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계획대로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 제로(넷제로)’를 달성하면 제조업 일자리가 20%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정부 연구 용역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전망은 숨기고 2030년까지 일자리가 유지되거나 조금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만 공개했다.

26일 정부 안팎의 관계자에 따르면 산업연구원은 최근 탄소중립 전략이 고용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산업연구원의 추정에 따르면 철강과 석유화학, 시멘트 등 고탄소 산업군을 중심으로 고용이 30년 만에 20% 이상 줄어들 수 있는 것으로 전망됐다.

통계청이 집계한 9월 기준 제조업 취업자 수가 429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86만 명 이상이 탄소중립 과정에서 실업자로 내몰릴 수 있다는 의미다. 순수히 산업 부문의 일자리 감소만 추계한 결과인 만큼 소비 위축 등에 따른 경제 타격은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보고서 내용이 지나치게 충격적인 데다 정부의 탄소중립 노력과 상반되는 것인 만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산업별로 봤을 때 철강과 석유화학에서는 포스코와 GS칼텍스 등 주요 대기업을 제외하고 상당수 중견업체가 도산할 것으로 예상됐다. 시멘트에서는 관련 제조업체 중 절반이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규모가 작은 업체들이 대거 도산하면서 산업 구조조정이 이뤄져 살아남은 기업들의 수익성은 개선될 것으로 관측됐다.

이 같은 연구 용역결과가 나왔지만 정부는 지난 18일 목표를 대폭 상향한 온실가스 목표를 제시하며 긍정적인 예상만 제시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며 국내총생산(GDP)은 0.07% 줄어들지만 고용은 0~0.02% 증가한다는 것이다. 전망치를 제시한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연구원은 “탄소저감 업종 및 수소산업 등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늘 것”이라며 이 같은 예상을 내놨다. 환경연구원은 녹색경제 활성화와 하천 관리, 폭염재해 예방 등 환경 정책을 연구하는 곳이다. 환경연구원 관계자는 “일자리 증가 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하기 어렵다”며 “산업연구원은 산업 측면만 분석한 반면, 환경연구원에서는 보다 복잡한 모델을 동원해 분석했기 때문에 더 신뢰성이 있다고 봤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기후 변화를 연구해온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학 교수는 “탄소감축은 우리 삶을 관통하는 문제인 만큼 여러 요소를 감안해 세심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탄소 한 방울을 줄이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행위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노경목/김소현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