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와 법①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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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시대다. 2000년대 초반 유엔의 주도로 시작된 ESG 논의는 2018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투자 대상 회사의 CEO에게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을 주문하고, 2019년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코카콜라·월트디즈니 등 미국 주요 기업 CEO의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이 이해관계자에게 기여하고 주주들에게 장기적 가치를 제공할 것을 약속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파리협약 등 기후변화와 관련한 국제적 노력이 구체화되고, EU(유럽연합)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ESG 관련 입법을 추진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2년 사이 열풍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ESG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데 ESG 경영, 투자와 관련한 법률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여러 법률을 내용에 따라 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법률로 분류한 후 기업이 이를 준수하는 것을 ESG로 설명하기도 하고, 자선 활동이나 사회봉사를 ESG로 오해하기도 한다. 회사 경영진이나 금융기관이 ESG 경영과 투자를 수행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부담하는지, 나아가 주주의 이익이나 투자자의 수익률을 희생하면서까지 ESG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 허용되는지에 대해서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앞으로 연재를 통해 ESG와 관련한 여러 법률문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주주 이익과 사회 환원 간 충돌

본격적으로 법률문제를 검토하기 전에 간단한 사례를 살펴보자. A사는 품질이 뛰어난 제품을 통해 높은 수준의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는 회사다. 그런데 A사의 CEO는 어느 날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는 대신 지역사회에 환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제품의 판매 가격을 낮추기로 결정했다. A사의 10% 주주인 B는 이러한 결정에 불만을 갖고 A사가 예전처럼 높은 수준의 배당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주주의 이익보다 사회와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중시한 A사 CEO의 결정은 법률적으로 허용되는 것일까? 이러한 결정은 ESG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인가?

놀랍게도 이 사안은 100여 년 전인 1919년 미국에서 실제로 발생했다. 자동차 대량생산의 문을 연 헨리 포드는 포드사 지분 58.5%를 보유하면서 높은 수준의 배당을 실시했다. 그런데 헨리 포드는 입장을 바꿔, 포드사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산업 시스템의 이익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나누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선언한다. 이에 따라 포드사는 근로자들의 임금을 높이고 자동차 판매 가격을 낮추며 배당을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불만을 가진 포드사 주주인 닷지(Dodge) 형제는 포드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을 맡은 미시간주 대법원은 회사는 주주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면서 이사가 주주 이익 외 다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이익을 감소시키거나 배당하지 않을 재량까지 갖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 닷지 형제의 손을 들어주었다.

2021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 법원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우리나라 상법상 주주는 주주총회의 배당 결정이 있는 경우에만 회사에 배당을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헨리 포드가 주주총회에서 배당을 승인하지 않는 이상 닷지 형제가 승소하기는 어렵다. 다만 회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회사를 운영할 의무를 부담하기에, 만일 헨리 포드가 회사의 장·단기적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종업원, 소비자,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추구했다면 배임이 문제될 수 있다.

이처럼 ESG 경영에는 법적인 한계가 있다. 기업들이 ESG 경영을 선언하고 ESG 위원회 등 관련 조직을 확충하기에 앞서 법상 어떠한 형태의 ESG 경영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신중히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기관도 자본시장법상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는지, ESG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펀드와 그렇지 않은 펀드의 운용 의무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한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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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로 인한 법률문제는

ESG와 관련한 법률문제는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ESG 경영과 투자가 기존 회사법 및 금융법에 따라 어떻게 해석되느냐다. 회사의 이사, 자산운용사, 연기금에 적용되는 경영과 자산운용 관련 의무 내용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허용되는 ESG 경영과 투자 범위 역시 다르다. 둘째는 ESG 경영과 투자가 활성화되기 위한 법 제도의 정비 문제다. 투자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ESG 성과를 평가하고 ESG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중요하고 정확한 정보가 시장에 유통되어야 한다. 정부와 거래소가 ESG 공시와 평가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셋째로는 ESG를 위해 기업 지배구조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의 문제다. ESG 경영을 이사회와 주주 중 누가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헤지펀드 등 주주단기주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같은 논점이다. ESG 위원회의 역할이나 컴플라이언스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등장할 다양한 형태의 ESG 분쟁과 관련한 법률문제다. 그린워싱 같은 문제부터 환경 규제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회사 경영진에 대한 투자자의 소송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헨리 포드와 닷지 형제의 뒷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사실 당시 닷지 형제는 새로운 자동차 회사인 닷지사 설립을 추진 중이었다. 헨리 포드가 배당을 중단한 데에는 닷지 형제들이 포드사로부터 배당금을 받아 경쟁업체를 설립하는 것을 방해하는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헨리 포드가 사회 기여를 주장한 것도 순수한 의도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ESG는 경영진의 실적 부진이나 펀드의 수익률 악화, 기타 사익 추구를 위장하는 데 악용될 수도 있다. 이를 방치할 경우 ESG에 대한 시장의 신뢰 하락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환경이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을 오히려 늦추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환경·사회문제의 해결이라는 ESG 논의의 당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ESG와 관련한 다양한 법률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