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정한 父子  >  신격호 롯데 창업주(오른쪽)가 신동빈 현 롯데 회장과 롯데케미칼 사무실로 이동하는 모습(1990년대).  /롯데그룹  제공
< 다정한 父子 > 신격호 롯데 창업주(오른쪽)가 신동빈 현 롯데 회장과 롯데케미칼 사무실로 이동하는 모습(1990년대). /롯데그룹 제공
‘나는 서울과 부산의 수산시장에 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시장바닥에 물이 질퍽질퍽했다. 도쿄 쓰키지 시장은 배수구가 따로 있어 손님들이 오가는 통로에는 물기가 전혀 없다. 서울은 도심 가게에조차 시뻘건 녹이 슨 통조림이 쌓여 있었다. 이를 유심히 살펴본 나는 유통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소비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양질의 물건을 적정가격에 사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신격호 롯데 창업주와 롯데그룹을 저평가할 때 드는 근거 중 하나는 ‘국가경제 기여도가 낮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신 창업주가 사업을 시작할 때 항상 염두에 뒀던 것은 시민 삶의 질, 그리고 국격이었다. 모두가 “한국 수준과 경제 규모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할 때도 신 창업주는 “우리 국민들도 고급 문화를 누릴 권리가 있다”며 밀어붙였다.

국격 생각하며 정상급 호텔 완성

< 롯데월드타워 보고받는 신격호 >  1995년 8월 숙원이던 롯데월드타워 설계안을 보고 있는 모습.
< 롯데월드타워 보고받는 신격호 > 1995년 8월 숙원이던 롯데월드타워 설계안을 보고 있는 모습.
호텔업을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권’ 때문이었다고 신 창업주는 회고한다. 신 창업주는 박 전 대통령이 소공동 반도호텔을 인수해달라고 한 날을 1970년 11월 13일로 기억한다.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반도호텔 아시죠. 지금 관광공사에서 맡고 있는데 적자 때문에 골칫거립니다. 신 회장이 반도호텔을 맡아 주시지요.”

신 창업주는 회고록에서 “호텔업은 손님이 1명뿐이어도 종업원 수백 명이 근무해야 하는 리스크가 큰 장치산업”이라고 규정하면서 “세간에서는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것처럼 바라보지만 당시 롯데의 규모로는 사운(社運)을 걸어야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국격’을 떠올렸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아도 묵을 호텔이 변변치 않은 실정이었다. 신 창업주는 “이왕 호텔을 짓는다면 세계 정상급으로 지어 나라의 자존심을 세우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신주쿠 게이오플라자호텔을 설계한 일본 가지마건설 관계자 등이 “한국의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객실은 500실 정도가 적정하다”고 했지만 신 창업주는 “호텔 객실 수는 1000실, 높이는 약 40층”이라고 못 박았다. 신 창업주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도 외국인의 숙소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실 롯데호텔을 빠르게 완성하는 등 호텔업과 국격을 항상 연결지었다.

“롯데월드타워는 서울 품격 높이는 사업”

< 정주영 회장과 골프회동 >  1986년 9월 류찬우 전 풍산 회장(왼쪽부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신격호 롯데 창업주가 골프모임을 하고 있다.
< 정주영 회장과 골프회동 > 1986년 9월 류찬우 전 풍산 회장(왼쪽부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신격호 롯데 창업주가 골프모임을 하고 있다.
신 창업주 평생의 숙원이었던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월드 테마파크 사업의 동기도 ‘이윤 추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부지 매입부터 2017년 완공까지 30년이 걸렸다. 신 창업주는 사업 이유가 단순한 이윤 추구였다면 30년을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롯데월드타워를 짓는 동안 ‘몇 년이 지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꽤 많았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회수 불가. 이윤 창출 관점에서 보면, 이는 기업인의 역할을 포기한 것과 같다. 나의 셈법은 조금 다르다. 서울의 품격을 높이고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면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한국을 대표하는 테마파크인 롯데월드 또한 마찬가지다. 롯데월드 건설 과정에서도 여러 반대에 부딪혔다. 겨울철 온도가 매우 추워 테마파크로는 부적절하다는 논리가 대표적이었다. 다른 추운 나라의 사례를 수집하다가 캐나다 에드먼턴에 있는 실내 복합시설에 주목했다. 한겨울에 직접 에드먼턴으로 날아가 테마파크를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는 “에드먼턴에 가니 주말이면 10만여 명이 거대한 유리천장 아래서 테마파크를 즐기고 있었다”며 “황량한 잠실이 꿈의 공간으로 변하는 장면이 어른거려 가슴이 설렜다”고 회고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