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린이 '인증샷' 때문에 엉망됐다"…골프장들 '속앓이'
골프장들이 고객들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골프 열풍이 불면서 골프장에서 골프웨어를 차려입고 '인증샷'을 찍느라 경기 진행이 느려지는 인스타족 때문이다.

통상 골프장에선 팀간 7~8분 정도 간격을 두고 꽉 짜인 일정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앞 팀에서 시간을 오래 끌면 뒤 팀 플레이가 지연되는데도 최근 골프에 입문한 MZ(밀레니엄+Z)세대 '골린이(골프+어린이)'들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는 것.

한 골프장 관계자는 "안 그래도 하루당 팀 수가 크게 늘어 일정이 촘촘한데 중간에 인증샷 찍으러 온 고객들이 끼어 몇분씩 진행이 밀려 경기 운영이 엉망이 된 경우가 종종 있다"며 "현장에서 고객들 민원과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캐디들 고충이 크다"고 털어놨다.

MZ세대는 '골프 패션' 인증샷 열풍

최근 골린이 열풍이 불면서 골프장을 찾는 2030세대들이 늘고 있지만 골프장들은 마냥 반갑지 만은 않다. MZ세대 사이에서 명품 골프웨어 인증샷이 새로운 라운딩 문화가 되면서 경기 지연 등 비매너로 인한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는 게 현장의 얘기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골프 인증샷 열풍은 20~3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특히 거세다. 인스타그램에서 '골린이'를 검색하면 상위 게시물 10건 중 9건이 젊은 여성이 골프웨어를 입고 골프장에서 셀카를 찍거나 채를 들고 공을 날리는 사진이다. '골프치는여자'를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게시물도 15만여 개에 달한다.

골프 열풍은 골프 패션 인기와 직결된다. 여자 선수들 경기복으로 입는 짧은 미니 스커트는 몸매를 예뻐 보이게 하는 효과 때문에 연예인들도 단골 복장으로 인증샷을 많이 찍는다. 인기 배우 이연희나 엄현경이 유행하는 골프웨어를 입고 골프장을 찾은 것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 화제가 됐다. 서구 상류 사회에서 시작된 '귀족 스포츠'란 느낌이 있어 고급스러움도 강조할 수 있다.

입문 6개월차인 골린이 최모 씨(29)는 "친구들이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을 보고 함께 어울리고 싶어 골프를 시작했다"며 "골프 자체도 재밌지만 평소에는 입기 어려운 예쁜 골프옷을 입고 경치 좋은 골프장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인증샷을 찍는 걸 하나의 놀이처럼 즐긴다"고 했다.

이같이 필드에서 골프웨어 패션을 추구하는 2030세대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올해 골프웨어 시장 규모는 5조6850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보다 두 자릿수(10.9%) 증가한 수준이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11.4% 늘어난 6조3350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실제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골프웨어 브랜드들의 매출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영 골퍼를 겨냥해 론칭한 닥스런던은 지난달 문을 연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오픈 2주 만에 여성 골프웨어 품목 월간 목표 매출을 200% 초과 달성했다. 스웨덴 골프웨어 브랜드 제이린드버그 또한 젊은 여성 골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매출 증가율이 크게 뛰었다. 지난해 150%로 급증했으며, 올해 상반기 성장률은 84%에 달했다.

골프웨어 업계 관계자는 "요즘 업계에서는 20~30대 젊은 여성고객을 잡기 위해 다양한 홍보와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SNS나 각종 골프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면 그날로 매출이 뛴다"고 말했다.

골프장 예약도 '하늘의 별 따기'

골프 인증샷 열풍이 불면서 골프장 예약도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어려워졌다.

자연히 골프장 매출은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 홀당 매출이 10억원을 넘긴 곳도 나왔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인천 영종도 '스카이72'는 지난해 매출 846억6100만원을 거둬 홀당 10억4500만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 용인 레이크사이드, 파주 서원밸리는 각각 홀당 9억7500만원, 9억5500만원을 벌어들였다.

11월 들어 '부킹 전쟁'은 더욱 심해졌다. 골프 부킹서비스를 제공하는 XGOLF가 지난 1~15일 골프장 예약 상황을 분석한 결과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8% 상승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일부 지역들은 벌써 내년 1월 예약까지 마감되고 있다"고 전했다.

당장 기업들의 골프 관련 업무 담당자들은 이달 들어 골프장 예약이 더 어려워졌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골프장 '비매너 유형'으로 꼽히는 경기 지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대기업 홍보팀 관계자는 "업무상 주말에 골프장 예약을 할 때가 있는데 인기 시간 대엔 거의 몇 초 만에 마감돼 예약이 어렵다. 그런데 골프장에 나가면 제대로 연습 않고 필드부터 나오는 골린이들 때문에 경기가 밀려 답답할 때가 많다"고 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