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헝다그룹,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금리 인상, 대출억제. 추석을 전후해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운 이들 이슈는 '빚투의 지속 가능성'을 묻고 있다.
이들은 하나하나 따로 떼어 놓아도 금융시장에 악재인데 동시다발적이어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확대하면서 부동산, 주식, 코인 등 자산 시장에 지속적인 충격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상황은 불안하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를 줄여야 하는데 대출 억제는 쉽지 않고, 주택 시장은 여전히 펄펄 끓고 있다.
◇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자산시장 악재들 최근 국내외 금융시장 흐름과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려는 각국 정부·중앙은행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차입 경영'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의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는 20여 년 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부실 대기업들을 연상케 한다.
350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 헝다는 중국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베일에 가려져 있던 중국 대기업의 부실 문제가 표면화하면서 금융부실을 부각할 수 있는 데다 이 기업이 안고 있는 외화 부채는 국제 금융시장에 도미노 충격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점도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22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가 끝난 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오는 11월부터 테이퍼링에 들어갈 수 있음을 시사했고, 점도표(dot plot)에서는 18명의 연준 위원 중 9명이 내년 기준금리 인상을 전망해 파월 의장이 고수하고 있는 2023년보다 금리 인상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열렸다.
연준의 테이퍼링이나 조기 금리 인상이 국제 금융시장에 지난 2013년 '긴축 발작'과 같은 패닉을 몰고 올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달러 자금 이탈로 신흥시장에 상당한 충격이 될 수 있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는 23일 '상황 점검 회의'에서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데 이어 10월이나 11월에 추가로 0.25%포인트 인상을 예고해 놓고 있다.
가계부채와의 전쟁을 선포한 금융위원회는 부동산 관련 대출을 조여가고 있다.
금융위는 금융권의 가계부채 증가율을 6% 내에서 묶기로 했지만 이미 5%가 뚫렸다.
강력한 대출 억제책이 추가로 나오지 않을 경우 마지노선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위는 늦어도 다음 달 초엔 추가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 부동산·주식·코인, '빚투의 시대' 저무나 국내외 금융시장과 정책 당국의 움직임은 코로나19 이후 극심해진 실물 경제와 자산시장의 괴리, 즉 금융 불균형의 시정을 지향한다.
이는 전대미문의 유동성 홍수 속에서 광풍을 이룬 '빚투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의 헝다 사태나 미국의 테이퍼링, 우리나라의 금리 인상과 강력한 대출 억제는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으로 인한 자산시장과 실물 경제의 불균형 확대를 제어해 금융시장을 정상화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과정은 헝다의 예에서 보듯 고통스럽다.
돈을 푸는 과정에서 빚어진 자산 거품이 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헝다 사태가 촉발한 글로벌 증시의 하락세는 진정됐으나 이는 앞으로 벌어질 국내외 금융시장이나 자산시장 불안의 예고편일 수 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23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글로벌 통화정책 정상화와 그에 따른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국 헝다그룹과 같은 시장 불안과 불확실성이 급격히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의 헝다 사태나 미국의 테이퍼링이 당장 대규모 자금 이탈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점차 금융 불안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정책 대응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글로벌 긴축이 초래할 수 있는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코로나 이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부채가 너무 많이 증가했고 채권을 비롯해 주식, 부동산 가릴 것 없이 자산시장은 모두 거품이 부풀어올랐다"면서 "조만간 큰 충격이 한 번 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는 금리가 좀 올라도 기업실적이 받쳐주고 경기가 좋다는 점을 빌미로 자산시장이 버텼는데 경제지표가 나빠지면 거품이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용택 리서치센터장은 "자산시장이 조정을 받고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면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기 유동성 자금을 확보하고 좀 더 안전한 자산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태윤 교수 역시 "향후 금리 환경이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만큼 부채를 이용한 투자는 주의해야 한다"면서 "이젠 위험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했다.
자국 철강산업에 대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동시에 탄소 배출도 감축하려는 중국 정부의 '모순된 정책'에 반사이익 기대로 상승했던 철강기업 주가가 헝다그룹 파문에 무너졌다.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일 포스코는 4.41% 내린 34만6500원에, 현대제철은 5.34% 빠진 4만8750원에, 동국제강은 4.76% 하락한 1만9000원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세아제강(2.82%), 세아베스틸(5.89%), 세아특수강(3.13%), 대한제강(5.94%) 등도 약세를 보였다.이달 들어 지난 13일까지 포스코 주가는 11.28%, 현대제철은 5.88%, 세아제강은 5.43%, 세아특수강은 7.31%씩 각각 상승했지만 이후 상승세가 꺾였다. 코스피 철강·금속 업종 지수도 이달 들어 지난 13일까지 6.80% 상승한 뒤 전날까지 6.15% 하락해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했다.중국 2위의 부동산기업 헝다그룹이 천문학적 부채를 감당 못하고 파산 위기에 몰린 여파로 풀이된다. 자연히 철강 수요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헝다그룹은 중국 내 280개 도시에서 1300여개의 건설사업을 진행 중이다.실제 헝다그룹 파산 우려에 먼저 반응한 중국에서는 지난주 내수 열연강판 가격이 t당 894달러를 기록해 직전주 대비 1.11% 하락했다고 키움증권은 전했다.이종형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 철강 시장은 8월 조강생산량 감소 발표와 정부의 동절기 감산 초안 발표에 지지됐지만, 헝다그룹 파산 위기에 따른 부동산 시장 우려가 상승폭을 제한했다"고 분석했다.중국은 철강 제품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로, 글로벌 철강 가격의 기준으로 통한다. 중국에서 철강 가격이 하락하면 한국의 철강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달 들어 상승세를 탄 한국 철강사들 주가에 찬물을 끼얹었다.헝다그룹 리스크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중국 정부의 앞뒤가 안 맞는 정책이 국내 철강사들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현재 중국 정부는 자국 내 철강 가격을 억누르면서 공급도 줄이는 정책에 나서고 있다. 자국 내 철강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철강재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철강재에 대한 수출 증치세 환급을 폐지했다. 수출로 나가는 철강재 물량을 내수로 돌려 공급을 늘리려는 조치였다. 중국산 철강재 공급이 줄어들면 중국 이외 지역의 철강재 가격이 오를 것이란 기대에 철강사들의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됐다.중국 정부는 수출입과 관련해서는 자국 내 철강재 공급을 늘리고 있지만, 동시에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자국 철강사들에게 강한 감산 드라이브를 거는 공급 축소 정책을 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해 자국 내 조강(쇳물) 생산량을 작년 수준인 10억6000만t으로 결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부터 회복되는 과정에서 이미 올해 상반기에만 5억6000만t의 조강이 생산됐다. 하반기에는 이보다 생산 규모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다.중국의 철강 감산 드라이브는 지난주부터는 헝다그룹 파문과 맞물려 철강사 주가를 찍어 누르는 역할을 했다. 철광석 가격을 급락시켰기 때문이다. 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국제 철광석 가격은 지난 17일 114.26달러를 기록했다. 7월16일의 219.70달러와 비교하면 두 달여 만에 반토막 났다. 원료인 철광석 가격이 하락하면 국내 철강사들의 철강재 가격 인상 명분이 약화된다.다만 철강재 가격이 당장 급락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또 다른 원재료인 강점탄 가격은 급등했기 때문이다. 호주산 강점탄 가격은 지난 17일 t당 389달러를 기록해 석달 전에 비해 126.2% 상승했다.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이 기사는 09월23일(17:09)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NH투자증권이 달러화 회사채 발행에 나선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세 번째로 달러화 채권을 발행한다.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은 29일 달러화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실시한다. 만기는 5년이며 선순위 고정금리부 채권이다. 미국 기관을 제외한 아시아와 유럽 등 기관을 상대로 발행하는 이른바 유로본드(RegS)다. 발행규모는 수요예측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최근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중국판 '리먼 브라더스' 사태 우려까지 나오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참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헝다 그룹이 중추절 연휴 이후 급한불은 껐음에도 위기설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S&P 글로벌 신용평가는 NH투자증권이 발행하는 미 달러화 선순위 무담보 채권을 ‘A-’ 등급으로 평가했다.한국 증권사 가운데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세 번째로 달러화 한국물 시장에 진출하는 셈이다. 미래에셋은 2018년부터 매년 달러채 시장을 찾고 있고, 한국투자증권도 지난달 처음으로 6억달러 규모 회사채를 해외에서 발행했다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이 기사는 09월23일(12:15)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중국 헝다그룹 파산 위기 관련 구조조정 속도와 정책당국의 통제 능력이 향후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 수준을 결정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구조조정 속도가 지연되고 정부의 통제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대두되면 경제 상황과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국내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는 23일 '중국 헝다그룹 부도 시나리오와 전망'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중국 헝다그룹은 광동성에 본사를 둔 부동산개발사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차입금 규모가 크게 증가하면서 재무건전성이 나빠졌다. 지난해 들어 자산매각과 자회사 상장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주력했지만 차입금 감축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개발 프로젝트 지연이 오히려 유동성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헝다그룹의 은행 대출과 자산관리상품(WMP)을 합친 은행 관련 차입금 규모는 중국 전체 은행 대출의 0.29%다. 은행 총자산의 0.15%, 자기자본의 1.81%다.나이스신용평가는 헝다그룹 파산 위기 관련 실현 가능한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는 핑안보험, 화룽자산관리의 구조조정 방식이다. 경영진과 책임자 처벌, 실질적인 채권자 손실 보전, 정부의 직접 관리 등이 핵심이다. 사실상 정부 지원과 적극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주로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 핵심적인 은행 등 금융사에 적용돼 왔다.나이스신용평가는 이런 방식이 적용될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규모와 중요성 측면에서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에서다.둘째는 하이난그룹의 구조조정 방식이다. 경영진과 책임자 처벌, 만기 연장과 채권자 일부 손실, 핵심 사업 지속으로 요약된다. 2018년부터 시작된 하이난그룹의 구조조정은 항공 부문 등 핵심 사업만 남기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채권자들의 손실이 발생했지만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나이스신용평가는 "중국 정부가 금융시장에서 채권 투자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처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며 "헝다그룹 전체를 살리기 보다 부동 이후 관련된 은행들에 완공 책임을 지우는 것이 채권자 책임 원칙을 고수하면서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판단했다.송기종 나이스신용평가 금용평가실장은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달리 광범위한 재량권과 영향력을 갖고 있는 데다 부동산 개발사의 자산·부채 정리는 미국 증권사의 자산·부채 정리보다 단순하다"며 "헝다그룹 부도의 직접적인 영향은 은행이 부담하게 될 전망인데 직접적인 충격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다만 "부동산 시장과 건설 부문으로 부정적인 파급 효과가 어느 정도 불가피할 것"이라며 "중국 경제의 경기 둔화 속도가 다소 가팔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