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만호 EY한영회계법인 경영자문위원회 회장이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기업인이 미래경영을 위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윤만호 EY한영회계법인 경영자문위원회 회장이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기업인이 미래경영을 위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윤만호 EY한영회계법인 경영자문위원회 회장은 ‘기업인의 멘토’로 불린다. ‘새 영역에 투자하자니 성공할지 모르겠고, 안 하면 도태될 것 같아 고민’하는 오너와 전문경영인들이 그에게 혜안을 구한다.

윤 회장은 15일 ‘경영의 미래’를 묻는 한국경제신문의 창간기획 화두에 “리더는 무슨 수를 쓰든 빅픽처(미래를 향한 큰 그림)를 그릴 수 있어야 하고, 실행은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 수준으로 단호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시대의 키워드로 양극화를 꼽았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가 벌어지고,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혁신 기업과 전통 기업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만 해도 언론이 띄운 트렌드로 생각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기업 경영철학의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더에겐 빅픽처 필수…혁신, 리모델링 아닌 '새로 짓는' 수준돼야
▷경영 리더들은 주로 어떤 고민을 털어놓나요.

“정말 답답해들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딜레마에 빠져 있어요. 혁신하려는 분들은 너무 재고, 하겠다고 덤비는 분들은 비전이 부족해요. 두 가지가 합쳐져야 하는데 무엇보다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지?’에 대한 방향성을 정확히 잡아야 합니다.”

▷누구나 변화를 얘기합니다.

“다섯 가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환경 등 ESG가 첫 번째예요. 재무구조가 굉장히 좋고 물건은 잘 파는데 제3국에서 폐수를 흘려보내는 패션기업이 지속 가능할까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은 금방 탄로납니다. MZ세대에 대한 정의가 여러 가지인데 ESG를 감시하는 세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겁니다.”

▷나머지 네 가지는 무엇입니까.

“‘뉴(new)테크놀로지 전쟁’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기술을 갖거나, 없다면 그런 기술을 갖고 있는 플랫폼에 올라타야 합니다. 그리고 데이터 기반 경영, 모든 중간자가 사라지는 초연결, 비대면 사회가 낳은 홈 이코노미(home economy) 등이 위드 코로나 시대의 대표적인 변화된 환경입니다.”

▷기업은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합니까.

“현재가치 중심에서 미래가치 중심의 회사로 바꿔야 합니다. 달라지는 세상에 맞지 않는 사업은 빨리 접고, 신기술이나 신사업을 붙여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겁니다. 골드만삭스가 좋은 사례예요. 2008년 이전만 해도 직원 대부분이 금융인이었는데 현재는 60~70%가 정보기술(IT) 전문가들입니다. 우리나라 은행은 한 해에 수조원의 이익을 내지만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5도 안돼요. 미래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방향을 안다고 모두 실행에 옮기는 것은 아닐 텐데요.

“리모델링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아예 건물을 새로 짓는 정도의 혁신을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톱 매니지먼트(최고경영진)’의 전략 기능을 강화하는 겁니다. 4대 그룹 정도를 제외하면 전략이 오너의 머릿속에만 있어요. SK그룹만 해도 전략 담당자들이 다른 그룹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예전엔 ‘옥상옥’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지는 세상과 미래 가치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는 이들이 중요해졌습니다.”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MBK파트너스 같은 대형 사모펀드가 직원 몇 명이서 몇 조원 규모의 기업을 사고팔아요. 법무·회계법인, 컨설팅 회사 등 외부 전문가를 고용해서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하기 때문에 적은 인원으로도 ‘빅픽처’를 실행하는 겁니다. 기존 조직의 비효율을 없애려면 새로운 전문가 집단을 최고경영진 직속으로 둬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리더가 끈질기게 조직의 컨센서스(집단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고요.”

▷외부 전문가는 어떻게 활용해야 합니까.

“조직 내 회사를 만드는 방식이 효과적일 겁니다. CVC(코퍼릿벤처캐피털)라고 하는 형태입니다. 아니면 사모펀드 같은 투자 조직을 만들어도 좋습니다. 핵심은 독립적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을 만들라는 거예요. 카카오가 수많은 계열사를 독립시킨 것이 비슷한 방식입니다. 카카오뱅크만 해도 ‘극강의 편리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차별화된 행동 전략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겁니다.”

▷카카오가 최근 비판도 많이 받고 있는데요.

“카카오 같은 기업들이 놓친 건 ESG에서 ‘G(지배구조)’입니다. 택시, 미용실 등 수많은 자영업자와 부딪칠 수밖에 없는 영역에 들어갔으면 상생을 애초부터 생각했어야 합니다. 지역 사회(local society)도 G에 포함돼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리더가 미래에 대한 통찰이 있으면 최상이겠죠. 이건희 삼성 회장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기업의 오너는 누구보다 돈의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투자에 따른 실패를 가장 걱정하는 이가 오너입니다. 그럼에도 오너가 결정해야 변화와 혁신을 빨리 추진할 수 있습니다. 이때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중요한데 전문경영인은 오너가 움직이도록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공공 부문의 혁신은 가능할까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인사가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어떤 공조직이든 사장, 감사, 사외이사 모두 정치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면 일이 산으로 갑니다. 전문가 집단을 쓸 수가 없어요.”

▷마지막으로 기업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코로나19는 길어지고, 그 와중에 혁신은 가속화될 것이며, 경기회복 후엔 엄청난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점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자본소득가와 노동소득자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계층 갈등도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기업이 인류 복지를 위한 경영으로 이 같은 양극화 해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동휘/이해인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