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이촌동 노들섬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부겸 국무총리, 문재인 대통령,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이촌동 노들섬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부겸 국무총리, 문재인 대통령,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제공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지난 18일 의결한 두 가지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맞추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량 관련 숫자를 억지로 끼워맞춘 정황이 드러났다.

탄소중립위가 최종 의결한 시나리오는 A안과 B안으로 나뉜다. 두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지금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데 쓰일 친환경 기술이 보다 빨리 개발됐을 경우를 가정한 시나리오는 A안이다. B안도 발전·산업·수송 등 부문에서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80~92% 가량 감축해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지만 A안보다는 상대적으로 그나마 산업계의 부담이 적다고 평가받는다. A안은 2018년 대비 전력 부문에서 100%, 수송 분야에서 97.1%의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목표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A안보다 B안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높은 분야가 있다.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부문이다. CCUS는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배출되기 전에 미리 포집해 땅·해저에 묻거나 산업 원료로 쓰는 기술로, 아직은 상용화 가능 여부가 불투명한 실험 단계의 기술이다. 탄소중립위는 이 CCUS 기술이 2050년까지는 개발이 완료될 것으로 보고 2050년 CCUS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A안에서 5510만t, B안에서 8460만으로 제시했다. 전반적인 친환경 기술 발전 속도가 느릴 것이란 가정 아래 만들어진 시나리오 B안이 A안보다 CCUS를 통한 저감 목표는 더 높게 설정된 것이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 발표자료 캡처.
2050 탄소중립위원회 발표자료 캡처.
이 같은 모순이 발생한 이유는 B안이 A안보다 기술발전 속도가 늦더라도 정부 입장에선 B안도 A안과 똑같이 온실가스 순배출량이 0인 '넷제로' 상태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위 관계자는 "A안과 B안 모두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맞추기 위해서 B안의 CCUS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량을 더 높게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A안의 목표를 B안 이상으로 높인다면 A안의 탄소중립 목표가 2040년 등 지나치게 일찍 달성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탄소중립위는 넷제로를 맞추기 위한 이 같은 숫자 조정이 국민을 속이기 위한 부당한 '조작'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2050년께 CCUS 기술은 이미 개발이 완성될 예정이기 때문에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탄소중립위 관계자는 "CCUS 기술이 상용화된다 하더라도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대규모로 묻을 공간을 구해야 하는 등 현실적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다른 친환경 기술이 충분히 발전했을 A안에선 기왕이면 CCUS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량을 낮게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에너지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CCUS를 비롯한 친환경 기술의 발전 속도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웠다고 입을 모았다. 30년 뒤 CCUS가 실제로 개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비판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CCUS 기술은 경제성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아직 실제로 쓰기까지 극복해야 할 기술적 난제들이 많다"며 "탄소중립위가 시나리오를 지나치게 급하게 만들어내면서 기술에 대한 치밀한 검증을 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