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LC500 컨버터블.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렉서스 LC500 컨버터블.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많이 팔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내놓는 차량들이 있다. 시장 수요는 제한적이지만, 기술력을 과시하거나 브랜드 격을 높이는 데 쓰이는 오픈카가 대표적이다. 플래그십 모델이라 가격까지 비싸다면 브랜드의 자존심을 세우는 게 최우선 목표가 된다.

이번에 만나본 렉서스의 LC500 컨버터블도 이런 케이스에 속한다. LC500 컨버터블은 렉서스의 플래그십 스포츠 쿠페 LC500의 오픈카 버전이다. 렉서스코리아 한국 진출 20주년을 맞아 '특별 한정판'으로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수익성만 따지면 출시 않는 게 나은 선택이겠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렉서스의 존재감과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 볼 수 있다.
렉서스 LC500 컨버터블.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렉서스 LC500 컨버터블.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LC500 컨버터블은 언제 어디서나 시선이 쏠릴 정도로 독창적인 외관을 갖췄다. 그럴 수밖에 없다. 통상 자동차 업계는 파격 디자인의 콘셉트카를 선보인 뒤 생산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여러 디자인 요소를 덜어내고 양산 모델을 만든다. 그런데 렉서스는 2019년 로스엔젤레스(LA) 오토쇼에서 선보인 LC500 컨버터블 콘셉트카를 그대로 양산차로 내놨다. 디자이너는 완벽한 디자인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엔지니어들이 불편을 감수하며 디자인을 지켜낸 셈이다.

전면부는 렉서스 특유의 스핀들 그릴이 가운데가 볼록하게 나온 채로 자리잡았고 주간주행등과 전조등, 방향지시등이 거대한 화살표 모양으로 어우러졌다. 낮은 펜더와 뾰족한 주간주행등, 넓은 그릴이 역동적 인상을 만들어낸다. 수직으로 내려오는 방향지시등과 그 옆에서 볼륨감을 더하는 공기흡입구는 우아한 이미지를 부여한다. 측면은 사이드 스커트의 곡선과 흡기구, 거대하게 느껴지는 21인치 휠이 돋보인다.
렉서스 LC500 컨버터블.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렉서스 LC500 컨버터블.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후면은 안쪽으로 깊게 패여 세 방향으로 뻗은 후미등이 LC500 컨버터블의 외관을 날렵하게 마무리한다. 배기구는 다소 심심한 편으로 폭발적 성능을 갖춘 고성능차와는 거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진다는 느낌이다. 소프트톱 루프는 50km/h 이하 속도에서 스위치를 눌러 15초 만에 여닫을 수 있다. 열리고 닫히는 과정에서 내부 금속 부품들이 드러나며 절도있게 움직이고 체결되는 모습이 변신로봇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실내는 스티어링 휠 버튼과 센터페시아 등 일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이 가죽으로 꼼꼼하게 마감됐다. 소프트톱 개폐 버튼은 가죽을 씌운 커버로 재차 마감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열었을 때와 닫았을 때를 비교하니 차이가 확실했다. 시트는 부위별로 구멍 크기를 다르게 하는 천공법으로 재미를 더했다. 뒷좌석도 고급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레그룸이 없을 정도로 공간이 비좁아 앉기는 불가능했다. 가방 따위를 놓는 공간으로 활용할 텐데 굳이 고급스럽게 마감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렉서스 LC500 컨버터블.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렉서스 LC500 컨버터블.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운전석에 앉자 LC500 컨버터블의 '디테일'이 더욱 와 닿았다. 디지털 클러스터는 원형 금속 장식 덕분에 전통적 스포츠카 계기판을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스티어링 휠이며 가죽으로 덮인 모든 곳에 한 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꿰멘 스티치나 손 끝에 닿는 촉감부터 누르고 돌리는 조작감까지 고급스러운 버튼도 운전 만족감을 높여줬다.

시동을 걸고 주행에 나서자 의아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최신 기능인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달려 있었지만, 센터페시아 상단에 위치한 메인 디스플레이가 스마트폰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작았고 터치마저 불가능했다. 목적지 설정을 위해 터치패드에서 손을 바삐 놀리며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고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수납공간이 부족한 탓에 스마트폰을 둘 공간도 마땅치 않았고, 무선 충전기는 물론 USB 포트마저 없었다.
다소 작은 렉서스 LC500 컨버터블의 메인 디스플레이는 터치 기능을 지원하지 않았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다소 작은 렉서스 LC500 컨버터블의 메인 디스플레이는 터치 기능을 지원하지 않았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처음부터 어라운드뷰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전방 카메라도 없을 줄은 몰랐다. 후방 카메라가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화질은 세기말이 떠오르는 수준이다. LC500 컨버터블의 가격은 1억7800만원이다. 가격을 생각하면 너무한 처사였는데, 2021년에도 문서에 인감도장을 찍어 팩스로 보낼 만큼 신기술에 인색한 일본의 특성이 반영된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LC500 컨버터블은 5000cc V8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477마력, 최대 토크 55.1kg·m의 성능을 낸다. 아주 역동적인 성능을 내진 않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운전이 가능하다. 이에 더해 비교적 낮은 2000rpm에서도 매력적 배기음을 들려줬다. 낮은 시트포지션이 주는 승차감은 스포츠카에 걸맞게 단단했지만 잔 진동을 부드럽게 흡수하는 점은 패밀리카를 닮아 있었다.
주행모드에 따라 변하는 LC500 컨버터블 계기반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주행모드에 따라 변하는 LC500 컨버터블 계기반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독창적인 외관과 클래식한 실내, 공격적인 배기음과 말랑한 승차감이 공존해 주행 초반에는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렉서스의 의도가 느껴졌다. 속도와 운전의 재미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스포츠카가 아닌, 세단처럼 편하게 데일리카로 탈 수 있는 스포츠카가 LC500 컨버터블의 지향점 아니었을까.

계기판의 원형 금속 디자인과 실내를 뒤덮은 고급스런 가죽, 작은 저화질 디스플레이, 가방도 편히 둘 수 있는 뒷좌석에 예상외로 부드러운 승차감까지…. LC500 컨버터블은 제로백 0.1초에 목숨을 거는 최첨단 스포츠카가 아닌 아날로그 감성의 럭셔리 스포츠카에 오른 기분을 즐길 수 있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영상=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