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도 대표이사도 성직자도 근로자라는데…
지난해 12월 근로자성 여부 판단을 가리는 흥미로운 법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기업에서 전무까지 지내고 퇴직한 사람이 근로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었습니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985년 한 기업에 입사한 A씨는 2010년에 상무로 승진, 2014년에는 전무로 승진한 뒤 2017년 퇴직했습니다. 퇴직과 함께 A씨는 회사로부터 입사 이후부터 2011년까지의 퇴직금을 받았습니다. '임원연봉제 시행 이후 임원에 대해서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임원연봉제 세부 사항에 따른 결과입니다. 하지만 A씨는 실제 퇴직 시점인 2017년까지의 퇴직금을 달라면 소송을 냈고, 법원은 이에 대해 "명칭은 임원이지만 실제로는 근로자였다"는 취지로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당시 회사는 A씨가 근로자가 아닌 임원이므로 고용관계가 아닌 위임관계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의정부지법)은 △대표이사의 지휘·감독 아래 출근부에 서명하거나 휴가 계획서를 제출한 점 △현장에서 업무일지를 결재하긴 했지만 인사권 또는 경영상의 판단을 하지 않았던 점 등을 들어 A씨는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이른바 '별'로 불리는 기업 임원들이 근로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처음은 아니지만 적잖은 화제가 됐던 판결입니다. 주로 대리운전 기사, 보험설계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위주로 근로자성 여부를 다투는 이슈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 파장의 한 줄기라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9개월 후 서울행정법원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 판결도 나왔습니다. 이른바 '월급쟁이 사장'은 사실상 근로자라는 판결이었습니다. 한 패러글라이딩업체 대표인 B씨가 업무 중 추락사고로 인해 사망한 이후 유족들이 유족급여 등을 근로복지공단에 청구했으나 "회사 대표는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에 B씨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B씨가 '전문경영인 근로계약서'를 쓴 점, 회사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유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최근에는 성직자도 근로자라는 판결도 나왔습니다. 20년 넘게 전도사·부목사로 일해온 C씨에게 퇴직금과 미사용 연차휴가 수당을 주지 않은 것은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과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교회 측은 자신의 신앙과 신념에 따라 목회활동을 하는 성직자에 대해 근로자성을 다투는 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 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서울중앙지법)은 목회활동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C씨가 목사의 지휘·감독 아래 근무장소·시간이 정해졌고, 고정급도 받았다는 점에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물론 이번 판결 이전에 목회자나 절에서 일하는 처사·보살도 근로자라는 판결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임원, 대표이사 사장에 이어 성직자까지 근로자라는 판결이 잇따르면서 근로자성을 다투는 송사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