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보상, 기피 시설 설립 문제 등으로 주민 반발 확산
개발 지역 인근 세계문화유산 서오릉도 돌발 악재 될 듯

오는 12월 사전청약을 시작하는 3기 신도시 창릉지구 개발 사업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신도시 개발을 위한 첫 단계인 토지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데다 쓰레기 소각장을 비롯한 기피 시설 설립 문제 등을 놓고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서오릉도 개발 구역과 가까워 공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복병이다.

아파트 3만8천 가구를 짓는 창릉지구는 3기 신도시 가운데 녹지 규모가 가장 크고 서울 접근성이 우수해 높은 청약률이 예상된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의 역이 생기고 경기 고양-서울 은평간 도시철도인 고양선이 신설되는 것도 이곳의 장점이다.

창릉지구는 오는 12월부터 사전청약을 받아 이르면 2025년 입주를 시작할 계획이나 토지 보상을 비롯한 난제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으면 입주는 예정일보다 훨씬 늦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토지 보상 진통

23일 현재 창릉지구의 토지 보상률은 0%다.

2019년 5월 신도시로 확정됐지만 2년 5개월이 지나도록 아직 첫발조차 떼지 못했다.
'12월 청약' 창릉신도시 곳곳에 암초…입주 일정 난항 예고
농지 비중이 높아 토지 보상을 이미 마친 인천 계양과 금액 기준으로 보상률 80%를 넘은 하남 교산과 대조적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토지 보상을 연내에 시작한다는 방침이지만 주민 반발이 워낙 강해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통상 토지 수용가격은 공시지가의 1.3~1.5배 수준으로 책정될 뿐 개발이익은 반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토지주들은 이 가격으로는 땅을 내주지 않겠다는 강경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토지감정평가사 선정부터 난항에 빠졌다.

3개 구역에서 토지주와 개발사업주가 감정평가사를 1명씩 선정해서 보상가격을 매겨야 하는데 토지주들은 여태껏 1명도 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창릉지구 토지·건물을 수용할 때 현실에 맞는 보상가를 적용해달라는 글이 이달 20일 올라왔다.

이 청원인은 "공공주택지구 조성,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 창릉역 신설 호재 등으로 주변 토지 시세가 두 배 넘게 급등했으나 개발이익 배제로 헐값 보상을 받을 상황"이라며 "보상금을 받고 나면 인근 지역 재정착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개탄했다.

토지주들은 부동산 감정평가에도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택지 보상 실무 기관인 감정평가법인들이 LH와 결탁해 시세보다 턱없이 낮은 보상가격을 책정해 주민들의 재산권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급기야 창릉지구 주민들은 다른 3기 신도시 토지주 등과 함께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공전협)를 결성해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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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전협은 지난 19일 한국감정평가사협회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형 감정평가 법인들이 사업시행사의 입맛에 맞는 감정평가사와 LH 출신 평가사를 동원해 사전 협의한 금액에 맞춰 감정평가를 한다고 성토했다.

공전협은 또 감정평가사협회 해체, 평가 업무의 한국부동산원 이관, 권력 유착이 의심되는 13개 대형 감정평가법인의 3기 신도시 및 공공주택지구 평가 배제, LH 출신 감정평가사 회피 등을 요구했다.

LH가 싼값에 토지를 수용하고 아파트는 고가에 분양함으로써 폭리를 취하는 현실도 토지주들의 원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실이 LH로부터 제출받은 '2015년 이후 서울·경기 공동주택용지 공급가격과 조성원가' 자료를 보면 LH는 서울과 경기 33곳에 1천158만m²의 공공택지를 조성해 5조1천664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창릉지구에서 토지 보상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분양과 착공 등이 늦어져 2025년 입주 계획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경기 하남 감일지구는 토지 보상이 장기간 표류한 탓에 입주가 애초 예정일보다 6년 넘게 늦어졌다.

3기 신도시에 도입된 사전청약은 남의 땅을 토대로 분양하는 방식이어서 제때 아파트가 공급되지 않으면 손해배상 소송이 속출할 수도 있다.

◇ 기피 시설 예정지 주민들 반발
기피 시설을 떠안게 된 동네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점도 신도시 개발 전망을 어둡게 한다.

폐기물처리시설(소각장)과 열병합발전소가 향동지구에서 약 600m 떨어진 곳에 설립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최근 입주한 8천380가구 주민들은 절대 수용 불가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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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시설은 신도시 3만8천 가구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소각하고 전력과 지역난방을 공급하는 생활 필수 인프라이지만 향동지구에는 친환경 숲세권을 망치는 공해시설이라는 이유에서다.

LH는 지난 8월 공청회를 열어 이들 시설과 향동지구 거리를 1.4km로 늘리는 식으로 주민들을 설득했다가 혹을 하나 더 붙이고 말았다.

창릉지구 동쪽 끄트머리인 용두동 주민들까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거리 조정으로 해당 시설들이 용두동과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고령층이 주로 사는 약 600가구 용두동 주민들은 개발지구에 포함되지 못해 박탈감을 심하게 느끼는 마당에 유해 시설까지 떠안으라는 것은 힘없는 노인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향동과 용두동 주민들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소각장과 열병합발전소를 창릉신도시 내부에 세우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LH는 주변 주거밀도, 주택단지 이격거리, 환경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부지를 선정한 만큼 기존 계획을 바꿀 의향이 없다는 방침이다.

다만, 소각장과 열병합발전소를 지하에 짓고 지상에는 주민 편의시설을 제공할 계획이나 주민들은 이것마저 거부하고 있다.

개발 예정지의 레미콘공장과 금속가공업체, 기계·장비 수리업체 등 100여 개 공장의 이전 문제도 골칫거리다.

이들 업체가 옮겨갈 현천동은 환경오염과 교통체증을 우려하며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현천동은 내년 7월부터 약 3만명이 입주 예정인 덕은지구 4천815 가구 주민에게도 비산먼지와 소음 등 피해를 줄 게 뻔해 주민 반발이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이윤만 추구하는 LH공사가 레미콘공장을 비롯한 환경오염 유발 업체를 현천동으로 이전하는 것은 심각한 환경권 침해라는 글이 올라왔다.

LH가 공장 이전 부지를 선정할 때 고양시와 아무런 협의를 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자 고양시 의회도 급제동을 걸었다.

김종민 의원을 비롯한 시의원 17명은 레미콘공장이 뿜어낼 유해 먼지와 교통체증 등으로 환경피해가 우려된다며 기업 이전 계획을 철회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들은 정부와 LH가 현천동 주민의 의사를 무시한 채 유해 시설 이전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 의견을 반영한 이전 지역을 새로 마련하라는 제안도 했다.

◇ 도시 자족 기능 전망도 암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중심업무지구와 창릉테크시티를 판교테크노밸리의 두 배 크기로 조성해 수도권 서북부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로 했으나 현실 여건은 만만치 않다.

창릉신도시는 전체 부지 813만㎡ 가운데 17%인 135만㎡를 자족 용지로 확보했으나 공업지역은 전혀 없다.

이 상태로라면 아파트 3만8천 가구만 들어서고 산업시설 유치 약속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업지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자족 기능의 핵심인 기업 유치와 산업단지 조성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남양주 왕숙, 부천 대장 등에는 공업지역이 배정됐으나 3기 신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창릉에만 공업지역 물량이 없다.

고양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과밀억제권역으로 묶여 기업 유치가 쉽지 않다.

공장 부지를 싸게 얻지 못하고 각종 세금이 무겁기 때문이다.

법인 설립 후 5년 안에 취득하는 부동산에는 기준세율보다 3배 높은 중과세율이 적용된다.

공업지역으로 지정되면 이런 걸림돌은 한꺼번에 제거될 수 있다.

기업이 싼값에 부지를 얻을 수 있고 취득세·재산세·중과세 제외, 재산세 5년간 35% 경감 등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고양시에도 공업지역은 있으나 창릉지구 배정은 꺼린다.

덕은지구를 아파트단지로 개발하면서 비축한 공업지역 약 6만6천㎡를 대곡역세권 개발에 사용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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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역세권 부지는 창릉신도시보다 조성 원가가 훨씬 비싸 기업 입주가 어려운 점을 고려한 구상이다.

더욱이 고양시는 국토교통부 주도로 개발되는 창릉신도시의 공업지역 물량은 정부가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하지만 정부가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장벽을 걷어가며 공업지역을 추가로 배정할지는 의문이다.

과밀억제권역에는 공업지역 총량제가 적용돼 제로섬 현상이 나타난다.

특정 지자체의 공업지역이 늘어나면 다른 지자체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밀억제권역에 속하는 15개 지자체가 한정된 공업지역 물량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경기도는 다른 지자체의 공업지역 10만㎡를 이미 일산 테크노밸리로 옮겨줬는데 창릉신도시에 추가 배정을 국토부에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 신도시 인접 서오릉도 잠재 악재
창릉신도시와 인접한 서오릉도 아파트단지 건설 과정에서 언제든지 걸림돌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서오릉은 서울 서쪽에 모여 있는 조선 왕조의 창릉과 익릉, 명릉, 경릉, 홍릉 등 왕릉 5기를 일컬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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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의 순창원과 영조 후궁인 영빈 이씨의 수경원도 서오릉 경내에 있다.

숙종의 후궁인 장희빈의 대빈묘도 1969년 이곳으로 이장됐다.

창릉지구는 세계문화유산인 서오릉과 가까워 경관을 훼손할 수 있는 만큼 신도시 지정이 철회돼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일산연합회를 결성해 창릉신도시 지정이 철회되지 않으면 주민세 납부거부 투쟁과 함께 고양시장 주민소환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도시 대신에 역사문화유적을 중심으로 한 친환경 생태도시를 건설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생활 속에서 되살려야 한다는 제언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창릉신도시 지정을 즉각 철회해달라는 청원 글이 올랐다.

청원인은 "서오릉과 맞닿은 창릉지구 신도시 지정 중단을 유네스코도 권고하는 만큼 정부는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토부는 3기 신도시를 계획하면서 문화재청과 아무런 협의를 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개발 사업을 추진한 만큼 명백한 직무유기라는 지적도 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서오릉과 가까운 창릉지구를 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우리나라처럼 문화재를 경시하는 국가는 없을 것이라고 비판하는 글도 올라와 있다.

일부 지역은 서오릉 반경 500m 구간에 포함돼 개발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정 높이 이상의 건축물을 조성하려면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반경 500m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지정해 건축물 높이가 20m를 초과하면 심의를 받도록 한다.

그런데도 김포 장릉 인근 신도시는 고도 제한 심의를 받지 않아 신축 아파트 23개 동 중 절반가량인 12개 동의 공사가 중단됐다.
'12월 청약' 창릉신도시 곳곳에 암초…입주 일정 난항 예고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9월 인천시 검단신도시에서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들이 공사 중지 명령 집행을 정지해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 3건 가운데 2건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와 관련해 담당 지자체가 정확한 유권해석을 내려주지 않으면 이러한 사태는 언제든지 재발할 여지가 크다.

왕릉이 훼손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유네스코는 지난 7월 영국의 도시 리버풀이 주변 지역 개발로, 가치를 상실했다는 이유로 등재 취소를 결정했다.

김교철 고양시 신도시팀장은 "토지 보상과 기피 시설 설립 등과 관련해 주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LH가 주민들과 다양한 협의를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