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통화 옵션으로 '환전 수수료 절감'...B2B 해외송금 서비스 주목 [한경 엣지]
미국의 다국적 기술 기업 A사는 몇년 전부터 개발도상국의 파트너사와 거래를 할 때 달러가 아닌 현지통화로 결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매년 수백만 달러를 아낄 수 있었다. A사는 원래 물건값 이외에 파트너사가 달러로 받은 대금을 자국의 화폐로 바꿀 때 드는 환전 수수료 등 3~5%의 추가비용을 내야 했는데, 이런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서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선 A사처럼 다양한 결제 통화 옵션을 바탕으로 수입가격 인하 효과를 얻는 기업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00여개가 넘는 결제통화를 지원하는 B2B(기업 대 기업) 해외송금 솔루션 기업 등과 제휴를 통해 탄탄한 글로벌 환거래은행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에선 P2P(개인간) 해외송금 시장이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것과 달리 B2B 해외송금 영역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다는 평가다.

“수입가격 인하 효과 가능”

개발도상국과 거래하는 국내 수입 업체들이 상대방 국가의 통화로 대금을 치르면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재는 현지통화가 아닌 미 달러 등으로 결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파트너사는 달러를 자국 통화로 바꾸는데 드는 비용과 환율 리스크 등을 물건값에 얹어 계약하려 하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많게는 국내 수입사가 10~20%의 추가비용을 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현지 통화로 직거래가 가능하다면 이런 웃돈을 내지 않아도 될 뿐더러 신규 거래처 확보도 쉬워질 수 있다. 물론 현지 통화가 아니라 기축통화인 달러 결제를 원하는 상대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결제 수단이 다양화되는 것이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 나쁠 건 없다. 거래 상대방이나 품목, 시장 상황 등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비단 무역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국내 본사가 해외 지사에 돈을 보낼 때 효율적인 자금 관리가 가능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 공장에서 근무하는 현지 직원들에게 정확하게 현지 통화로 급여나 경비 등을 지급할 수 있다”며 “만약 달러로 송금할 경우 환율 변동성 등을 고려해 넉넉한 금액을 보내줘야 해 효율적이고 투명한 자금 관리가 어렵다”고 했다. 국내 비영리법인(NGO)이 저개발국에 구호금 등을 보낼 때 자금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현지 통화 결제로 인한 혜택에 대해 인지가 부족해 관행적으로 달러 등 기축통화로만 결제를 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결제통화별 수입 비중은 미국 달러가 78.1%, 원화 7.0%, 유로화 6.5%, 엔화 5.9%, 위안화 1.5%로 5개 통화 비중이 99%에 달했다. 국내 은행들이 다양한 통화 지원을 하지 않고 있는 점도 현지 통화 해외송금 활성화 부진의 요인으로 꼽힌다. 기업들이 현지 통화 결제를 하고 싶어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지원하는 통화는 20~40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P2P 해외송금은 혁신 활발한데…

은행들은 비용과 리스크 문제를 우려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해외 은행과 환거래 계약을 맺을 경우 상대 은행이 부과하는 계좌유지 수수료 등 비용이 발생한다”며 “특히 상대적으로 시스템이 견고하지 않은 개발도상국 은행의 경우 부도에 따른 예치금 리스크, 자금세탁 리스크 등도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해외에선 대형은행들이 개도국 은행과 개별적으로 제휴를 하기보다 이미 글로벌 환거래은행 네트워크를 갖춘 해외송금 업체들과 손을 잡고 관련 서비스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40여개 통화를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기업 스톤엑스가 해외송금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65개 은행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스톤엑스는 전세계 350여개 환거래 은행에서 매일 외환거래를 해 조달비용을 낮추고 있다. 웨스턴유니온과 캠브리지 FX 등도 대표적인 해외송금 솔루션 기업들이다. 국내에선 센트비즈 등이 B2B 해외송금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국내 해외송금 서비스의 문제점으로 △비싼 수수료 △느린 처리속도 △접근성의 제약 △낮은 투명성 등 네가지를 꼽은 바 있다. 2017년 정부가 소액 해외송금업을 허용한 이후 개인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1회 5000달러 미만 소액송금 시장에선 ‘제로(0)’에 가까운 수수료를 내건 핀테크가 나오는 등 혁신이 일어나고 있지만 B2B 시장의 혁신은 아직 더디다는 평가다. B2B 해외송금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나면 비용절감뿐 아니라 송금 속도와 투명성이 개선되는 등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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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