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놓은 온실가스 감축 방안에 대해 산업계와 학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직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어 언제 상용화될지 알 수 없는 기술을 대거 활용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이상 줄이고, 2050년엔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것은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장밋빛 전망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지난 18일 의결한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을 보면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주요 수단으로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쓰기로 했다. CCUS는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배출되기 전에 미리 포집해 땅·해저에 묻거나 산업 원료로 쓰는 기술이다. 정부는 이 기술을 활용해 2030년 1030만t, 2050년 5510만t 이상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CCUS 기술이 아직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어 당장 8년 뒤인 2030년까지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수단이 될 수 있을지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는 “CCUS는 아직 해외에서 파일럿 프로젝트(예비 실험 단계)를 조금 진행한 수준의 기술”이라며 “경제성은커녕 기술적 수준도 가늠할 수 없는 수단으로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철강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정부가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제시한 것도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탄이 아니라 수소로 철강을 생산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포스코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포스코마저 기술 개발 목표 시점이 2040년이다. 설령 성공적으로 기술을 개발한다고 해도 기존 고로 9기를 수소환원제철 기술로 바꾸는 데 40조원이 들 것으로 포스코는 추산하고 있다. 3기의 고로를 보유한 현대제철까지 합치면 총 68조원가량이 소요될 전망이다.

기술 현실 눈감은 탄소중립 '과속'

정부는 철강 분야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핵심 기술로 수소환원제철공법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공법은 아직까지 연구 단계에 그치고 있다. 포스코는 2000년대 초반 독자 개발한 파이넥스 기술을 통해 수소 환원 비중을 25%까지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마저도 기술 상용화에 20년 가까이 걸렸다. 수소 비중을 100%로 늘리고 생산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2040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 철강업계의 얘기다.

정부가 지난 18일 내놓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엔 이처럼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기술이 미래에 상용화할 것이란 가정 아래 제시된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석탄화력 발전 대신 늘릴 암모니아 발전, 무탄소 가스터빈 발전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목표가 “기술 발전 속도에 대한 치밀한 검증 없이 마련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철강 빅2, 수소환원제철 68兆 드는데…'넷제로 비용' 계산도 안했나
상용화 불투명한 실험기술에 의존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발전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2050년까지 석탄화력 발전을 전면 중단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율도 최대 5% 이하로 낮출 것을 제안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대안으로 탄소중립위가 제시한 대책 중 하나가 암모니아 발전이다. 탄소중립위는 암모니아 발전이 2030년까지 국내 전체 발전량의 3.6%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암모니아 발전은 아직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암모니아는 수소보다 수송과 저장이 쉽지만 유독성 물질이고 부식성이 강하다는 것이 한계다. 암모니아 발전에 가장 적극적인 일본도 아직 발전 기술을 개발해내지 못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한국원자력학회장)는 “암모니아 발전에 제일 투자를 많이 한 일본마저 실험실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2030년까지 8년 안에 한국이 기술개발을 완료해 부지 선정·건설 인허가 과정을 거쳐 대규모 암모니아 발전을 한다는 계획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엔 암모니아와 함께 수소 등 무탄소 전원으로 가스터빈을 돌려 발전하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하지만 수소를 연소하는 방식의 무탄소 가스터빈 발전 역시 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먼저 갖춰져야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선 100% 수소만으로 가스터빈을 돌리지 못한 채 LNG와 수소를 같이 태워 에너지를 생산하는 ‘수소혼소’ 방식의 가스터빈 발전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간 발전업계 관계자는 “기존 LNG 중심의 가스터빈 발전 설비를 수소 중심으로 바꾸려면 대규모 비용이 발생한다”며 “수소혼소발전 업체에 대규모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으면 무탄소 가스터빈으로의 전환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대체재 고려 않는 대책도

정부가 향후 친환경 기술이 발전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에 의존한 나머지 반도체 등 산업계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에너지 효율화와 함께 ‘불소계 온실가스’를 저감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78% 줄일 것이란 전망이 대표적이다.

불소와 수소가 결합한 형태의 불화수소는 온실가스를 유발하지만 반도체 식각 및 세척 공정에 필수적인 물질로 꼽힌다. 정부는 이 불화수소 사용을 줄이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반도체 제조 공정에 불화수소를 대체할 물질이 없는 상황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대체재가 없는 상황에서 불화수소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정부가 못 박아버리면 어떡하느냐”며 “불화수소 사용을 제한하면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의 국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기술을 내놓지 못한 정부는 국민의 생활습관 변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킥보드 타기’ ‘자전거 타기’가 운송 부문에서 주요한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제시된 점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일회용품 사용도 대폭 줄여야 한다고 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민이 힘을 모아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주헌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온실가스를 1%만 줄이려 해도 커다란 변화가 생기는데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구체적 분석과 비용추계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졌다”고 비판했다.

정의진/강경민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