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국내 증시에 입성한 A 기업의 IR(기업설명) 담당자 김모씨는 상장을 전후해 같은 업종의 기존 상장사들을 다룬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수도 없이 읽었다. 경쟁사들에 대한 투자의견이 긍정적이어야 A 기업의 가치도 높게 평가받아 공모가격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몇 주 사이에 증시 분위기가 급변하면서 안 좋은 타이밍에 상장하게 될까 초조했다"고 털어놨다.
여의도 증권가의 모습. 사진=허문찬 기자
여의도 증권가의 모습. 사진=허문찬 기자
카카오뱅크, 크래프톤, 카카오페이… 올해 공모주 시장에도 '대어'는 쏟아졌습니다. 다만 성적은 기대를 밑돌았습니다. 대부분의 대형 공모주들이 공모가 산정 단계부터 고평가 논란에 휩싸이거나 개장 이후 상한가로 치솟는 '따상'에 실패했습니다. 성적표와는 달리 일부 공모주의 일반 청약에 180만명 이상의 투자자들이 몰리는 등 기업공개(IPO) 시장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IPO 기업의 공모가 산정에 관여하는 요소는 다양합니다. 그런데 날마다 수십개씩 발표되는 '금융투자분석사(애널리스트) 리포트'도 공모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특히 해당 기업이 아닌 다른 기업에 대한 분석 보고서도 공모가격을 정하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애널리스트 입장에서는 기존에 맡은 기업들만 분석했는데, 엉뚱하게 상장예정기업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지난달 한국증권학회지에 실린 24쪽 분량의 논문 '경쟁기업에 대한 애널리스트 투자정보가 신규 상장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애널리스트 리포트가 갖는 확산효과를 발표했습니다. 시장에 흔히 발생하는 경제학적 개념인 '외부효과(spillover effect)'를 주식시장에서 확인한 내용입니다. 애널리스트의 추천 의견과 이익예측은 해당 기업뿐 아니라 같은 업종의 신규 공모주의 공모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게 골자입니다.

이 같은 답을 얻기 위해 논문 작성자인 전진규 동국대학교 교수(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는 상반된 가설 두 개를 검증했습니다. 바로 '전염효과' 가설과 '경쟁효과' 가설입니다.

전염효과 가설은 기존 상장기업에 대한 호의적인 투자의견과 이익예측은 IPO 기업의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저가발행률을 낮춘다는 가정입니다. 저가발행이란 IPO 기업의 공모가를 시장가치보다 낮은 값으로 매기는 것을 일컫습니다. 반대로 경쟁효과 가설은 호의적인 투자의견과 이익예측이 신규 상장기업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해 저가발행률을 높인다는 가정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두 가설은 각각 반만 맞습니다. 2006~2019년 유가증권 시장 IPO 사례 120건과 코스닥 시장 IPO 사례 620건을 분석한 결과 전 교수는 기존 상장사에 대한 투자의견 '상향' 비율이 높을수록 저가발행률이 낮게 나타나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업종에 투자의견 '매수' 의견이 쏠리면 그 업종에서 새로 상장하는 기업의 공모가도 비교적 높은 값에 매겨지는 경향이 있다는 얘깁니다.

이익예측은 경쟁효과 가설에 들어맞았습니다. 기존 상장사에 대한 이익예측치의 '상향' 비율이 높을수록 저가발행률도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익예측은 해당 기업 자체의 미래성과에 대한 분석 결과입니다. 기존 상장사들의 이익 성장은 곧 신규 상장사의 업종 내 경쟁력 약화로 연결될 것이란 심리가 작용한 것이죠. 반면 투자의견 변경은 해당 기업의 미래 성과뿐 아니라 업종의 미래 성장성에 대한 평가가 개입돼 업종 내 경쟁기업에도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전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업종 내 추천종목이 많다는 것은 곧 호황을 의미해 신규 IPO 기업의 공모가 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투자의견 하향이 많을 경우에는 공모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아예 IPO가 미뤄지기도 한다. 최근 해운 업계 고점 우려로 SM상선이 IPO 계획을 잠정 미룬 게 그 예"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 교수는 "이익예측치 관점에서 검토해보니 업종 내 비슷한 규모의 기업이 점유율을 높이거나 이익예상치가 커질수록 IPO 기업엔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애널리스트가 제공하는 투자정보 중 투자의견과 이익예측치가 경쟁기업에 이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데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