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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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로 민심이 들끊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살려달라"는 실수요자들의 글이 30건 가까이 올라와 있고, 글마다 공감 버튼이 수 천개씩 붙어 있습니다. 시중은행들도 "왜 전세금, 중도금 대출이 안되느냐"는 항의성 문의 전화를 받느라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에 나선 것 자체는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심각한 상황이고 오히려 늦은 감이 있습니다. 지난 6월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1806조원. 국내총생산(GDP· 작년 1836조원)에 맞먹는 규모이고 1년전보다 10%(168조원)나 늘었습니다. 주요국중 증가율이 압도적 1위입니다. 버는 것에 비해 빚내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이렇게 늘어난 가계부채중 상당 부분이 부동산과 주식, 암호화폐 시장 등으로 흘러가 자산시장을 과열시키고 있다는게 금융당국의 판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뛰고 있습니다. 0.5%포인트만 뛰어도 이자 부담이 5조8000억원 늘어납니다. 미국도 긴축에 들어갈 채비고, 중국 헝다그룹 사태 등 글로벌 리스크도 적지 않습니다. 여차하면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에 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저금리가 끝나가는데 상환능력을 초과하는 대출을 받아 변동성이 큰 자산에 무리해 투자하는 건 '밀물이 들어오는 데 갯벌로 들어오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정부는 곧 2차 가계부채 관리대책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다 좋습니다. 문제는 방법입니다. 정부는 '총량규제' 방식으로 1·2·3금융권을 동시에 틀어막고 있습니다. 올해 가계대출잔액 증가율을 전년대비 일정수준(은행은 6%)으로 어떻게든 막으라는 식입니다. 그 서슬에 은행이고 카드 보험 저축은행까지 모두 대출창구 문을 닫고 있습니다. 12월쯤이면 은행권은 아예 대출을 전면 중단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꼭 대출을 받아야 할 실수요자들은 돈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입니다. 10년 기다려 분양 아파트 입주를 앞둔 40대 가장은 "우리가 집값을 올렸냐" "어디서 잔금 대출을 받으란 말이냐" "이게 서민을 위한 정부냐"라며 불만을 터트립니다. 청와대 게시판엔 이런 사연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사연들은 하나같이 다급하고 절실합니다. 이 때문에 집권 여당에서도 가계부채 관리 방법을 달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의 대출규제는 다주택자나 투기꾼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더 많은 집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해야는데 지금은 곧 잔금대출을 받고 아파트에 입주해야 할 무주택 서민가구까지 규제하고 있다"며 "무주택 서민들을 돕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밀물때 겁없이 갯벌로 들어가는 일은 위험합니다. 관리자로서 주의를 줘서 사고를 미연에 막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갯벌에 아예 철망을 쳐서는 안됩니다. 조개를 줍는 정도로 놀러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 갯벌 자체가 생의 터전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상황을 봐서 꼭 필요하다면 입장도 시켜야 합니다.당연히 그런 상황을 판단하려면 더 신경쓰이고 손도 많이 가겠지요. 국민들은 금융당국이 그걸 해주길 기대하며 세금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