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충칭의 철강공장에 출고를 앞둔 철강들이 놓여 있다. 사진=REUTERS
중국 충칭의 철강공장에 출고를 앞둔 철강들이 놓여 있다. 사진=REUTERS
철강기업 주가가 8월말부터 반등을 시작해 한동안은 상승세를 이어갈 줄 알았지만, 9월 중순부터 꺾였습니다. 중국 2위 부동산업체 헝다그룹의 파산 우려가 고조된 탓이죠. 중국 내 1300여곳에서 부동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헝다그룹이 무너지면 철강 수요가 크게 줄어들 수 있어섭니다.

헝다 사태로 철강기업 주가가 꺾이기 전에는 어땠을까요? 중국 정부가 내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국 철강업계에 강한 감산을 요구할 수 있다는 기대 덕에 상승세를 타고 있었습니다.

올해 고점을 찍었던 5월11일 이후엔 중국과 호주의 갈등으로 중국 철강업체들이 철광석 사재기에 나섰습니다. 철광석 가격이 급등한 점이 철강기업 주가를 석달여 동안 억눌렀습니다. 5월 이후 철강기업 주가 방향성을 바꾼 이슈들이 이렇습니다. ‘중국’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죠. 실제 철강재 가격의 국제 표준으로 중국 내수 가격이 활용되기도 합니다.

원자재 시장은 실제 수요자와 투기적 거래자가 모두 참여하기에, 아직 금융 분야를 완전히 개방하지 않은 중국에서의 가격이 국제 표준으로 사용되는 건 드문 일입니다. 대부분의 원자재는 뉴욕상업거래소나 런던금속거래소에서 형성된 가격이 국제 표준으로 사용되죠.

중국 ‘빚투’에 전 세계 소재·산업재 기업 휘청

중국이 철강 가격의 표준을 차지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 전 세계 철강업계를 휘청이게 한 ‘사고’를 쳤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로 때문에 지금도 포스코(POSCO)와 현대제철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배 이하로 짓눌려 있죠.
"세계 철강 기준은 중국"…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한경우의 케이스 스터디]
세계적인 철강재 과잉 공급 상태가 바로 중국이 친 사고입니다. 이는 철강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소재·산업재 분야에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간단하지는 않지만 배경을 짚고 넘어가죠.

2000년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게 된 중국은 벌어들인 돈으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섭니다. 이 덕에 2000년대 후반께 중국이 미국과 함께 글로벌 양강(兩强)을 형성한다는 뜻의 ‘G2’라는 단어가 생겼습니다.

특히 2008년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에는 제조업으로 착실하게 돈을 버는 중국이 금융으로 돈놀이나 하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에 올라설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까지 나왔죠.

글로벌 금융위기는 되레 중국의 성장동력에 큰 손상을 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만든 전 세계적 저성장 기조가 중국에 치명적이었던 겁니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수요가 이전처럼 크게 늘지 못했기 때문이죠. 중국은 금융위기 전까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벌어들인 막대한 돈으로 설비투자를 했는데, 수요가 둔화되니 적자를 걱정하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정작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적극적인 설비투자가 일어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풀린 돈(유동성)의 힘이었죠. 경제 위기가 일어나면 각국 중앙은행은 돈을 풉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수요 증가가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돈이 풍부하다고 빚을 내 공격적으로 설비투자에 나선 결과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는 걸 중국 당국이 모를 리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설비투자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공산당 일당독재의 딜레마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경제가 무너지면 정권을 가진 정치세력에 책임을 물어 국민들은 투표로 정권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중국 같은 일당 독재국가에서는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죠. 곪은 부분을 그대로 두면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경제 성장을 유지하지 못하면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졌을 겁니다.

마침 2010~2011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배고픈 시민들이 독재자들을 무너뜨린 ‘자스민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죠. 그러니 중국 공산당은 어떻게든 성장률은 유지해야 했고, 이를 위해 투자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마침 시중에 유동성도 풍부하니 일단 여건은 마련돼 있었던 셈이죠.

문제는 국가적 차원으로 이뤄진 중국 산업계 ‘빚투(빚 내서 투자)’의 대가를 전 세계가 함께 치렀다는 점입니다. 우선 실물 분야에서는 제품 가격을 하락시켰습니다. 중국 내에서 다 소화하지 못하는 제품을 전 세계 시장으로 밀어내면서 가격을 떨어트리는 거죠.

‘좀비기업’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1년간 번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을 뜻합니다. 좀비는 멀쩡한 사람까지 물어 좀비로 만듭니다. 망해야 할 기업에 자금이 공급돼 안 망하니 공급이 줄지 않아 제품 가격이 떨어지고, 결국 멀쩡한 기업도 망가지는 겁니다. 한국의 철강·조선·정유·화학 기업들이 2015~2016년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건 ‘좀비화’된 중국 기업들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과도한 부채를 끌어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헝다그룹 사태는 코스피가 3000선을 위협받는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했듯이 말이죠.

중국 좀비, 조선업 지원, 무역전쟁…삼중고 겪은 철강사

이미 너무 많이 돌아왔으니 이제 한국의 철강 기업들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국 철강업계는 세계적으로도 최상위의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덕에 중국으로 인한 공급과잉이 심각했던 2015~2016년에도 연결 기준으로 적자를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먹고 살 만한 철강업계가 망하기 일보 직전인 조선업계를 위해 희생하라는 요구가 나옵니다. 선박을 만들 때 사용되는 후판(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철판)을 싼 가격에 공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일감 부족으로 지금은 문을 닫은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 전경. /사진=한경DB
일감 부족으로 지금은 문을 닫은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 전경. /사진=한경DB
철강업계와 조선업계는 반기에 한 번씩 후판 공급 가격 협상을 하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철강업계는 매번 협상에서 ‘그 동안 희생했으니 이제는 가격을 올려야겠다’는 취지의 주장을 들고 나왔습니다. 물론 조선업계는 ‘아직 어려우니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맞섰죠. 실제 2016년 조선업 위기가 터진 이후 철강업계는 상당 기간동안 중국산 후판 수입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 조선사에 후판을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철강업계가 막연히 희생한 건 아니었습니다. 철강사들 입장에서도 대규모 수요처인 조선산업이 망가지면 장기적으로 더 손해라는 계산을 했으니까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철강을 공급하면서 조선업계를 도왔겠죠. 실제 조선업이 부활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올해에는 급격하게 후판 공급가격이 인상되면서, 이를 미리 반영한 조선업계가 2분기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철강이 워낙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소재이기에, 무역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단골 제재 대상이 된 점도 철강업계를 힘들게 했습니다. 실제 미국은 툭하면 수입 철강재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하거나 반덤핑·상계 관세를 부과하죠. 중국산 철강재를 겨냥한 조치였지만, 덤으로 한국산 철강재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이에 우리 외교당국은 관세 부과 목록에서 한국산 철강을 제외시킨 걸 성과로 내세우기도 했죠.

특히 글로벌 철강재 공급 과잉이 심각했던 2016년에는 미·중 경제전략대화나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소도 중국 철강산업의 구조조정이 의제 중 하나였습니다. 2017년부터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즉흥적인 무역전쟁에 우리 철강기업 주가가 미중 협상 경과에 출렁거리기도 했죠.
2019년 6월29일 개최된 G20 정상회의가 열린 일본 오사카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당시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양자회담에 앞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2019년 6월29일 개최된 G20 정상회의가 열린 일본 오사카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당시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양자회담에 앞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외교 현장에서까지 전 세계로부터 철강 과잉 공급 문제로 욕을 먹는 건 차치하고, 자국 내 부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중국 정부는 철강 산업을 구조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국 철강업계의 구조조정은 전 세계 철강업계가 반길 일이었지만, 당시 한국 철강업계에는 위기감이 고조됐습니다. 구조조정으로 중국에서 거대한 공룡 철강기업이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철강협회가 최근 발표한 ‘2020 글로벌 100대 철강사’ 자료에 따르면 조강(쇳물) 생산량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철강사는 연간 1억1529만톤(t)을 생산하는 중국의 바오우그룹입니다. 2016년 6월 당시 중국 2위 철강사인 바오산강철과 6위 철강사인 우한강철이 합병된 뒤 중소 철강사들을 흡수하면서 몸집을 불린 회사입니다.

바오우그룹이 커지면서 기존 세계 1위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은 2위로 밀렸고, 중국의 허베이철강과 사강그룹, 일본의 신일본제철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쇳물 생산량 기준 세계 1~5위 중 3개가 중국 기업입니다. 포스코는 쇳물 생산량 기준으로는 세계 6위입니다.

철강업계에도 탄소중립 트렌드…수소환원제철 개발 나서

하지만 세계철강협회가 평가해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목록에서 포스코는 작년까지 11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규모가 중요하지 않은 겁니다. 실제 중국으로 인한 공급 과잉이 한참 문제가 됐던 2016년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판매량을 늘리기보다 고부가 제품으로 수익성을 높이는 게 더 낫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는 현재의 고로(용광로) 규모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탄소중립에 대한 세계적인 요구 때문이죠. 철강 산업은 탄소배출이 많은 대표적인 분야입니다.현재는 철광석과 석탄(강점탄)을 섞어 넣은 뒤 온도를 올려 쇳물을 만드는 방식으로 철강재가 생산됩니다.

이때 석탄의 역할은 온도를 높이기도 하지만, 자연상태 철광석에 포함된 산화철(Fe2O3)에서 산소(O)를 떼어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산화철에서 떨어져 나온 산소(O)는 탄소(C)와 붙어 이산화탄소(CO2)의 형태로 배출되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환원제철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산화철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역할을 탄소 대신 수소(H)에 맡긴다는 거죠. 그럼 이산화탄소 대신 물(H2O)이 배출됩니다.

수소환원제철은 일찍부터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왔던 유럽이 앞서고 있습니다. 이미 스웨덴 사브(SSAB)가 작년 8월부터 파일럿 플랜트(시험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6년 데모 플랜트(상업생산 전 시험설비)를 제작할 계획입니다.

최근 포스코가 사브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2007년 독자적으로 개발한 제철공법 파이넥스를 바탕으로 개발한 ‘하이렉스 공법’으로 유럽의 선발주자들을 따라잡겠다는 겁니다. 파이넥스 공법은 기존 제철 공법의 전처리 과정인 소결·코크스(철광석과 석탄을 뭉쳐 덩어리로 만드는 것)를 생략하는 대신 환원(산화철에 붙은 산소 제거)과 용융(액화)를 분리시켰습니다. 이미 석탄과 함께 수소도 환원제로 사용하고 있죠. 파이넥스 공법에 투입되는 환원제의 수소 비율을 높여 고도화한 게 하이렉스 공법이라고 합니다.
9월 8일 개막한 수소모빌리티 쇼의 포스코그룹 부스 중 수소환원제철로 구현하는 가상 제철소 모형. /사진=한경DB
9월 8일 개막한 수소모빌리티 쇼의 포스코그룹 부스 중 수소환원제철로 구현하는 가상 제철소 모형. /사진=한경DB
다만 하이렉스 공법의 유동환원로 방식은 현재 포스코만 개발하고 있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글로벌 철강사들은 철광석을 가공한 펠렛과 수소를 투입해 철을 뽑아내는 샤프트 환원로 방식의 수소환원제철법을 개발 중입니다.

이에 포스코는 독자 개발 기술인 파이넥스 공법을 공개하고 하이렉스 공법 개발에 동참할 우군을 모을 계획입니다. 우선 오는 6~8일 개최하는 ‘HyIS 2021 국제포럼’에 전 세계 주요 철강사들을 초청했습니다. 아르셀로미탈, 신일본제철, 티센크루프 등 10개 철강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라는군요.

지난 1일 포스코는 1.82% 하락한 32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중국으로 인한 심각한 철강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로 주가가 급락한 2016년 1월21일의 저점 15만6000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오른 수준입니다. 하지만 포스코의 자본을 시가총액으로 나눈 PBR은 0.52배에 불과합니다. 이론상으론 지금 당장 포스코를 청산해 현금화하면 시가총액의 2배 가량의 돈이 나온다는 겁니다. 공급과잉 사태 이후 가장 주가가 높았던 올해 5월 11일의 40만9500원으로 계산해도 PBR이 1배에 미치지 못하죠. 그나마 포스코는 나은 편입니다. 현대제철의 PBR은 0.35배에 불과합니다.

증권업계에서는 오랜 기간 PBR이 1배 이하인 기업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주주환원에 인색한 한국 기업의 문제일 수도, 철강산업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탄소중립에 대한 요구가 보유한 순자산 만큼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철강사들의 위상을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