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관 ‘전통과 현대의 결합’ > 두바이 엑스포를 찾은 관람객들이 지난 1일 한국관에 마련된 공연무대인 ‘마당’에서 한국의 흥과 멋, 풍류를 표현한 퍼포먼스를 관람하고 있다. 두바이=황정환 기자
< 한국관 ‘전통과 현대의 결합’ > 두바이 엑스포를 찾은 관람객들이 지난 1일 한국관에 마련된 공연무대인 ‘마당’에서 한국의 흥과 멋, 풍류를 표현한 퍼포먼스를 관람하고 있다. 두바이=황정환 기자
지난 1일 두바이 도심에서 왕복 20차로 고속도로를 약 30분간 달리자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황금빛 돔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여의도 1.5배 면적인 ‘2020 두바이 엑스포’ 행사장 정중앙에 있는 ‘알 와슬 플라자’였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돔은 마치 ‘사막의 꽃’ 같았다. 체감온도 40도 이상의 폭염 속에서도 각국 전시관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관람객으로 붐볐다. 엑스포가 국가의 최신 기술을 공개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각국의 경제 개발 프로젝트와 국력을 과시하는 격전장으로 변모한 모습이었다.

美·中의 새로운 체제 경쟁

코로나19 여파로 1년 연기된 2020 두바이 엑스포가 지난 1일 공식 개막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남부 제벨알리에 마련된 엑스포 행사장엔 첫날에만 주최측 추산 5만3000여 명이 다녀갔다. ‘마음의 연결, 미래의 창조’를 주제로 열린 이번 엑스포에는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191개국이 참가해 자국의 기술·문화적 역량과 미래 비전을 담은 파빌리온(전시관)을 열었다.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열린 엑스포는 20세기 후반까지 증기기관, 비행기, 플라스틱, 휴대폰 등 당대의 첨단기술이 소개되는 무대였다. 이번 엑스포에서 각국은 자국의 기술적 성취와 비전을 알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무역분쟁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과 중국 전시관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두 나라는 우주 개발, 신재생에너지, 친환경 모빌리티 등 미래기술을 선보이면서도 미국은 ‘자유’, 중국은 ‘통합’을 강조해 대조를 이뤘다.

미국관에 들어서자 ‘자유’와 ‘행복 추구’를 강조한 미국 독립선언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무빙워크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전시관에는 에디슨, 테슬라, 벨 등 근대 발명가부터 스티브 잡스와 민간 기업인 스페이스X가 개발한 우주로켓 팰컨 등 미국의 기술적 성취가 소개됐다.

중국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붉은 원형의 성(城)과 같은 전시관 내부에 들어서자 시진핑 국가주석의 얼굴이 관람객을 맞았다. 중국 기업 유비텍이 개발한 키 1.3m의 중국 최초 휴머노이드 서비스 로봇 유유도 눈에 띄었다. 독자 우주정거장 건설 프로젝트 등 전시 구성 자체는 미국과 비슷했다. 하지만 중국관에선 ‘통합’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국가 주도가 아닌, 민간에 기반한 성취를 소개한 미국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각국 국력 과시장으로 변모

유럽 전통 라이벌인 영국과 독일도 자신들의 색채를 뚜렷이 드러냈다. 영국은 외계 문명에 인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주제로 내세웠다. 특히 고(故) 스티븐 호킹 박사의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전시관 자체를 나팔 모양으로 설계했다. 관람객이 입구에서 작성한 문장을 인공지능(AI)이 집단 메시지로 전환해 인류가 언젠가 만날 외계 문명에 전한다는 콘셉트가 돋보였다.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독일의 전시관은 직선을 중심으로 디자인과 설계가 이뤄졌다. 내부는 친환경에너지, 스마트시티, 생물다양성 등 세 가지 주제의 첨단기술을 전하는 대학 캠퍼스처럼 꾸며졌다.

자국의 문화 콘텐츠를 첨단기술과 융합한 국가의 전시관들도 주목받았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이 만들어낸 ‘빛’이란 소재와 친환경에너지를 결합해 2500㎡에 달하는 거대한 태양광 타일을 예술적 건축물로 승화시킨 프랑스관엔 관람객이 대거 몰렸다. 전시관에서 나눠준 태블릿PC를 통해 증강현실(AR)로 구현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연대별 변천사도 살펴볼 수 있다.

이탈리아관에서 선보인 3D 프린터로 만든 거대한 다비드상.
이탈리아관에서 선보인 3D 프린터로 만든 거대한 다비드상.
이탈리아는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3D) 프린터를 활용해 제작한 5m 크기의 미켈란젤로 ‘다비드상’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피렌체에 있는 원본을 40시간에 걸쳐 정밀하게 디지털로 스캔해 대리석에 난 흠집 하나까지 잡아낸 작품이다. 레한 아사드 2020 두바이 엑스포 프로그램 총괄책임자는 “이번 엑스포는 혁신적인 디지털 및 VR·AR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며 “엑스포 역사상 처음 시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바이 엑스포는 과거 최신 기술을 공개의 장(場)에서 각 국의 경제 개발 프로젝트와 국력을 과시하는 곳으로 변모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현재와 같은 엑스포는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개최된 후 신기술이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첨단 기술 전시회의 역할을 했다. 1851년 런던에선 증기기관이 1876년 필라델피아에선 전화기가 처음으로 소개됐다. 그 외에도 엘리베이터, TV, 비행기, X선, 휴대폰 등 당대의 발명품을 비롯해 나일론, 플라스틱 등 신소재가 엑스포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매체의 발달로 엑스포를 통한 기술 공개의 의미가 과거에 비해 옅어지면서 엑스포의 의미는 개최국의 경제 성장을 알리기 위한 이벤트적 성격이 짙어졌다. 중국은 2010년 상하이 엑스포 개최를 위해 200km에 달하는 5개 도시철도 노선을 신설하고 공장지대였던 황푸강변을 관광지대로 재개발했다. 두바이 역시 2009년 경제 위기에 대한 타개책으로 엑스포 유치에 나서 관련 인프라 구축에만 약 70억달러(8조2000억원) 가량을 투입했다.

과거 제국주의·냉전 시대 펼쳐졌던 체제 경쟁이 되살아나는 것도 엑스포 현장에서 감지됐다. 냉전 시대 개최국을 제외한 최대 파빌리온은 언제나 미국과 소련이 차지했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에선 미국은 아폴로 우주선을, 소련은 소유즈 우주선을 중심으로 전시관을 마련했다. 소련은 레닌 탄생 100주년 기념관을 세워 정치 선전에 활용하기도 했다.

세계 2강인 미국과 중국은 똑같이 우주 개발, 신재생 에너지, 친환경 모빌리티 등 미래 기술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자유'와 '통합'이라는 상반된 접근법을 노출했다. 중국은 입구 초입을 시진핑 국가주석의 행보들로 가득 채워 다른 국가관에선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혁신에 대한 양국의 상반된 비전과 시진핑의 장기 집권으로 이행 중인 중국의 경직적인 모습이 옅보이는 부분이다.

두바이=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