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로 변질된 '알펜시아' 매각, 핵심 쟁점은? [딜리뷰]
"1조원짜리를 7115억원에 팔았으면 '헐값 매각' 아니냐." vs. "1조라는 자산가치 평가 자체가 잘못됐다."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정치적으로 혜택을 보려고 팔아버린 것 아니냐." vs. "애당초 매각을 추진한 건 지금의 야당이 여당일 때 시작된 것이고 수차례 매각에 실패하다 겨우 성사된 것이다."
"두 군데가 같은 계열사인데 어떻게 꼼수입찰, 담합이 아닐 수 있냐." vs. "온비드라는 입찰 시스템은 개찰할 때까지 누가 응찰했는지 알 수 없고 대표이사가 다를 경우 같은 회사로 볼 수 없다는 유권해석도 받았다."

이미 계약을 맺고 다 끝난 줄 알았던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매각을 놓고 정치권이 시끄럽습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나서서 강원도개발공사와 KH강원개발주식회사 간의 계약 성사를 발표한 것을 두고 "정치적 쇼다", "헐값 매각이다", "가격 담합이다" 등의 주장을 쏟아내고 있는 건데요, 해당 계약을 진행한 강원도개발공사측은 "입찰엔 아무 문제 없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논란이 일자 진짜 담합이 있었는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주 딜 리뷰에서는 알펜시아리조트 매각을 다시 한 번 깊이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알펜시아 몸값, 7115억원이 싼가 적정한가

일단 가격부터 짚어보겠습니다. "1조원짜리를 7115억원에 팔았으면 헐값 매각이다."라는 게 일부 정치권의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만약 1조원에 사겠다는 곳이 있었으면 '헐값매각'이나 '특정 기업에 주는 혜택'이라는 게 맞는 지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알펜시아리조트는 팔리질 않아 공개매각만 다섯 차례, 수의계약만 두 차례를 거친 끝에 매각 계약을 맺은 사례입니다. 그 과정에서 가격이 어떻게 조정된 건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 알펜시아리조트 매각을 시도했던 1차 공개매각 당시 매각 희망가는 1조원가량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1, 2차 공개매각 당시 매수 희망자는 있었지만 본입찰에 응찰하지 않았죠. 당시 원매자들은 대략 5000억~6000억원대를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일부 원매자는 2000억원대를 적어낸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었던 셈이죠.

가격을 처음 조정한 건 3차 공개매각 때입니다. 원래 강원도 재산관리 매각규정에는 두 차례에 걸쳐 매각이 안 될 경우 3차부터는 10%씩 인하해 최저 80%까지 인하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3차엔 10% 인하했고 이때도 매각이 성사되지 않아 4차 공개매각 때 80%인 약 8000억원대까지 가격이 내려간 겁니다. 4차 때도 시장 반응이 없자 수의계약으로 돌렸고 당시 원매자가 6000억원대에 사겠다고 하면서 또 딜이 깨졌고, 2차 수의계약도 성사되지 않았죠.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던 강원도개발공사(강개공)가 재산관리 매각규정 개정을 추진한 겁니다. 애당초 다른 지방에서 50%까지 가격을 인하해 매각을 시도한 사례를 찾았고, 감사원, 행정안전부, 강원도 회계과, 법률법인 등에 질의한 결과 이사회를 통해 개정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절차를 진행한 강개공 담당자는 "지방 공기업에 딱 맞는 법이 없어 여러 곳에 문의한 뒤 재산관리규정을 변경한 것"이라며 "처음엔 최저 50%까지 할인할 수 있도록 이사회에 제안했지만 너무 낮다는 토론 끝에 70%로 결정됐다"고 했습니다. 가격이 80%에서 70%로 변경됐기 때문에 새 입찰에 부쳐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5차 공개입찰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즉, 최저 7000억원이라는 가격 조건만 만족하면 누구나 알펜시아리조트를 살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겁니다.
정치이슈로 변질된 '알펜시아' 매각, 핵심 쟁점은? [딜리뷰]
한쪽에선 "알펜시아리조트 총 사업비가 1조6000억원이 들어갔는데 그걸 7115억원에 팔았으면 헐값 매각"이라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인데요, 이에 대해서 강개공측은 "A지구의 빌라 분양권 4900억원은 회수를 했고, 부채로 자산에 포함되는 골프 및 콘도 회원권 2600억원, 올림픽 관련시설 500억원, 10년 동안 감가상각된 가치 1500억원 등을 고려하면 실제 매각한 자산가치는 8000억원 수준"이라며 "매각 자산과 비매각 자산, 감가상각 등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공방"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세금 먹는 하마'로 10년 동안 골칫거리였던 알펜시아리조트. 아이러니한 것은 2011년 당시 행안부로부터 알펜시아리조트 매각 명령을 받았을 당시 여당이 지금 이 매각을 비판하는 야당이 됐다는 점입니다. 한 M&A업계 관계자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라면 진즉에 팔렸을 테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10년이 흐른 것 아니겠냐"며 "최근 정치권에서 부동산 관련 이슈가 부각되자 알펜시아까지 괜히 시비를 거는 정치적 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관건은 '담합'이나 '불공정거래'가 있었는가

결국 핵심 쟁점은 이번 5차 공개입찰 성사 과정에서 '담합' 같은 불공정거래가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현장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조사의 핵심은 두 곳의 응찰자가 사전에 가격 담합을 했는지입니다. 또 한 가지는 입찰 과정에서 강개공과 입찰자간에 가격 공유 같은 불공정거래가 있었는지입니다.

알펜시아리조트를 낙찰받은 KH강원개발은 KH그룹이 입찰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인데요, 또 다른 응찰자도 KH그룹의 자회사로 알려져있습니다. 두 곳 이상이 응찰해야 입찰이 성립된다는 사실 때문에 KH그룹이 사전에 가격을 담합한 뒤 적정가격에 KH강원개발이 낙찰받도록 조율을 했는지가 이번 조사의 핵심이 되는 셈이죠. 만약 사전 협의를 통해 한 곳이 '들러리'를 선 것이라면 담합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원래 한 곳만 입찰하려다 유찰을 막기 위해 다른 자회사를 끌어들인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가격을 조율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이에 대해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강원경찰청은 형법상 입찰방해 혐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사 과정은 몇 개월이 걸릴지, 1년이 넘을지 알 수 없는 상황. 이에 대해 강개공측은 "온비드라는 정부재산정보 입찰시스템의 특성상 우리는 개찰 전까지 몇 곳이, 누가 입찰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며 "두 곳 이상 입찰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항을 만족시켰고 같은 계열사면 안된다는 규정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그래도 혹시 문제가 될까 우려돼 KH그룹 계열사 두 곳이 응찰한 뒤 법무법인에 유권해석을 맡긴 결과 대표이사가 다를 경우 같은 회사로 볼 수 없다는 답도 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중요한 건 이미 매각계약을 맺은 알펜시아리조트의 자산양수도 이전은 내년 2월 18일에 완료가 될 예정이라는 점입니다. 2월18일에 잔금 입금이 완료되면 딜이 클로징되죠.
지난 6월24일 최문순 강원도지사(왼쪽부터)와 한우근 KH강원개발 대표, 이만희 강원도개발공사 사장이 알펜시아리조트의 자산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 /출처=한경DB
지난 6월24일 최문순 강원도지사(왼쪽부터)와 한우근 KH강원개발 대표, 이만희 강원도개발공사 사장이 알펜시아리조트의 자산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 /출처=한경DB
이제 세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공정위 조사 등이 부담스럽고 알펜시아 운영에 대해 자신이 없어서 KH그룹이 잔금을 입금하지 않아 딜이 깨질 경우, 둘째, 공정위 조사가 길어지면서 2월18일까지 아무 이변 없이 KH그룹이 잔금을 넣고 자산양수도 이전을 마무리할 경우, 셋째, 공정위가 이례적으로 조사를 빠르게 진행해 2월18일 이전에 '담합' 여부에 대해 발표할 경우.

첫 번째는 일단 가능성이 희박해보입니다. 만약 KH그룹이 잔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계약금으로 넣었던 700억원이라는 돈을 그대로 몰취당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KH그룹은 현재 알펜시아리조트 내 부지 개발과 관련 인허가 취득 등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상식적으로 KH그룹이 계약을 파기시킬 가능성은 적어보입니다. (물론 미래 일은 아무도 모르지만요.)

두 번째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데요, 예정대로 자산이 이전될 경우 즉, 매각이 잘 완료될 경우엔 그 이후 공정위의 발표 내용에 따라 매우 다른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공정위가 담합이 아니었다고 발표하면 아무 문제 없을 테고, 조금이라도 불공정 거래가 있었다고 판단할 경우엔 관련 처벌이 내려지겠죠. 이미 자산은 넘어간 뒤이기 때문에 매각 자체를 없던 일로 할 순 없는 거고요. 그리고 세 번째는 공정위의 그간 조사 전례를 봤을 때 가능성이 그닥 높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쩌다가 알펜시아리조트 매각이 정치 이슈로 변질됐는지에 대해 M&A업계에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M&A 전문가는 "여럿이 탐냈던 딜도 아니고 10년간 안 팔려서 골칫덩어리였던 자산양수도 이전거래에 대해 갑자기 태클을 거는 건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슈를 선점하려는 정치인들이 자본시장에까지 손을 뻗는 형국"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전혀 다른 기업 서너 곳이 응찰해서 한 곳이 낙찰받았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텐데 하필이면 부동산에 문어발식으로 발을 뻗치고 있는 KH그룹의 계열사 두 곳만 응찰해서 이런 의혹이 생긴 것"이라며 "자금력이 풍족하진 않지만 KH그룹이 그랜드하얏트호텔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딜을 잘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암튼, 과연 이 딜은 어떻게 결론이 날지, 공정위는 어떤 결론을 내릴지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