포와 인력 구조조정도 있었다. 그 결과 10만명에 육박하던 카드 모집인은 8500명으로 줄고 카드 영업점 40%는 사라졌다. 올해 카드 수수료율을 추가로 인하할 경우 올해보다 영업이익이 3분의 1 줄어들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이는 모집인을 포함한 임직원의 구조조정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카드사 노조가 올해 수수료율 추가 인하 결정이 나올 경우, 신용카드 결제를 전면 중단하는 '결제 셧다운' 수준의 강력한 총파업 카드를 내던진 이유다. 카드사 노조는 대고객 서비스를 중단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대고객 서비스 중단은 수준에 따라 지불결제 프로세스상 단계가 일정 부분 중단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전산 셧다운까지 진행된다면 지난번 KT 사태처럼 결제 자체가 먹통이 되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

정종우 카드사 노조협의회 의장은 "금융위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재산정 결과 발표 당일에 긴급 대표자 회의를 열고 총파업 수준을 논의할 계획"이라며 "전산 셧다운, 대고객서비스 중단 등 조치를 모두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현재 제도는 고객 혜택을 줄이거나 사람을 자르는 방식으로 비용을 감소시켜 수익을 창출하면, 고스란히 자영업자 카드 수수료율 추가 인하 여력으로 작용하는 구조"라며 "가격 합리성을 제고하는 제도 취지가 충분히 이뤄진 상태에서 또다시 수수료율 인하를 결정하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소상공인에게 내세울 정책적 시혜로 변질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피력했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 노조원들이 '카드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카드 가맹점수수료 추가 인하 반대 및 적격비용 재산정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사진=뉴스1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 노조원들이 '카드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카드 가맹점수수료 추가 인하 반대 및 적격비용 재산정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사진=뉴스1
금융당국은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은 상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해관계자 의견을 청취하면서 총파업 관련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당장 올해 카드 가맹점 적격비용 산정 절차는 마무리되고 있는 만큼 결과를 되돌릴 수 없으나, 추후 적격비용 재산정제도 개편 작업이 이뤄질 여지는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치적 논리에서 벗어나 시장 논리에 근거한 가격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현재 카드 수수료가 제로 수준이고, 우대수수료율 적용에 세제 혜택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흑자가 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금융당국이 올해 카드 수수료율 인하 결정을 내놓는다면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이제는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시장가격체계를 반영해야 할 때"라면서 "지속적인 수수료율 인하의 근거로 이용되던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우대수수료율 적용 가맹점의 매출액 기준을 낮추는 등 원점에서부터 제도의 수정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