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독일의 베르크하임 화석연료발전소의 굴뚝에서 매연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일의 베르크하임 화석연료발전소의 굴뚝에서 매연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유럽 지역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고 있다. ICE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유럽 내 천연가스 가격은 9월 말 기준 연초 대비 322.5% 상승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천연가스 가격은 5배나 올랐다. 이는 천연가스가 최근 이상기온으로 차질을 빚고 있는 풍력발전의 대체재로 각광받은 데다 친환경 정책에 따른 수요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천연가스와 함께 석탄 가격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친환경 정책으로 석탄 생산량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였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발전용 석탄 수요가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가격 폭등을 ‘그린플레이션’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이상기온이 부른 도미노 현상

그린플레이션이란 그린(gree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전기차나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경제 구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친환경과 관련한 원자재의 비용 상승을 발생시켜 경제 전반의 물가 오름세를 이끌어내는 현상을 의미한다.

다만 최근 천연가스·석탄 가격의 급등은 친환경 정책으로 인한 과도적 인플레이션의 연장선상이기도 하지만, 풍력에너지의 조달 어려움이 원인이 되는 등 기상에 민감한 신재생에너지의 태생적 한계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진종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전력을 저장하는 배터리 기술 등의 발전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신재생에너지 시대의 물가 변동성 확대 및 그린플레이션은 고질적 문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올해 무더위로 전력 발생의 16%를 차지하는 북해 풍력발전량이 크게 줄었고, 천연가스 수요의 35%를 공급하는 러시아 국영기업이 공급량을 동결하며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또 지난 7월에 발표한 ‘핏 포 55(Fit for 55)’에서 천연가스 세율을 전통 화석연료와 신재생에너지 사이로 책정하며 대체 수요 기대감이 높아졌다.

친환경의 역습? 그린플레이션


천연가스 가격 급등으로 수익성 압박을 받은 전력발전업체는 그나마 저렴한 석탄발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24년까지 자국 내 석탄발전 시설을 전면 폐쇄한다던 영국은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으며 유휴 석탄발전 시설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석탄발전은 천연가스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훨씬 높아 탄소배출권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발전사들은 부랴부랴 전기요금을 인상해 유럽의 전력 판매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상태다.

미국에서도 가격이 급등한 천연가스의 대체재로 석탄 사용량이 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미국 내 석탄 사용량이 5억3700만 톤으로 지난해보다 23% 이상 급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석탄 사용량이 늘어난 것은 2013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여기에 유가도 지난 10월 14일 기준 미국 뉴욕거래소에서 11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다.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는 수요가 증가함에도 공급을 늘리지 않아 원유 가격 폭등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리튬·구리·알루미늄도 상승세

이와 함께 그린인플레이션의 전형적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친환경 산업구조로의 전환 과정에서 전기차 배터리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리튬, 전기차와 태양광·풍력발전에 필요한 구리, 알루미늄 등의 광물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전 세계 구리 공급의 40%가 칠레와 페루 광산에서 나오는데, 환경파괴 우려로 지역사회에서 환경 규칙을 강화해 공급이 늘지 않고 있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기존 전력발전 시설보다 6배 더 많은 구리를 필요로 하면서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고, 태양광발전과 전기차에 필요한 알루미늄의 60%를 공급하는 중국도 최근 탄소중립 캠페인의 일환으로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지난해 초 저점 이후 구리 가격은 100% 이상 올랐으며, 알루미늄 가격은 75% 올랐다. 철강 역시 중국 정부가 탄소중립을 의식해 생산량을 줄이면서 지난해 9월 대비 4배 올랐다.

지난해부터 전 세계가 본격 탄소중립의 길에 진입한 만큼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린플레이션과 관련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진종현 연구원은 “인프라 구축이 수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화석연료를 배척하고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만을 강조한다면 문제는 더욱 커질 수 있어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안영택 KB증권 연구원은 “화석연료 수요가 급증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에서 원전을 통한 에너지 자립의 필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의 역습? 그린플레이션
[인터뷰]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전환정책연구본부장

“화석연료, 당분간 가교 역할…큰 흐름은 탄소중립”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전환정책연구본부장은 에경원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에너지 수요 관리, 국제협력과 관련해서도 연구 경험이 풍부하다.

-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유럽발 그린플레이션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그 원인은.

“근본적으로 보면 시장의 수급 불균형, 즉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는데, 사람의 이동과 공장 가동이 줄면서 전력 수요나 화석연료, 비철금속(광산 및 제련소) 등의 수요가 줄었다가 최근 전력 수요가 증가하며 공급이 부족해졌다. 특히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계절이나 기후에 따른 변동성이 심하기에 이를 안정적으로 대체하기 위한 석탄이나 천연가스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현재로서는 공급을 금방 올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그린플레이션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재생에너지는 전기 생산 과정에서 변동성은 크지만 발전 단가는 하향 안정화 추세고, 기존 전력을 대체하기 전까지는 화석연료가 버텨주는 쪽으로 당분간 가교(브리지)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천연가스나 석탄은 비중이 계속 조금씩 늘어나며 화석연료 가격의 변동성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재생에너지의 공급 안정성을 위해서는 전기 저장장치(ESS)가 얼마나 빨리 개발되느냐, 시장성을 언제 확보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기업이 투자를 통한 기술개발과 경쟁력 확보를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정으로 보인다.”

- 그린플레이션의 중장기 전망과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길에 미칠 영향은.

“겨울철에 난방 수요가 더 늘어나는데, OPEC이나 미국 셰일가스 쪽에서 공급량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봄이 지나면 천연가스·석탄 가격이 계속 올라가지는 않고 다소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거대한 흐름은 탄소중립으로 가고 있어 석탄 등에 금융투자가 안 되고 있고, 화석발전에 신규 설비를 짓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 유럽에서의 그린플레이션이 한국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유럽 인플레이션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현재 화석연료 비축 물량이 아직 충분하고 전기요금도 소비자 보호장치가 있어 수급 문제가 전력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외국의 경우 도매 가격이 시장에 바로 반영되는 구조라 더욱 문제시된 측면이 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