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공장은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시장 공략의 전초기지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시장에 건설한 사실상 첫 해외 생산기지다. 1980년대 후반 캐나다 브루몽에 공장을 지었다가 10년도 못 버티고 철수한 악몽에서 벗어나게 한 ‘효자 공장’이기도 하다. 2005년 앨라배마공장이 준공될 때만 해도 현대차는 미국에서 ‘싸구려 차’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인기있는 브랜드 중 하나로 도약했다.

현대차가 앨라배마공장에서 내년부터 전기차를 본격 생산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첫 차량은 제네시스 GV70의 전기차(EV) 모델이다. 앞으로 다른 전기차 모델도 이 공장에서 생산할 방침이다. “GV70 EV의 현지 생산이 현대차의 미국 전기차 시장 공략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급성장 美 전기차 시장 잡아라

"1250만대 美 전기차 시장 잡아라"…잘나가는 GV70 '선발 등판'
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가 예상보다 빨리 앨라배마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기로 한 것은 미국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은 유럽이나 중국 등에 비해 전기차 전환이 늦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판매량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제너럴모터스(GM)나 포드 등 미국 브랜드들도 잇따라 신형 전기차를 내놓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지난해 36만 대 규모였던 미국 전기차 시장이 2030년 720만 대, 2040년 1250만 대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 등은 미국 전기차 시장을 예측하는 보고서를 낼 때마다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의회도 현대차 등 자동차 제조사들의 전기차 현지 생산을 유도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30년까지 신차 중 절반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민주당은 2027년 이후에는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한 상태다.

현대차는 지난달 26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전기차 전환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고, 이런 시장 변화를 감안해 현지 전기차 생산 등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 5년간 74억달러(약 8조7000억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지난 5월 발표하기도 했다.

노조 동의가 최대 변수

GV70 EV의 앨라배마공장 생산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해외 생산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지금까지 제네시스 브랜드 차량은 모두 울산공장에서 제조됐다. 현대차는 올해와 내년 제네시스 브랜드를 글로벌 시장에 안착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미국 시장에는 GV80, GV70 등 신모델을 잇따라 투입하고 있다. 올해 유럽과 중국 등에도 진출했다. 2030년까지 제네시스를 ‘세계 최고 수준의 럭셔리 전기차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게 현대차의 목표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제네시스 브랜드 차량을 해외에서 생산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기차 해외 생산의 가장 큰 걸림돌은 노동조합의 반발이다. 현대차 노조는 전기차를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 지난 5월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 계획이 공개되자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에서 생산 중인 쏘나타 등의 물량을 국내 공장으로 가져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가 이런 제안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현대차 국내외 공장의 생산 모델이 크게 바뀔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해외 공장에서 전기차 및 제네시스 브랜드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국내 공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갈수록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유연한 생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팰리세이드 증산을 두고 노조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최근 다차종 생산체계 도입을 검토하는 등 새로운 생산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며 “국내 공장도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물량을 제대로 배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 내 전기차 판매 확대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방안은 현지 상황 등을 감안해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병욱/김형규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