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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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숙 씨는 아버지 어성실 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상속문제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성실 씨는 아내와 사별한 후 외동딸 어리숙 씨를 애지중지 키워왔습니다. 자신이 죽더라도 딸의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미리 보험금 20억원짜리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매달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부해왔습니다. 덕분에 어리숙 씨는 20억원의 생명보험금을 지급받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아버지가 남긴 빚이 생각보다 많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남긴 부동산이 있긴 한데, 사업실패로 불어난 채무가 훨씬 많아서 순 채무액이 20억원 정도가 됩니다.

어리숙 씨는 먼저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습니다. 변호사는 상속포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상속포기를 하지 않을 경우 아버지의 재산뿐만 아니라 채무까지도 승계되기 때문입니다. 어리숙 씨는 보험금 20억원으로 아버지의 채무 20억원을 몽땅 변제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리숙 씨가 물려받는 재산은 실질적으로 한 푼도 없는 셈이 됩니다. 하지만 상속포기를 하면 아버지의 채무를 변제할 필요가 없어, 보험금 20억원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리숙 씨는 다음날 세무사를 찾아가 다시 한 번 상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무사 말은 변호사 말과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어리숙 씨가 상속을 포기하더라도 보험금을 수령하면 보험금이 상속재산으로 간주되어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사망보험금이 20억원이니 상속세를 최대 4억4000만원까지 내야 한다는군요.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변호사는 보험금 수령과 상관없이 상속을 포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세무사는 보험금을 수령하면 상속을 포기하더라도 상속받은 것으로 간주된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서로 말이 다른 것일까요?
아버지 20억 빚, 상속포기하고 보험금 받으려니 '세금' 내랍니다 [정인국의 상속대전]

부친 사망으로 받은 생명보험금, 상속세 과세

먼저 보험금을 받은 이상 상속세를 내야 한다는 세무사의 말은 맞습니다.

피상속인(어성실 씨)이 보험계약자가 되어 보험료를 납부했다면, 피상속인의 사망 후 상속인(어리숙 씨)이 받는 보험금은 피상속인의 부(富)가 상속인에게 이전된 것입니다.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지급받는 보험금은 본래의 상속재산은 아니지만, 우리 세법에서는 '간주상속재산'이라 해서 상속세 과세대상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보험계약을 통해 피상속인이 그 재산을 상속인에게 편법으로 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상속인이 설사 상속포기를 하더라도 보험금을 받은 이상 상속세는 과세됩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8조(상속재산으로 보는 보험금) ①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인하여 받는 생명보험 또는 손해보험의 보험금으로서 피상속인이 보험계약자인 보험계약에 의하여 받는 것은 상속재산으로 본다.

② 보험계약자가 피상속인이 아닌 경우에도 피상속인이 실질적으로 보험료를 납부하였을 때에는 피상속인을 보험계약자로 보아 제1항을 적용한다.
이 사건에서는 상속포기를 했으니 상속채무 20억원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상속재산으로 간주되는 보험금 20억원이 있으므로, 최대 4억4000만원 정도의 상속세는 내야 합니다.

보험금 받더라도 상속은 포기할 수 있다

다음으로 보험금을 받아도 상속을 포기할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도 맞습니다.

보험금을 상속재산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조세회피를 막기 위해 상속세를 과세하는 범위에서 그러할 뿐입니다. 민법상으로 보험금은 상속재산이 아니라 상속인의 고유재산입니다. 피상속인(어성실 씨)의 사망으로 인해 상속인(어리숙 씨)이 지급받는 생명보험금은 보험수익자의 지위에서 받는 것이지, 피상속인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대법원 2004. 7. 9., 선고, 2003다29463, 판결]

보험계약자가 피보험자의 상속인을 보험수익자로 하여 맺은 생명보험계약에 있어서 피보험자의 상속인은 피보험자의 사망이라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에는 보험수익자의 지위에서 보험자에 대하여 보험금 지급을 청구할 수 있고, 이 권리는 보험계약의 효력으로 당연히 생기는 것으로서 상속재산이 아니라 상속인의 고유재산이라고 할 것인데, 이는 상해의 결과로 사망한 때에 사망보험금이 지급되는 상해보험에 있어서 피보험자의 상속인을 보험수익자로 미리 지정해 놓은 경우는 물론, 생명보험의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의 지정권을 행사하기 전에 보험사고가 발생하여 상법 제733조에 의하여 피보험자의 상속인이 보험수익자가 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보아야 한다.
어리숙 씨는 보험금 수령여부와 무관하게 상속포기를 할 수 있습니다. 상속포기를 하면 상속채무는 어리숙 씨와 관련이 없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어리숙 씨는 자신의 개인재산으로 아버지의 사업상 채무 20억원을 변제할 의무가 없습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상속을 포기한 어리숙 씨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받은 생명보험금 20억원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채권자들은 상속을 포기한 어리숙 씨의 보험금을 넘볼 수 없구요. 다만 어리숙 씨는 보험금을 수령함에 따라 최대 4억4000만원 가량의 상속세는 납부해야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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