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사업에서 손을 떼고 단계적 폐지(청산)를 결정한 건 국내 은행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진 결과로 분석된다. KB,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빅5’ 금융그룹 위주로 재편된 지 10여 년이 흐른 가운데 한국씨티은행은 뾰족한 변곡점을 마련하지 못했고, 규모의 경제와 효율성 측면에서 국내 은행을 당해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씨티은행의 상반기 말 기준 임직원 수는 3468명, 자산 규모는 51조원이다. 국내 1위 은행인 국민은행의 임직원 수는 1만5390명, 자산은 455조원이다. 한국씨티은행 직원 한 명당 자산 규모는 약 147억원으로 국민은행(295억원)의 절반가량에 불과했다. 기업금융부문 비중이 큰 한국씨티은행의 특성을 감안하면 소비자 금융부문 격차는 더 크다는 분석이다. 고객 수(200만 명)는 대형은행의 10분의 1이 되지 않는 수준이고, 이익 규모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으로 처졌다.

카카오뱅크의 등장 이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내 은행들이 디지털 전환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는 가운데 한국씨티은행은 이런 흐름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은행 특유의 강력한 내부통제(컴플라이언스)도 한국씨티은행이 디지털 혁신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이유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리테일뱅킹을 축소하고 기업금융과 투자은행(IB) 부문을 강화하는 게 글로벌 은행들의 트렌드”라고 말했다. 은행들이 대면 영업에 쏟던 역량을 비대면과 디지털로 돌리고, 소비자 금융의 주도권이 인터넷은행으로 넘어가는 변화가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한국씨티은행의 국내 소비자 사업 폐지도 이런 연장선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인수전을 앞두고 한국씨티은행의 자산관리(WM) 부문만큼은 매력적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수년 새 국내 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 수준이 높아졌고, 이들 은행에선 “씨티은행의 WM부문을 사오는 대신 전문가를 빼오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나왔다.

결과론적이지만 한국 사업에 큰 뜻이 없는 본사와 강성노조의 ‘고용 승계’ 요구가 단계적 청산으로 몰고갔다는 분석이다. 한국씨티은행은 2000년 초반 대부분 국내 은행이 노사 합의로 없앤 ‘퇴직금 누진제’가 남아 있는 유일한 은행으로 꼽힌다.

한 국내 은행장은 “규모 면에서 한국씨티은행이 철수해도 국내 소비자 금융업엔 별 영향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씨티은행의 사업 축소는 국내 은행도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대훈/정소람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