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지는 '뉴 삼성 청사진'…이재용 부회장의 어깨가 무겁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구속 수감돼 있는 동안 삼성 안팎에선 의사결정권자 부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상당했다. 글로벌 경쟁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하는 동안 삼성은 이렇다 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돌아와야 삼성의 ‘투자 시계’가 다시 돌아갈 것이란 목소리도 거셌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이 부회장이 8월 출소한 뒤 100일 가까이 지났음에도 이렇다 할 ‘뉴 삼성’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가석방 직후인 지난 8월 24일 내놓은 반도체와 바이오 분야 240조원 신규 투자 계획을 내놨지만 구체적인 전략 방향을 읽어내긴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반도체와 바이오가 삼성을 이끌어가는 중심축이 된 지 이미 오래이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수합병(M&A)으로 삼성에 새로운 DNA를 심을 때가 됐다는 의견도 있다. 삼성은 2017년 차량용 전장 분야에 대한 투자 일환으로 하만을 약 9조원에 인수한 뒤 M&A 시장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공격적으로 M&A에 뛰어든 경쟁사들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LG전자는 전장사업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꾸준히 M&A를 진행하고 있다. 2018년 8월 차량용 조명 시장 선두기업인 오스트리아 자동차부품 회사 ZKW를 인수한 데 이어 올 7월엔 세계 3위 자동차부품 업체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전자동력장치) 분야 합작법인인 ‘엘지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했다. SK하이닉스도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추진하며 낸드플래시 시장 공략의 고삐를 죄고 있다.

지난 3년간 삼성의 인사 키워드는 ‘안정’이었다. 이 부회장이 법적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뒤 새로운 피를 수혈하기보다는 기존 인력으로 조직 안정을 꾀하는 데 집중했다는 의미다. 삼성 관계자는 “경영진 연령이 고령화하고 있는 데 대한 안팎의 걱정이 적지 않다”며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데 조직 분위기는 오히려 보수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건희 회장 타계 1주기(25일)를 기점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에 조금씩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사와 조직 개편에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삼성의 경영전략을 드러낼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석방 형기 만료 시점인 내년 7월까지는 이 부회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공식 행보는 힘들더라도 중요한 의사결정엔 비공식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며 “‘뉴 삼성’에 대한 큰 그림이라도 내놓는다면 투자자뿐 아니라 삼성 내부 직원들의 사기도 진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