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능력을 상실한 무직자의 손해배상액을 구하는 소송에서 ‘일용직 노동자의 월 가동일수(근로일수)’가 18일인지 22일인지를 놓고 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놔 혼란이 일고 있다. 가동일수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가정주부, 미성년자 등의 배상액 결정에 적용되는 기준이다. 그동안 법원은 가동일수를 22일로 간주해왔지만, 최근 근로시간 단축 등을 반영해 18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8월 하급심에서 ‘도시지역 보통 일용직’의 가동일수를 두고 판결이 엇갈렸다. 대구고등법원은 의료사고로 왼쪽 신장을 잃은 무직 여성 A씨가 병원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단순노무종사자의 월평균 근로일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평균 22일”이라며 18일이라는 병원 측 주장을 일축했다.

반면 같은 달 부산지방법원은 차량 사고로 영구 장애를 입은 B씨가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건설업 종사자의 근로일수는 2014년 18.3일에서 2016년 17.8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22일 주장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도 2월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 “경제 선진화로 임금에 매달리기보다 여유를 즐기려는 추세가 크고 주 5일제 도입 등으로 법정근로일수도 줄었다”며 가동일수를 18일로 판단했다.

법원이 가동일수를 22일로 보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이다. 이후 2003년 주 5일제, 2013년 대체공휴일제가 도입됐다. 지난달 근로일수는 대체휴일을 빼면 19일이고, 9월에도 추석연휴를 빼면 20일에 불과하다. 여기에 연차휴가를 반영하면 더 줄어든다.

송진성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최근 한 기고에서 “시간당 임금은 오르고 노동시간은 줄어드는 추세인데 임금 변화만 반영하고 가동일수는 고수하면 무직자가 실제보다 높은 배상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한건설협회 조사에 따른 2019년 일용직 노임 13만원에 22일을 곱하면 286만원이다. 이는 단순노무종사자의 실제 월 임금 180만원(고용부 통계)을 한참 웃돈다는 설명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다 배상은 보험료 인상으로 연결된다”며 “사회 공론화와 이를 토대로 한 대법원의 판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